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근우의 10 Voice] 견자단은 재평가되어야 한다

[위근우의 10 Voice] 견자단은 재평가되어야 한다
*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내는 오지그릇처럼 투박한 미소를 지을 줄 안다. 대문도 필요 없는 순박한 인심의 집성촌에 10년 전 흘러들어온 남자 류진시(견자단)는 역시 순박한 모습으로 하루하루 사람들과 어울린다. 진가신 감독의 신작 의 이야기는 이 선한 촌부가 현상범 살인사건에 연루되고, 형사 바이쥬(금성무)에게 무술의 고수라는 의심을 사며 시작된다. 바이쥬의 수사와 함께 역시나 숨기고 싶던 류진시의 거친 과거가 밝혀지지만, 관객의 예상을 깰 만큼 놀라운 사연은 아니다. 무술을 버리고 평범한 삶을 택한 은둔고수의 이야기는 그만큼 흔한 것이다. 놀라운 것은 류진시가 과거 72파 서열 2위 탕롱으로서 지녔던 무공과 과거를 지우는 방식이다. 평소에는 그저 무술을 버리면 된다. 하지만 마을에 들어와 행패를 부리는 현상범을 처단해야 할 때, 그는 여타의 은둔고수처럼 무조건 참거나 혹은 정체를 드러내 영웅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무술을 쓰되 그 흔적을 지운다. 최고의 액션신은 후반부 노골적으로 펼쳐지는 고수들의 합이 아니라, 류진시가 어리바리한 촌부 같은 모습을 가장하며 현상범들을 해치우는 장면이다. 이 사내의 지난 삶과 현재의 정체성은 설정도, 설명도 아닌 액션의 합을 통해 온전히 드러난다. 이것은, 새로운 경지다.

유연하고 효율적인 견자단의 액션
[위근우의 10 Voice] 견자단은 재평가되어야 한다
지금 견자단이라는 액션스타를 재평가해야 한다면 그 때문이다. 에도 출연하는 ‘외팔이’ 왕우 이후 이소룡, 성룡, 홍금보, 이연걸 등 쿵푸를 베이스로 한 액션스타들은 꾸준히 존재했고, 사실 견자단은 이들에 비해 주목을 많이 받지 못한 편이다. 동시대의 이연걸이 의 대성공 이후 언제나 작품 안과 밖에서 무술의 신으로 군림했다면, 그와 함께 시리즈 중 최고의 대결을 에서 벌인 견자단은 수많은 작품에서 악당 혹은 주인공의 조력자에 만족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의 조소흠은 절대무공을 지녔지만 환관에 악역이었으며, 에서는 액션 전문 배우가 아닌 양조위나 임지령보다도 무술 실력이 한 수 뒤처지는 살수로 나온다. 특히 , , 같은 작품에서 자신보다 스타인 여명을 작품 속 최고수로 받쳐주고 자신은 2인자로 물러나는 모습은 다른 액션스타에게선 볼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스포트라이트로부터 한발 비껴선 바로 그 지점에서 그는 설계자로서의 자신을 드러낸다. 이제는 세계적 무술감독인 원화평에게 발탁되며 데뷔했던 그는 다양한 작품에서 무술 연출을 맡았다. 정소동, 원화평 등 위대한 무술감독의 작품에는 일종의 시그니처가 남는 법이지만 견자단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전통적인 쿵푸부터 킥복싱, 현대적 종합격투기까지 습득한 그는 작품 속 시간과 공간에 맞춰 매번 새로운 액션의 합을 짠다.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던 의 후반부 액션은 마치 같은 게임 속 싸움을 실사로 옮긴 듯한데, 혼자서 뱀파이어 구단을 상대해야 하는 슈퍼히어로 블레이드의 강함을 설명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종합격투기를 액션 시퀀스에 응용한 과 역시 마찬가지다. 현대적 무술에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접목시키는 실험정신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본질적인 건 하드코어한 형사물이라는 장르적 성격이다. 당장 몸뚱이 하나로 폭력조직과 피가 튀고 뼈가 부러지는 싸움을 벌여야 하는 형사에게 불필요한 허식이 가득한 옛날식 쿵푸는 어울리지 않는다. 특히 에서 다른 상대와는 타격으로만 싸우다가, 홍금보에겐 트라이앵글 초크를 비롯한 서브미션 기술을 사용하는 건, 상대적으로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상대와의 대결이란 점에서 합리적이다. 요컨대, 그의 액션은 과시적이기보다는 유연하고 효율적이다. 사극 스타일의 무술 영화를 싫어하는 그가 에선 현대식의 잘게 쪼개진 합보다는 힘 있는 한 획 한 획으로 다수의 조조군과 대결하는 장면은 자신의 스타일과 영화의 스타일을 어떻게 조화하는지 선명하게 보여준다.

, 무와 협이 공존하는 미소
[위근우의 10 Voice] 견자단은 재평가되어야 한다
그래서 은 견자단이어야 했다. 육체적 강함을 뜻하는 ‘무’와 도덕적 가치인 ‘협’은 소위 강호의 도가 있던 시절에나 하나가 될 수 있었다. 고수라는 이유만으로 범죄자처럼 의심 받고, 실제로 72파를 비롯해 고수들이 공공연히 힘을 앞세워 범죄를 벌이는 시대에 무와 협은 반목한다.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류진시가 무를 버린 것처럼. 하지만 때론 협을 위해 무를 다시 가져와야 할 때가 있다. 문제는 72파의 그것처럼 협이 폭력을 합리화하기 위한 도구로 쓰여선 안 된다는 것이다. 류진시는 수많은 인과 속에 폭력이 순환한다고 믿는다. 내가 휘두른 폭력은 여러 연결고리를 거쳐 결국 나에게 당도하며 그 연결 고리를 채우는 사람들 역시 여기에 동참한다. 영웅 대 악당의 이분법은 여기에 없다. 그래서 선한 마을 사람들은 밭을 갈면서도 작은 벌레들의 죽음에 대해 미안함의 노래를 부른다. 폭력을 피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정당화하기보다는 미안해하고, 그 업을 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무와 협은 협객을 통해 쉽게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둘 사이의 긴장과 변증을 통해 조금씩 합치해 가는 것이다.

그리고 견자단은 놀랍게도, 그 주저함의 제스처까지 긴박한 액션 시퀀스 안에 녹여낸다. 마치 악당 둘이 실수로 서로에게 상처를 입힌 것처럼 합을 만들어가는 건, 폭력의 인과로부터 최대한 책임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일상적인 동작 안에 고수의 초식을 감추는 경지. 악당 둘을 죽인 뒤, 죄책감을 느끼는 은둔고수의 모습은 그래서 빤하지 않으며, 72파의 대결에서 상대의 피를 보기보다는 자신의 죗값을 치루며 과거와 결별하는 모습은 그 어떤 절세무공보다 강해 보인다. 하여 모든 일이 끝난 뒤 다시 류진시, 혹은 견자단의 얼굴에 떠오른 오지그릇 같은 미소에는 무와 협이 공존한다. 액션의 미학적 성취란, 이런 것이다.

글. 위근우 기자 eight@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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