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열’ 이준익 감독 “난 빈민의 자식…소외된 인물에 애정” (인터뷰)

[텐아시아=현지민 기자]
영화 '박열'을 연출한 이준익 감독이 6월 22일 서울 삼청동에서 진행된 텐아시아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영화 ‘박열’을 연출한 이준익 감독이 6월 22일 서울 삼청동에서 진행된 텐아시아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이준익 감독은 명실상부 ‘믿고 보는 감독’이다. 2003년 ‘황산벌’로 300만 관객을 극장가로 불렀고, 이후 2005년 ‘왕의 남자’로 1000만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꾸준히 작품을 했고, 매번 화제를 낳았다. 다양한 작품에 특별출연까지 하며 관객들과 가까워졌다.

그의 12번째 작품인 ‘박열’은 1923년 도쿄, 6000명의 조선인 학살을 은폐하려는 일제에 정면으로 맞선 조선 최고 불량 청년 박열과 그의 동지이자 연인 후미코의 믿기 힘든 실화를 그린 영화다. 이준익 감독은 대중들에게 생소한 인물들의 생애를 사실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대사 한 줄까지 고증했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극이라면 무릇 반일감정을 조성하거나 억울함의 눈물을 흘리게 마련인데, ‘박열’은 달랐다.

이준익 감독은 당시의 상황을 꾸밈없이 보여주고자 화려한 볼거리를 포기했다. 의도적으로 적은 제작비를 사용했다는 뜻이다. 대신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역사적 사실을 스크린에 그대로 옮기려고 애썼다. 그는 그간 실패했던 작품들을 언급하며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흥행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박열’을 봐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박열’은 언론시사회 이후 평단의 호평세례를 받았고, 공개된 이후에도 관객들의 선택을 받으며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다. 또 한 번의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들게 된 것에 대한 소회를 묻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이준익 감독은 “‘박열’은 내가 아닌 돈을 내는 관객들의 영화”라는 뜻을 전했다. 자신의 영화는 그가 어릴 적 즐겨 봤던 수많은 작품들이라고. 이준익 감독이 말하는 #박열 #영화현장 #스타일

영화 '박열' 포스터 / 사진=메가박스 플러스엠

영화 ‘박열’ 포스터 / 사진=메가박스 플러스엠

10. 박열이라는 인물을 알게 된 후 약 20년 만에 극이 완성됐다. 감회가 남다를까.
이준익 감독(이하 이준익): 기대 없다.(웃음) 과거에 기대를 했다가 확신이 망가지는 경험을 많이 했다. 기대반비례법칙이라고,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 나이를 먹으면서 지혜로워지는 건지, 덤덤한 마음이다.

10.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다. 한이렇게 웃겨도 되나싶을 정도로 웃음이 터진다.
이준익: 식민지 시대를 바라보는 관점의 틀을 깨는 것이 목표였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라면 반일감정이나 잔인한 고문, 억울한 사연 등이 떠오르지 않나. 과거 박열과 후미코는 예측의 프레임을 깬 사람이다. 그것을 극으로도 표현하고자 했다.

10. 박열을 이제훈이 연기했다. 파격 변신이라는 반응이었다.
이준익: 이제훈은 앞서 영화 ‘파수꾼’ ‘고지전’ 등에서 보여줬던 강렬한 모습들이 있다. 이후 다른 역할을 맡고 이미지가 변했고, 그 과정에서 강렬함은 가슴속에 더 단단하게 내재됐을 거다. 그 욕망이 세련되게 드러났다. 지나치게 감정을 배설하는 인물이 아님에도 이제훈은 그 간극을 훌륭하게 채워냈다. 무엇보다, 주연배우는 자기 연기만 해선 안 된다. 영화 전체를 책임져야 할 무게를 가진 자리 아닌가. 자신의 장면 외의 것도 내다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이제훈은 아주 훌륭했다.

10. 상대역 최희서는 대중들에게 다소 생소하다.
이준익: 최희서와 시나리오 단계부터 함께 했다. 그는 자신이 감히 후미코 역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을 못 했다고 하지만, 난 확신이 있었다. 내가 모르는 배우였다면 고민했을 거다. 하지만 ‘동주’를 통해 그의 연기적 검증은 이미 끝난 상태였다. 봐라, 얼마나 잘 하는지.

10. 현장의 질문왕이었다고.
이준익: 나 자신을 못 믿는다. 영화감독이 10편 넘게 작품을 했다. 뭘 안 해봤겠나. ‘박열’이 12번째 영화다. 아이디어가 바닥이 난 거지.(웃음) 바닥난 감독은 스태프들과 배우들의 넘치는 의욕을 밑천으로 영화를 만든다. 이번 영화에선 민진웅에게 ‘불령사는 네가 책임져라’라고 했다. 그가 불령사 역의 친구들을 데리고 술을 먹으며 으샤으샤했다. 일본 내각은 김인우에게 맡겼다. 분산을 했다. 본격 책임 전가형 감독이랄까.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10. 작품을 위해 의도적으로 적은 제작비를 사용했다. 6주라는 짧은 시간 동안 촬영했고. 열악한 환경은 어떻던가.
이준익: 내가 자학적인 성향이 있나 보다. 척박한 환경에서 뭔가를 해냈을 때 오는 쾌감이 좋다. 물론 나 때문에 많은 스태프들과 배우들은 혹사를 당한다는 느낌을 받았을 수도 있다. 천천히 찍으면 늘어진다는 생각이 있다. 100미터 달리기로 뛴다.

10. 한 장면을 여러 번 촬영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특히 원 테이크 오케이를 좋아한다고.
이준익: 반복적으로 촬영을 하면 배우들의 감정이 닳는다고 생각한다. 감정을 아껴야 뒤로 갈수록 더욱 폭발할 수 있는 거다. 다시 촬영하면 직전의 연기보다 정교해지긴 하지만 그런 장면을 다 붙여놓고 나면 영 이상하다. 패턴을 읽히는 느낌이랄까. 나는 ‘원 테이크 오케이’가 좋지만 기술적인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배우들이 원하기도 하니 ‘오케이 받고 한 번 더’라고 말한다. 오케이를 받았으니 스태프나 배우나 더 과감하게 임할 수 있다.

'박열' 이준익 감독

‘박열’ 이준익 감독

10. 20대 초반에 믿을 수 없는 일을 벌인 인물들을 조명했다. 이준익 감독의 20대는 어땠을까.
이준익: 아주 어설펐다. 어설픈 촌뜨기.(웃음) 학교에서 집에서 교육을 받고 정의를 배웠는데 사회에 나오니 배운 거랑 다른 거다. 세상의 모든 20대가 겪는 혼란일 거다.

10. 전작 동주에선 송몽규, 이번엔 대중들이 잘 몰랐던 박열과 후미코에 주목했다. 사명의식이 있는 걸까.
이준익: 없다. 태생적 기질이다. 난 변방의 인간이었고 빈민의 자식이었다. 그래서인지 소외되거나 실패한 인물들의 얘기에 애정이 간다. ‘황산벌’에선 이름도 없는 거시기의 가치를 소중하게 보려고 했다. 천한 광대의 신념과 신명이 빛나는 순간을 내 눈으로 보고 싶은 욕망이 ‘왕의 남자’를 찍는 힘이 됐다. ‘라디오스타’를 통해서도 사회가 실패로 규정한 인물들의 삶이 사실은 그렇게 후지지 않다는 걸 내가 확인하고 싶었다. 계속 영화가 구질구질하다.(웃음)

10. 최근엔 시대극으로 뭉치긴 했지만, 사실 이준익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통일성을 찾기 어렵다.
이준익: ‘이준익 스타일’이라는 걸 거부하는 사람이다. 어떠한 패턴이 세련되고, 지속되면 그걸 스타일이라고 표현한다. 난 스타일화되고 싶지 않다. ‘스타일 없음’이 내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10. 배우들은 입을 모아 박열’은 인생작이라고 평한다. 극이 이준익 감독에겐 어떤 의미로 남을까.
이준익: 의미는 내가 부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화가가 화실에서 그림을 그릴 땐 ‘내 그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이 갤러리에 걸리고 컬렉터가 사면, 그건 컬렉터의 것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돈을 내고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의미를 부여할 거다. 그게 진짜 의미다. 나 역시 어릴 적 감명 깊게 봤던 수많은 ‘내 영화’가 있다.

현지민 기자 hhyun418@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