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공연] 종현, 경계를 허물다

[텐아시아=손예지 기자]
종현 /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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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현은 경계를 허무는 아티스트다. 그의 무대를 보고 있으면 ‘아이돌’과 ‘뮤지션’을 구분 짓는 일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이돌그룹 샤이니의 메인보컬이자 싱어송라이터로 그는 가창자와 창작자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완성형 뮤지션’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왔다. 그의 솔로 콘서트 역시 그랬다.

지난 5월부터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SM타운 코엑스 아티움 씨어터에서 20회간 열리고 있는 ‘디 아지트 유리병 편지(더 레터) – 종현(The AGIT 유리병 편지(The Letter) – 종현)(이하 유리병 편지)’은 화려한 아이돌 콘서트를 보는 것 같다가도 또 소극장 공연만이 주는 소소한 재미도 느낄 수 있고, 종현과 직접 대화를 나누며 라디오를 듣는 느낌도 받는다.

14일 오후, ‘유리병 편지’ 14회차 공연을 찾았다. ‘유리병 편지’는 종현의 세 번째 솔로 콘서트로, 종현이 고려대학교 화정체육관을 거쳐 다시 소극장인 아티움 씨어터로 돌아온 공연이기도 하다.

무대의 막이 오르고, 화려한 조명 가운데 등장한 종현은 ‘좋아(쉬 이즈)’, ‘화이트 티셔츠(White T-shirts)’, ‘크레이지(길티 플레저)’, ‘라이크 유(Like You)’ 등을 내리 불렀다. 놀라운 것은 오프닝부터 관객 전원이 기립해 종현의 화려한 퍼포먼스를 함께 즐겼다는 것이다.

댄서들과 함께 치명적인 분위기를 자아낸 ‘수트 업(Suit Up)’과 ‘우주가 있어’까지 마친 뒤, 종현은 “아지트 공연이라고 하면 미니멀한, 아기자기한 공연을 상상하신 분들도 있을 거다. 저는 다른 느낌을 주고 싶어서 시작부터 일으켜 세웠다”고 웃으며 “소통할 수 있는 섹션도 있으니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또 “아지트에서의 생동감, 소통할 때 느껴지는 온도가 너무 좋아 이곳에서 장기 공연을 진행하게 됐다”고 소극장에 돌아온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종현은 “오늘이 14회차 공연인데, 그만큼 저도 (실력이) 늘 수밖에 없더라. 페이스 조절을 어디서 하고, 어떻게 해야 관객 분들이 더 보기 좋겠구나 하는 계산들을 철저하게 진행하고 있다. 각오하시는 게 좋을 것”이라는 귀여운 당부를 덧붙이기도 했다.

종현 /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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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에서의 종현이 아이돌이었다면, 그 다음으로는 DJ로 변신했다. 섹션을 잇는 공연 VCR에서 종현은 각기 다른 애환을 가진 전학생, 취업준비생, 직장인, 노인으로부터 편지를 받아 읽는 모습이 담겼다. 종현은 이후 ‘1000’과 ‘멍하니 있어’를 부르고 관객들에 힐링을 선사했다. 특히 ‘멍하니 있어’ 말미, 곡의 콘셉트에 맞게 수면안대를 끼고 노래를 부르던 그가 안대를 살짝 내리며 카메라를 향해 눈을 찡긋하는 모습은 ‘천생 아이돌’ 종현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MBC 라디오 ‘푸른밤, 종현입니다’를 1155일간 진행했다던 종현은, 과연 유려한 말솜씨, 편안한 말투로 꿈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 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관객들로부터 공감을 이끌어냈다.

“저는 남들이 보기에 꿈을 이루고 하고 싶은 것 다하고 사는 사람이잖아요. 그렇지만 아직 나는 꿈을 찾고 있는 중이거든요. 꿈을 이룬 사람으로 봐주는 것이 좋다 싫다의 이야기가 아니라, 제 기준에 있어 꿈을 아직 찾지 못했으니 타인의 기준에 맞춰 누군가를 위로해주고 싶지는 않다는 말이에요. 누가 나를 성공한 사람으로 본다고 해서 스스로 타인을 위로한다거나, 어깨를 으쓱한다거나. …결국 나는 아직 꿈을 못 찾았어요. 여러분은요?”

실제 사연도 받았다. 관객 중 한 사람으로부터 사전에 받은 사연을 읽고 즉석에서 인터뷰도 진행했다. 종현은 “힘들 때 위로할 수 있는 곡을 몇 곡 썼다. 사실 위로를 잘하는 편은 아닌데, 저의 업 중 하나가 DJ였던 지라 고민 상담을 많이 하게 됐다. 하면서 느낀 것은 힘들어하는 사람한테 ‘파이팅 말만 하는 게 위로가 아니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그가 택한 방식은 음악. 종현은 취업준비생이라는 사연자를 위해 ‘내일쯤’이라는 노래를 불러줬다. 관객들은 반달벨이라는 작은 악기로 곡에 장단을 맞췄다. 공연장에 모인 모두가 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위로해주는, 가슴 따뜻한 풍경이었다.

종현 /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종현 /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유리병 편지’의 백미는 이 섹션이 아닐까. ‘벽난로(파이어플레이스)’부터 ‘놓아줘(렛 미 아웃)’, ‘엘리베이터(Elevator)’, ‘하루의 끝(엔드 오브 어 데이)’를 연달아 부른 때다. 종현 스스로도 “감정적으로나 기술적으로 부르기 힘든 노래들”이라 할 만큼, 서글픔과 외로움 등의 감정이 묻은 곡들이다. 종현은 특히 ‘벽난로’에 대해 “제 방에 하얀 벽난로가 있다. 그 벽난로는 맨 처음 가졌을 때 너무 신이 나서 많이 꾸미고 신경 쓰고 아꼈다. 사람들이 우리 집에 오면 첫 번째로 자랑하기도 했다. 그 겨울로부터 시간이 조금씩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잊게 되더라. 여름쯤 되니 문 열자마자 보이는 벽난로를 잊게 됐다. 내가 벽난로면 진짜 억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벽난로뿐이 아니었을 거다. 사람이 될 수도, 취미가 될 수도, 아마 여러분도 갖고 있을 거다. 소중히 여겼다가 잊게 되는 것들. 누군가에게 내가, 혹은 무언가가 나에게, 저는 잊히는 것에 대한 슬픔을 갖고 이 노래를 썼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종현의 작업 비화와 함께 듣는 ‘벽난로’는 특히 가슴을 울렸다.

마지막으로 종현은 듀엣곡 ‘러브 벨트(Love Belt)’와 ‘론리(Lonely)’를 관객과 함께 불렀다. 게스트 한 명 없이 2시간 여 동안 무대를 꽉 채운 종현과 관객들, 그리고 밴드 등이 피날레까지 장식한 것. 앙코르 곡으로 ‘데자-부(Deja-Boo)’ 리믹스 버전과 ‘포춘 쿠키(Fortune Cookie)’, ‘시간이 늦었어(뷰티풀 투나잇)’까지 부른 종현은 이날 관객들이 종현을 향해 준비한 이벤트 슬로건 문구를 읽고 환히 웃었다.

“‘이제 널 사랑하는 법을 알아’. 고마워요. 항상 그렇죠. 관계라는 게, 주고받는 것이 수월해야 더 지속이 잘 되잖아요. 주는 법, 받는 법을 알면 좋은 관계를, 더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다들 저를 사랑하는 법을 아시나요?(웃음) 그 슬로건에는 정확히 적혀있지 않지만, 절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릴게요.”

종현 /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종현 /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전곡 자작곡으로 꽉 채운 무대, 밴드와의 호흡이 돋보인 라이브, 댄서들과 작은 무대를 그 어떤 공연보다 풍성하게 꾸민 퍼포먼스까지. 감정, 기교, 어느 하나 나무랄 데 없는 가창력은 물론, 두 말할 것 없다. 그 자체로 완성형 뮤지션이라 불릴 만한 종현을 만난 시간이었다. 공연은 금일(15일)부터 18일, 내달 2일까지 6회 공연을 남겨두고 있다.

손예지 기자 yejie@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