[영평이 추천하는 이 작품] 잔잔한 감동을 주는 ‘택시운전사’

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텐아시아가 매주 1회 ‘영평(영화평론가협회)이 추천하는 이 작품’이라는 코너명으로 영화를 소개합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나 곧 개봉할 영화를 영화평론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 [편집자주]

영화 '택시운전사'/사진제공=쇼박스

영화 ‘택시운전사’/사진제공=쇼박스

서울에서 녹색 브리샤 택시를 운전하는 만섭(송강호)은 11살 딸을 키우는 홀아비다. 통금시간 전에 광주에 다녀오면 밀린 월세를 낼 수 있는 10만원을 준다는 말에 독일 손님(토마스 크페취만)을 태우고 광주로 나선다. 사우디 건설현장에서 근무하면서 익힌 짧은 영어로 소통하면서 광주에 도착했으나 상상할 수 없는 현실과 맞닥뜨리게 된다. 최루탄과 총성이 난무하면서 군인과 시민들이 대치하는 광주 민주화 운동의 현장을 보게 된 것이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당시 언론이 통제돼 보도되기 어려웠던 광주항쟁의 사진을 최초로 보도한 독일 국적의 피터(위르겐 힌츠페터) 기자의 경험담을 모티브로 한다. 그러나 기존의 광주항쟁을 그린 영화와는 많은 차이점이 있다.

먼저 분노 대신 그들의 고통을 보듬는다. 광주항쟁을 그린 기존의 영화로는 ‘꽃잎’ ‘박하사탕’ ‘화려한 휴가’등이 있다. 이들 영화는 모두 한국 근현대사에 가슴 아픈 역사로 기록되고 있는 광주항쟁을 그 무게만큼이나 어둡고 무겁게 그렸다. 또한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통 받고 피폐해지는 인물에 초점을 둔다. 그러나 ‘택시운전사’에서는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다. 광주 사건을 바라보는 외부인의 잔잔한 시선만이 있을 뿐이다. 사건의 본질을 파헤치는 대신 그 사건을 바라보는 평범한 시민들의 모습을 그리며 분노 대신 그들을 돕고 고통을 보듬는 사람들에 집중한다.

역사적 시각이 미흡하다는 비판도 있다. 기존의 광주항쟁 영화는 대부분 참여한 시민들의 항쟁 장면을 통해서 독재정권의 부당함을 강조한다. 하지만 ‘택시운전사’는 비록 몇몇 항쟁 장면이 나오기는 하지만 여기에 집중하지 않는다. 영화의 대부분을 광주항쟁을 지켜보는 평범한 소시민들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역사적 판단을 관객들의 몫으로 돌리기 위해 새로운 연출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추정된다.

영화 '택시운전사' 비하인드 스틸 / 사진제공=쇼박스

영화 ‘택시운전사’ 비하인드 스틸 / 사진제공=쇼박스

장훈 감독의 연출도 뛰어나다. 5·18의 참상을 재현해 카메라에 담지만 의도적으로 거리를 둔다. 취재를 위해 광주에 간 사람은 피터 기자이지만 그가 아닌 택시운전사 만섭의 시선으로 영화는 진행된다. 관객들은 만섭과 일치된 시선을 가지게 되면서 영화와 공감하게 된다. 이러한 시선 처리는 장훈 감독의 연출 의도와 무관하지 않다. 기존의 영화와 달리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고 역사적 판단도 강조하지 않으면서 광주항쟁을 비극을 담담하고 역설적으로 그리려고 한다. 이는 영화가 시작할 때 흘러나오는 조용필의 흥겨운 가요 ‘단발머리’에 맞춰 택시가 도로를 질주하는 장면에서도 잘 나타난다.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이 빛을 발한다. ‘관상’ ‘변호인’ ‘사도’ ‘밀정’까지 많은 관객을 불러들인 송강호는 이번에도 기대에 부응한다. 그는 마음의 행로를 복합적이면서 심도 있게 그리고 농밀하게 표현해냈다. 피터 역을 맡은 토마스 크레취만과 황태술 역의 유해진, 구재식을 연기한 류준열 또한 과장되거나 모자람 없이 제 역할을 다 해냈다.

광주항쟁이 일어난 지 37년의 세월이 흘렀다. 세월이 지났다고 그날의 아픔을 잊을 수는 없지만 이제 조금은 차분하게 그날을 뒤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장훈 감독의 ‘택시운전사’는 또 다른 시각에서 광주항쟁을 그려 관객들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주는 의미 있는 영화다.

양경미(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