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스타] 음표를 그리는 사람들(18) 윤일상 “여전히 피아노 앞에서 설렌다” (인터뷰)

[텐아시아=김하진 기자]
윤일상,인터뷰

작곡가 겸 프로듀서 윤일상이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이른바 ‘히트곡 제조기’란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작곡가를 꼽으라면 단연 윤일상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1992년 박준희의 ‘오 보이(Oh, Boy)’란 곡을 만들며 데뷔한 그는 올해로 25년째 음표를 그리고 있다. 데뷔와 동시에 1990년대 인기곡을 쏟아내며 당시 가장 핫(HOT)한 작곡가로 두각을 나타냈다. 선율에, 신나면서도 어딘가 슬픔의 감정이 녹이는 건 그의 특기이다. 또 어느 가수의 터닝포인트가 되는 노래를 만드는 것이 윤일상의 무기다.

25년이 넘게 음악가로 살아가고 있지만 ‘음악’에 ‘일’의 무게를 얹지 않으며, 여전히 피아노 앞에 앉으면 설렌다는 그다.

10. 작업실이 집과 같이 있어서 작업하기 수월하겠다.
윤일상 : 언제든 생각나면 내려와서 바로 작업할 수 있다. 아무래도 결혼 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안정적으로 바뀌었다.

10. 그런 환경의 변화가 음악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나.
윤일상 : 물론 결혼이 주는 안정감에서 악상의 변화도 존재하지만, 그것보다 최근엔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을 많이 한다. 결혼 전에는 감각적으로 살았다면, 후엔 안정적인 삶이니까 또 다른 감각이 깨어나는 거다. 새로운 감각을 만들어 내기 위한 부분이 필요하다. 그래서 사진을 찍는다든지, 혼자 한강에서 가서 사색의 시간도 갖는다.

10. 전과는 다른 음악을 해보려는 노력이라고 봐도 될까.
윤일상 : 기존에 해왔던 것을 답습하게 되면 고이게 마련이다. 강의에서 많이 하는 말인데, 스스로에게도 부끄럽지 않기 위해 실천을 하려고 한다.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매일 생각한다.

10. 한강에 가거나, 사진을 찍는 건 영감을 얻기 위해서인가보다.
윤일상 : 다른 공간에 있다보면 또 다른 영감이 떠오르기도 하니까, 내게는 작은 일탈이다. 뜻이 맞는 친구들과 팀을 만들어서 작곡 활동도 해볼까 신선한 도전도 생각 중이다.

10. 협업은 그동안에도 많이 시도하지 않았나. 
윤일상 : 그간 시도는 많이 했는데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혼자서 하는 것이 익숙한데 팀을 만들어서 몇작품을 해보니까 결과적으로 마치 내가 결제를 하는 방식이 돼 버리더라. 또 수정을 하는 입장이 되니까 협업의 큰 의미가 없다. 그래서 파트를 나눠서 하게 됐고, 그 과정은 내게도 리프레쉬되는 과정이다.

10. 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었을까.
윤일상 : 10년 전부터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작업하는 이들이 서로 생각과 마음이 통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는 않았다. 시도는 계속 하고 있고, 해외 작업 역시 진행 중이다.

10. 그런 작업들이 자극이 되고 또 다른 욕심이 생기기도 하겠다.
윤일상 : 새로운 감각이 살아난다. 19살에 작곡가로 데뷔해 20대에 만든 작품을 보면, 지금은 그렇게 못한다. 그 나이에 나올 수 있는 게 분명 있다. 욕심을 부려서 그때처럼 하려는 것보다 이제 또 시간이 흘러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있는 거다. 내가 갖고 있는 것과 또 어린 친구들이 갖고 있는 것이 만나는 과정이 좋다.

10. 1990년대 음악을 장악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지 않나. 최근 또 조명을 받는 곡들도 있고, 기분이 묘할 것 같은데.
윤일상 : 그때 만들었던 음악을 들어보면 피아노도 세게 쳤더라.(웃음) 음악을 오래하면서 지금은 모든 악기를 조심스럽게 다룬다. 한음 한음 정성을 넣어 하려는 욕구가 강해진다고 할까, 플레이도 그렇게 하는데 옛날 곡들은 젊은 패기가 들어가서 인지 강도가 세더라.

10. 듣는 이들은 옛날 곡을 들으며 과거의 ‘나’를 떠올리는데, 만든 창작자는 어떤 기분인가.
윤일상 : 물론 나도 조용필, 유재하의 곡을 들으면 과거의 향기와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의 열정을 다시 느끼기도 하고. 그런데 창작자로서 과거를 복기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윤일상,인터뷰

윤일상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10.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시작했다. 음악과는 뗄 수 없는 사이다. 
윤일상 : 가사가 있는 곡은 9살 때부터 만들었다. 당시 우리 집에서는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이후 중, 고등학교 때 습작한 곡을 친구들에게 들려주면서 좀 다르구나라는 걸 느꼈다. 종이가 없을 때는 휴지에 악보를 그리기도 하면서 그렇게 영감이 계속 떠올랐다. 지금도 몰아치는 날이 있는 데, 그런 날을 잘 잡아서 작업을 진행한다.

10. 작곡가에게 영감은 어떤 의미인가.
윤일상 : 매일 신에게 선물받는 느낌인데, 음악가가 쉴새없이 공부가 필요한 이유는 떠오르는 악상을 고스란히 악보로 표현하기 위해서다. 음악을 시작한지 26년째인데, 힘들다. 여러 가지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는 걸 느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걸 악보로 그대로 옮기는 건 정말 쉬운일이 아니다. 매번 다른 형태지만 첫 악상이 떠오르는 느김은 정말 좋다. 연주로 옮겼을 때 그 감동이 연속되게끔, 보컬이 입혀지고 가사가 쓰이고 마스터링, 믹싱까지 계속해서 그 감정을 잇는 것이 프로듀서의 능력이다.

10. 또 작곡가 윤일상은 가수들의 대표곡을 만들기로 유명하다. 곡으로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주기도 하고 말이다. 혹자는 ‘심폐소생 작곡가’라고 하더라.
윤일상 : 기존에 했던 걸 또 하려고, 먹던 음식을 먹고 싶어서 나에게 부탁하는 건 아니니까 우선 새로운 걸 하려고 한다. 나와 가수의 교집합을 잘 이끌어내서 같이 만들어 가는 게 중요한데, 그 느낌이 와야한다. 작업할 때 영감을 공유할 수 있는, 서로의 준비가 돼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10. 예전부터 그랬나.
윤일상 : 25년 이상 해오면서 더 강해졌다. 곡 섭외가 들어오면 예전에는 가수도 만나보지 않고 썼다. 지금은 녹음이란 건 하나의 기록이니까, 오래 남을 수 있는 기록을 하고 싶다. 인스턴트화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해야할까.

10. 노래의 힘은 대단한 것 같다. 최근 젝스키스가 재결합하고 활동을 재개하면서 ‘예감’ ‘연정’ 등 과거의 곡들이 재조명받았다.
윤일상 : 예전 작업했을 때 생각이 나곤한다. 한번은 터보 김종국이 ‘형이랑 나이차이도 얼마 안나는데 그때는 왜그렇게 무서웠는지’라고 하더라.(웃음) 당시에 가수들에게 음악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 주입하고 더 힘을 주기 위해서 엄격하게 한 면도 있다. 작곡가로서 가수들의 집중력을 키우기 위해 여러 방법을 썼다. 음악에 집중해야만 좋은 소리를 녹음할 수 있으니까.

10. 음악을 업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은 언제했나.
윤일상 : 자연스러웠다.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고 지금도 그런데, 직업으로 일을 한다는 개념이 아니다.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몰라도, ‘삶을 실현한다’ 혹은 ‘재능을 표현한다’ 정도로 생각된다. 일처럼 하지 않으려고 한다. 물론 사업적인 구상을 위해 미팅을 할 때는 일로서 임하지만 음악을 할 때만큼은 아니다. 여전히 피아노 앞에 앉기 전에 설렌다.

10. 피아노를 치는 한 어린 친구가 ‘음악이 내게 왔다’고 하더라. 비슷한 건지도 모르겠다.
윤일상 : 재능이 미약해서 거창하게 표현하고 싶지는 않고, 내가 잘 하는 걸 표현했을 때 대중들이 공감을 많이 해줬고 운이 좋았다. 대중 가요를 만드는 작곡가로서 사명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그렇다고 다수의 대중을 만족시키기 위해 집중하다 보면 작품이 아닌, 패션처럼 될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예술적 가치가 없는 건 아니다. 음악으로 표현되어지는 예술 작품은 모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에 따라 달라지는 거다. 지속적으로 음악을 하면서 다양하게 도전해보고 싶다. 뮤지컬 ‘서편제’의 곡을 만들면서도 느꼈는데, 세상에 없는 걸 해보자는 생각이다. 영화 음악에도 도전해보려고 한다.

10. 뮤지컬 넘버나 영화 음악은 접근 방식이 또 다르지 않나.
윤일상 : 아주 많이 다르다. 흥분되고, 잘해낼 거다. 멋있게 하기 위한 부담과 욕심이 있다.

10. 2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데뷔곡이 거리에 흐를 당시 느낌을 떠올려보자.
윤일상 : 버스 안에 있는데 라디오에서 흐르더라. 그때 기분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인데, 확 기쁜 것도 아니고 뿌듯하기도 하면서 신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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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상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10. 데뷔 후 1990년대 히트곡을 가장 많이 만든 작곡가로 고속 성장했다.
윤일상 : 수많은 곡들이 1위를 하고, 심지어 두 곡이 맞붙기도 했다. 그때는 사실 느낄 새가 없었다. 사람들이 ‘미쳤다’고 할정도로 곡 작업에 매진하고 있어서 밖에 나가질 않으니 피부로 느끼지 못했다.

10. 시간이 흐르며 음악에 대한 애정은 더 깊어졌나.
윤일상 : 예나 지금이나 사랑한다. 음악은 내가 사랑하는 만큼 사랑을 준다. 음악을 대하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한데, 그 시간이 줄어들지 않게 하는 것이 숙제이다. 피아노 연습도 아직 매일 하고 있다.

10. 어떤 이유에서든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이 있다면?
윤일상 : 최근 발표한 이은미의 ‘알바트로스’이다.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은 욕구때문에 쓴 첫 곡이라서 어떻게 날개짓을 할지 걱정도 컸고, 기대도 했다. 지금 희망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삶이 바뀌긴 했는데, 보다 더 희망적인 생각도 많이 해야하니까 그 곡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

10. 세월호 당시 내놓은 ‘부디’ 이후 또 하나의 시대 반영적인 곡이다.
윤일상 : 모든 예술은 시대의 흐름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당연한 거다. ‘부디’는 목적성을 갖고 만든 작품은 아니고, 그 속에 살고 있으니까 세월호 사건은 아이를 키우는 아빠로서 또 한 인간으로서 아직도 가슴 아픈 일 아닌가. ‘부디’는 감히 가사를 붙일 수가 없었다. 연주곡으로 무료 배포를 했고 이후 ‘알바트로스’로는 시선을 바꿨다.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10. 더 건강하게, 또 깊이 있게 꾸준히 음악 작업을 하고 있다.
윤일상 : 몸이 옛날 같지 않고(웃음) 할 수 있을 만큼을 하고 있다. 과거 지속되는 곡 작업이 35곡이었다면, 지금은 15곡 정도이다. 예전엔 정말 충분히 자는 날이 1년에 10번이 안됐다. 지금은 밤을 새면 이틀을 소비하게 된다. 그래서 예전과 달리 시간을 정해놓고 작업을 멈춘다. 운동도 시작했고, 확실히 좋아졌다.

10. 슬럼프가 없다면 거짓말이겠지.
윤일상 : 큰 슬럼는 두 번 정도 있었다. 작은 슬럼프는 지속적으로 있다. 곡이 잘 안써진다고 하면 편곡을 하고 또 편곡이 힘들면 곡만 쓰면서 환기한다. 이도 저도 아닐때는 음악을 듣는다. 음악 안에서 슬럼프가 해결돼야 한다. 음악은 마치 종교 같았다. 신이 줄 수 있는 모든 요소를 다 갖고 있어서 나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했다. 음악은 내게 좋아하고 싫어할 존재가 아니다. 장르가 다양하고 기분에 따라 좋은 것과 싫은 것은 있겠지만 말이다. 물론 피로도를 느낄 때도 있다. 3일 내내 작업을 쉬지 않으면 귀가 좀 쉬고 싶다든지, 슬럼프로 인해 음악을 멀리하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

10. 음악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때는 언제인가.
윤일상 : 최근에는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반응이 좋을 때다. 혹시 아이들이 음악을 한다고 하면 말릴 생각도 없고, 또 하지 않겠다고 해서 강요할 생각도 없다.(웃음)

10. 올해 계획은?
윤일상 : 올해 또 뮤지컬 ‘서편제’가 무대에 오른다. 영화 음악을 만들고 완성시킬 예정이다. 또 의뢰를 받은 곡들을 만들면서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할 거다. 음악으로 표현되는 모든 행위를 해보고 싶다. 오페라, 발레 음악, 광고 등 해보지 않은 장르에도 도전하고 싶고…너무 욕심이 많죠? 하하.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