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100퍼센트] 우리는 왜 90년대를 그리워할까

[강명석의 100퍼센트] 우리는 왜 90년대를 그리워할까
올해도 그랬다. 10월말쯤 날씨는 추워졌고, 10월 31일에는 라디오에서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 흘러나왔다. 11월이 되자 몇몇의 연예인들이 사고를 쳤고, “11월 괴담 또 시작되나”라는 기사가 나왔다. 그러나 11월이 되자 날씨는 ‘더워’졌고, 10월 31일의 술집들은 ‘잊혀진 계절’을 트는 대신 할로윈 이벤트를 벌였다. ‘11월 괴담’은 김현식과 김성재가 세상을 떠났던 그 때 같은 슬픔과 불안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어떤 연예인들이 음주운전, 사기, 대마초 흡연, 폭행시비 등 그렇고 그런 사건들에 연루됐다는 것을 확인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주인공들은 대부분 젝스키스의 강성훈과 이재진, 쿨의 김성수 같은 그 시절의 흘러간 스타들이었다.

기후가 바뀔 만큼 시간이 흐르는 동안 1990년대의 소녀들이 ‘오빠’라 불렀던 그들의 인생은 각자의 길을 걸었다. 젝스키스의 은지원은 토크쇼에서 한 인턴기자가 자신을 ‘개그맨’이라고 했다며 울컥했다. NRG의 노유민은 행복한 표정으로 둘째 아이 사진을 공개했고, 같은 그룹의 이성진은 사기 사건으로 재판 중이다. Mnet 에서 슈퍼주니어의 신동은 현진영의 1990년대를 연기하고, ‘까만 콩’ 이본이 MC로 돌아온 SBS E! TV 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이주노, 구피, 쿨 같은 그룹의 컴백을 시도한다. 이 한국 댄스 음악의 가장 뜨거웠던 순간에 대한 헌정이라면, 은 그들의 현재다. 한 시대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90년대를 소환하는 상반된 방식
[강명석의 100퍼센트] 우리는 왜 90년대를 그리워할까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유현상이나 양희은처럼 전 세대의 청년 음악들을 대표하던 뮤지션들은 MBC 에서 그 시절의 이야기를 전설처럼 말한다. 다만 1990년대는 이전 세대보다 더욱 크고, 역동적이었다. 경제발전과 함께 10대를 위한 대중문화 시장이 급부상하면서 연예산업의 규모가 커졌고, 언더그라운드에서 춤을 추던 청년들이 그 힘과 만나며 ‘신세대’가 세상을 엎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양현석이 솔로를 준비하던 서태지의 음악을 듣고 그룹을 제안하면서 탄생했다. 현진영, 클론, 듀스는 클럽 ‘문나이트’에서 춤을 추다 제작자의 눈에 띄면서 스타가 됐다. 후배격인 H.O.T.와 젝스키스의 멤버들도 그들의 지역에서 잘 나가던 10대들이었다. 교실 뒤에서 춤을 연습하던 아이들이 춤 하나 믿고 서울에 올라오고, 10대 팬들의 열광은 사회 문제로 비화됐으며, 제작자들은 밀리언셀러의 꿈을 안고 원석을 찾아다녔다. 새로운 음악과 새로운 세대와 새로운 산업의 변화가 한국 대중음악사상 가장 뜨거운 움직임을 낳았다.

그러나 이 모든 성공 스토리는 이 시절의 반쪽이다.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의 오너 이수만은 H.O.T.의 멤버를 뽑기 위해 길거리에서 토니 안에게 춤을 추도록 했다. 반면 지금 SM은 정기적으로 각종 대회와 오디션을 통해 연습생을 뽑는다. 아이돌을 꿈꾸는 10대들은 댄스 학원에 등록해 춤을 연습하고, 데뷔 몇 년 전부터 소속사에 출근한다. 원하는 기획사에 캐스팅되지 않으면 Mnet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있다. ‘문나이트’ 같은 언더그라운드 신에서 곧바로 주류의 중심으로 올라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제작자와 방송사는 자신들의 규격을 제시하고, 대다수의 가수들은 이를 받아들인다. 가장 예측할 수 없는 에너지가 넘치던 신이 산업화와 함께 가장 규격화된 영역으로 바뀌었다.

과 이 1990년대를 다른 관점에서 접근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에서 이주노는 그 시대를 지배한 신화다. 반면 에서는 리얼리티 쇼의 도움을 받으며 컴백해야할 상황이다. 과거는 신화였지만 현재는 애처롭다. 1990년대 댄스 음악의 성공요인들이 20여년에 걸쳐 완전히 분석되고, 시스템화 됐다. 그 사이 신화의 주인공들도 시스템에 맞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누군가는 그 시절의 아우라를 잃었고, 양현석과 박진영처럼 시스템의 한 축을 담당하기도 했다. 아니면 잊혀진 뒤 불미스러운 일로 다시 대중과 만났다. ‘핫’하게 나타나 ‘폼생폼사’를 외치며 성공 ‘신화’를 만들던 ‘오빠’들이 길어야 20여년, 짧으면 십 수 년만에 현실에 적응한 아저씨로 돌아왔다.

우상이 땅에 내려온 뒤, 꿈이 사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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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선택 자체를 좋다, 나쁘다 판단할 이유는 없다. 다만 역동적인 성공 신화가 만들어낸 산업이 규격화 될 때, ‘오빠’들이 제시한 꿈과 판타지도 사라진다. 실력이 좋든 나쁘든, 연습생 시절부터 기획사가 원하는 트레이닝을 받은 사실이 모두 공개되는 아이돌이 대중에게 카리스마를 발휘하기는 어렵다. 또한 시스템이 정착한 연예산업에서 아이돌은 단계별로 성장한다. 데뷔하면 MBC 에브리원 처럼 아이돌에 대해 시시콜콜 말하는 프로그램부터 출연해 좀 더 뜨면 공중파 고정으로, 다시 음원차트 1위를 노린다. 과거처럼 데뷔와 함께 시장을 휘젓기는 어렵다. 1990년대의 인기 남자 아이돌은 팬들에게 거의 종교였다. 하지만 지금의 아이돌은 ‘짐승돌’부터 ‘애완돌’까지 데뷔부터 이미지가 나눠진 채 소비된다. 과거에는 대화 한 번 나누기 어려웠던 아이돌이 UFO문자로, 다시 트위터와 카카오톡으로 점점 팬들에게 다가온다.

산업이 대중의 욕구에 맞춘 상품을 기획하는 건 당연하다. 아이돌이 어설픈 허세나 신비주의 대신 팬과 소통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수 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아이돌이 대중에게 제시할 꿈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가진 건 춤이나 노래 밖에 없는 청년들의 성공신화, 멤버들의 끈끈한 팀웍 같은 건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새로운 꿈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대신 걸그룹이 매번 바뀌는 무대 콘셉트와 대중성을 강조한 노래들로 현실을 벗어나버린 판타지를 제시했다.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은 그 틈을 치고 들어온 새로운 유형의 가수들이다. 그들은 울랄라 세션처럼 꿈과 진정성, 그리고 팀원들의 단단한 관계를 보여준다. 그들은 기존의 아이돌처럼 시장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대신 “난 꿈이 있어요”라며 대중을 자신들이 펼친 꿈과 비젼 속으로 끌어들일 수는 있다. 지금 대중음악계가 오디션 프로그램과 걸그룹 중심으로 나눠진 이유다. 가공되지 않은 것 같은 꿈을 노래하거나, 완벽하게 완성된 무대로 현실 바깥의 판타지를 만든다. 그리고 그들 중 누군가는 일본, 다시 서구권으로 진출해 새로운 꿈과 도전의 과제를 제시하며 전성기를 연장한다.

그래서 1990년대 하늘 위에 있었던 그들이 땅으로 내려오기까지의 시간은 가수가 우상이었던 시대에서 꿈이 사라진 시대로의 변화다. 더 이상 ‘10대들의 승리’는 없다. 대신 기능적으로 뛰어난 아이돌이 소비자를 만족시킨다. 그래도 산업은 유지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서태지와 아이들이 나오기 전까지 몇 달 뒤의 세상을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지금 이 시대도 언젠가 ‘잊혀진 계절’이 될지 모른다. 우리는 지금 한 시대의 마지막, 그리고 새로운 시대의 시작에 서 있는 건 아닐까.

글. 강명석 기자 two@
편집. 이지혜 sev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