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맨 특집 ③│박주원 “기타 딱 한대의 소리만을 담아보고 싶다”

기타맨 특집 ③│박주원 “기타 딱 한대의 소리만을 담아보고 싶다”

결국 기타다. MBC ‘나는 가수다’에서 오랫동안 회자되는 것은 화려한 성량을 뽐내는 무대가 아니라 소박하게 기타에 선율을 얹은 어쿠스틱 공연이며, Mnet 를 비롯한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는 기타 플레이어들이 꾸준히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심지어 KBS 는 기타맨과 그의 친구들을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세상의 음악이 컴퓨터의 힘을 빌어 초고속으로 변화하고 있는 시대에도 기타는 여전히 한쪽에서 그 저변을 지켜내고 있었던 것이다. 가 사흘에 걸쳐 소개할 뮤지션들은 그런 기타와 꼭 닮아있다. 세상의 법석에도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소년시절의 순정을 지켜나가듯 기타와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이 남자들은 단숨에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는 마력을 보여주진 않았지만 사라지지 않는 소리를 만들 수 있는 저력을 가졌다. 그래서 벌써 몇 장의 앨범을 발표한 이들을 지금 주목하는 일은 결코 늦은 것이 아니다. 이들과 기타의 호흡은 앞으로 더욱 무르익을 것이 분명한 까닭이다. 그래서 말하건대, 소년은 기타를 들고, 기타여 야망을 가져라.

누군들 록스타를 꿈꾸지 않았으랴. 기타를 품에 안기만 해도 환호성이 들려오는 소년 시절에는 한번쯤 무대 위의 제 모습을 그려보기 마련이다. 그러나 박주원이라면 의외다. MBC ‘바람에 실려’에서 묵묵히 기타 연주를 도맡아 주는 성실한 세션, ‘나는 가수다’ 무대에서 종종 목소리만큼 섬세한 선율을 들려주는 유능한 플레이어, 재즈의 본능과 집시의 애수를 손가락으로 그려내는 뛰어난 뮤지션인 그는 좀처럼 록스타와 겹쳐지지 않는 고유한 서정을 가졌다. 화려함 속에 비애를 심어 앨범의 제목을 라 지었다. 그리고 그 안에 “연주자들의 인생을 표현하려”는 의도를 담았다고 말한다. 서른을 조금 넘긴 나이일 뿐이지만 지난 십여년간의 시간은 무겁게 어깨에 쌓였고, 진하게 음표들에 녹아들었다. 밴드 멤버들보다 관객 수가 적은 재즈 클럽에서 공연을 하던 날에는 대중과 소통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을 했고, 대중음악 세션맨으로 무수한 러브콜을 받을 때는 자신만의 음악을 구상한 결과다. 그리고 단단하게 연마된 그의 기타가 오롯이 박주원만의 소리를 연주하도록 등을 떠민 것은 고등학생 시절 품었던 록스타의 꿈이었다. “오지오스본밴드 하면 랜디 로즈, 메가데스에는 마티 프리드먼 하는 식으로 기타가 무대의 주인공이던 시절이었거든요. 그 무렵에 제가 상상하는 기타리스트는 그런 모습이었던 거죠. 세션맨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까 그때가 떠오르더라구요. 물론 세션 일은 즐거웠어요. 하지만 성시경 씨 옆에서 연주를 하다 보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8000명이나 되는 관객들의 환호를 받으면서 공연을 하면 기분이 얼마나 좋을까, 부럽다.”

기타맨 특집 ③│박주원 “기타 딱 한대의 소리만을 담아보고 싶다”
그런 그에게 첫 앨범은 자신에게 주는 선물과 같은 것이었다. “내가 그렇게 고생을 했는데, 당연히 이렇게 나와야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애정이 강했어요.” 하지만 강렬한 첫인상을 극복해야 할 두 번째 앨범은 박주원에게 숙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테크닉으로써 능력치를 대부분 공개한 상태에서 승부수를 찾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았고, 완성에 대한 두려움은 우울증이 되어 마음을 옥죄기도 했다. 남은 것은 돌파하는 일 뿐이었다. “나름대로 저는 대중의 귀가 되어 보려고 하는 편이예요. 객관적으로 들으려고 하는데, 이번엔 예상이 틀렸더라고요. 이번 앨범은 아예 강렬하게 가져가려고 했기 때문에 대중들이 어려워 할까봐 걱정을 했거든요. 박자도 리듬도 다양하게 사용하고 멜로디 라인도 강력하게 만들고. 그런데 오히려 더 쉽다고 하네요.” 대중의 마음을 읽는 것이 센스라면, 다수의 마음을 끌어 오는 것은 카리스마다. 그리고 이제 박주원은 자신만의 카리스마로 재즈도, 집시도, 연주음악도 흔하지 않은 척박한 땅을 기타로 일궈나가는 개척자가 되었다. “다음 앨범에는 기타 딱 한대의 소리만을 담아보고 싶어요”라고 슬쩍 밝히는 그의 머릿속은 이미 누구보다 대범하고 창의적이다. 그래서 이미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룬 셈이다. 무대 위의 기타 히어로가 되었으니 말이다.

기타맨 특집 ③│박주원 “기타 딱 한대의 소리만을 담아보고 싶다”처음 기타를 잡은 건 9살 때였다. 초등학생 때 반장이 기타를 들고 와서 ‘담다디’를 치는 걸 보고 나도 기타를 샀다. 나중에는 반장이랑 친해져서 같이 기타 연습도 다니고 그랬지. 12살 때는 TV에 꼬마 기타리스트로 세 번인가 출연도 했다.
원래 피아노를 쳤는데, 아무래도 여자 악기라는 편견이 있어서 학원 가는 걸 되게 싫어했다. 그런데 건반은 정말 모든 음악의 기본이 되는 거라서 기타를 배울 때도 음감이나 리듬감에서 도움이 많이 됐다. 하농 같은 거, 정말 좋은 연습곡이다.
어릴 때는 부유한 편이었는데, 가정 형편이 어느 순간 기울었다. 차압 들어오고 그러면서 십대 때부터 내가 기타로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연습을 할 정도였다. 그래서 아마 내가 집시 기타의 한 서린 연주를 하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집안이 일어난 것 까진 아니고, 죽어가던 걸 약간 살려 놓은 정도가 되었는데 그걸 위해서 20대 때는 내내 세션맨으로 일을 했다. 제대하면서 바로 임재범 밴드에 들어갔고, 그 이후로 성시경, 이소라, 조규찬, 김연우, 정엽…… 정말 많은 가수들과 작업을 했다. 하루에 두세 탕씩 뛰는 날도 있었고.
가요에 대한 감각은 이미 초등학생 때 습득한 것 같다. 고모가 카페를 하시던 걸 잠깐 어머니가 맡게 됐는데, 그때 가게에서 숙제하고 시간 보내면서 음악을 정말 많이 들었다. 카페니까 좋은 음악만 틀고, 그 당시가 또 멜로디가 좋은 가요들이 많이 나오던 시절 아닌가. 이정석, 양수경, 이선희.
처음 세션을 할 때는 마냥 신나더라. 유명한 뮤지션들 옆에서 연주한다는 사실이 기뻤고. 특히 조규찬 형은 항상 나를 데리고 다녔는데 음악적으로 도움이 되는 좋은 이야기도 많이 해 주셨다. 그런 뛰어난 뮤지션과 일을 하면서 그들의 뚜렷한 색깔에 맞춰주는 것 자체를 즐겼다. 그들의 느낌을 살려주면서 내 개성을 넣어서 연주를 하는 게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지.
임재범 형님은 예전부터 알던 사이이기도 해서, 사실 나는 그 분과 소통하는 방법을 잘 아는 편이다. ‘바람에 실려’에 같이 출연하면서 재범신 팬들이 내가 감히 그분에게 말장난 한다고 신기하게 보시는 것 같던데. 재범이 형이 원래 ‘땡깡’ 부리는 것도 귀엽고 그런 사람이다.
‘바람에 실려’에 출연할 때 2집 앨범이 믹싱까지 끝난 상태였다. 그래서 미국에 간 김에 거기서 마스터링을 했다. 웬 떡이야 했지. 하하. 몬타레이 페스티벌에서 비비킹 공연을 볼 수 있었던 것도 그렇고, 현지에서 연주를 통해서 사람들의 호응을 받은 것도 그렇고 좋은 경험을 많이 했다. 마냥 천국은 아니었지만.
내 앨범을 다시 듣는 편은 아니다. 원래 시험칠 때도 공부는 열심히 해도 채점은 안하는 스타일이라서. 만드는 동안에는 갈등을 많이 한다. 곡 순서를 정할 때도 차에서 쭈욱 들어보고, 순서 바꿔서 또 들어보고 흐름을 계속 고민할 정도다. 하지만 공장에 들어가는 순간부터는 그냥 포기 한다.
앨범에 실린 ‘One day’는 게리 무어의 곡을 커버한 건데, 그를 향한 추모의 의미를 담고 있다. 너무 좋아하고 사랑하는 기타리스트인데 돌아가시는 바람에 헌정의 의미를 담아서 수록했다.
최백호 선생님이 노래를 해 주신 ‘방랑자’는 내가 가사도 직접 썼다. 원래 바이올린 선율을 생각하고 만든 곡인데, 나중에 선생님이 노래를 불러주기로 하신 경우라 최백호 선생님의 입장에 맞춰서 작사를 하느라 정말 힘들었다. 자신이 없었는데, 선생님이 “이 가사 그대로 불러도 될 것 같아요” 하셔서 다행이었지. 엄마도 내가 작사 한 걸 대견해 하신다. 우리 아들 이게 웬일이냐고. 하하.
방랑과 잠적을 좋아하는 뮤지션 중에서 특히 나와 친한 분은 이소라 누나다. 가끔 전화 하면 “야, 오늘 전화 온 것 중에 네 전화만 받은 거야. 넌 그걸 고마워해야 하지 않니?” 그러시는데 나는 “뭐 그게 고맙습니까. 당연히 받아야지”하고 대꾸하는 식이다.
김광민 씨가 피아노를 연주해 주신 ‘애인’은 사실 어머니를 위한 곡이다. 원래 직접적인 느낌으로 작곡을 하는 일이 잘 없는데, 거실에서 트레이닝복을 입고 누워 있는 어머니 모습을 보고 곡을 썼다. 어머니 덕분에 내가 방랑벽을 참고 덜 집시처럼 살아온 것 같다. 어머니가 고생을 많이 하셔서 나는 늘 ‘이 기타로 엄마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길이 뭘까’ 생각을 많이 했다. 요즘은 내가 TV에도 나오고, 앨범도 나오니까 동네에서 어머니를 ‘대단한 여자’로 봐 주는 것 같아서 너무 좋다. 엄마가 막 목소리도 커지고.
아버지가 드럼 연주를 하셨다. 그래서 아마 리듬감을 물려받은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보다 내가 물려받은 것은 집시의 성향인데, 아버지가 집도 자주 비우시고 늘 밖으로 다니셨거든. 게다가 한 번도 공부를 하라거나 뭘 강요하지를 않으셨다. 주로 잔소리 하고 회초리로 때리는 쪽은 어머니의 역할이었지. 흐흐.
어, 방금 트위터로 누가 알려줬는데 투개월의 도대윤 씨가 나를 좋아한다고 인터뷰 했단다. 우와! 나도 투개월 정말 좋아 하는데. 물론, 김예림 씨를 먼저 좋아했지만…… 하하하. 는 방송을 종종 보는데, 시즌 2에 나왔던 김지수 씨는 내 공연을 보러 와서 연락을 주고받기도 했다. 그 친구 되게 능력 있더라. 약간 천재인 것 같다.
예전에 나도 직접 노래를 부르기도 했는데,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음이탈 사고를 낸 이후로 영 꺼리고 있다. 음악 색깔이라는게 워낙 많이 바뀌다 보니까 언젠가는 내가 노래를 부르게 되는 날이 올 수도 있지만. 요즘 밴드 기타리스트들이 솔로로 앨범을 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아무래도 그건 보컬보다 대접을 못 받으니까 그런 것 같다. 나도 잘생겼으면 밴드 프론트맨 하고 그랬을 텐데…… 하는 생각을 1년에 한번 정도는 한다. 하하하.
유능한 연주자가 되기 위해서는 물론 연습도 중요하지만 타고난 재능도 얼마간 필요하다고 생각 한다. 특히 나는 크리스천이라서 신이 주신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 능력으로 결국에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 음악으로 기쁨을 주고, 감동을 주는 일 말이다.

글. 윤희성 nine@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