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천국>│루시드폴부터 윤성현 PD까지, 나에게 <라천>이란?

매일 새벽 12시부터 2시, KBS (이하 )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었던 건 DJ 유희열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곳엔 때로는 그에게 놀림을 당하고, 때로는 그를 숨넘어가게 웃게 한 게스트들이 있었다. 그리고 예리하고도 따뜻한 감성으로 을 만들어 온 제작진들이 있었다. 결국 이라는 작지만 깊은 소속감의 세계는 이 가족들이 함께 만들어 온 것이다. 마지막을 앞두고, 과 애틋한 애정을 나누었던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헤어짐을 준비하고 있을까. 게스트였던 루시드폴과 페퍼톤스, 이동진 영화평론가, ‘캣우먼’ 임경선에게는 맡았던 코너들이 각자에게 어떤 의미로 남았는지, 윤성현 PD와 김성원, 윤설야 작가에게는 각자에게 이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더불어 모두에게 과 함께 하며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과 유희열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라디오 천국>│루시드폴부터 윤성현 PD까지, 나에게 <라천>이란?루시드폴 (선곡다큐 삶과 죽음)
“예전엔 라디오가 새로운 노래를 접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지만, 요즘은 블로그나 음원사이트 등을 통해 웬만한 노래들을 다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지구 저편 멀리 있는 나라들의 음악은 우리가 아직도 잘 모르거나 접하기 힘들기 때문에, ‘선곡다큐 삶과 죽음’에서 소개하려고 노력했다. 스스로 세운 원칙 중 하나가 ‘방송국이 가지고 있지 않은 음악들을 소개하자’는 것이었고, 그래서 6개월 동안 직접 가지고 간 CD에서 거의 모든 곡들을 틀었다. 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4집 이 나오고 처음으로 출연했던 ‘일요 야설무대’와 지난 28일에 출연한 ‘금요초대석-People Are People’이다. 긴 시간 동안 나의 얘기를 할 수 있게 해주고 잘 들어준 희열 형과 스태프들, 애청자분들께 모두 감사드린다. 이렇게 이 끝나서 아쉽지만, 다시 밤의 황제로 돌아올 유희열 씨를 기다려 보자.”

<라디오 천국>│루시드폴부터 윤성현 PD까지, 나에게 <라천>이란?신재평(페퍼톤스) (모던 음악 만만세)
“당시 나는 홍대 언저리에서 기타를 매고 걷는 것만으로도 약간 우쭐해지는(솔직히 지금도 좀 그렇다) 20대 밴드 보이였다. 지하실에 처박혀서 앨범을 만들고 있었지만 이게 세상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는 잘 몰랐고, 가끔 방송국에 가도 견학하는 느낌으로 앉아 있다가 혼비백산이 돼서 돌아오곤 했다. 다시 말해, 나는 ‘고정 게스트’라는 게 가당치 않은 사람이었는데 희열 형이 왜 나를 픽업했는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얼떨결에 중책을 맡게 됐고, 녹음기에 내 목소리를 녹음했다가 다시 들어보는 괴로운 일을 반복했다. 매주 월요일이면, 소개할 음악에 대해 쓴 ‘깜지’를 주머니에 넣고 오늘 틀 음악이 잘 구워졌는지, CD가 튀지는 않는지 CD플레이어를 향해 귀를 쫑긋 세우고 여의도까지 운전하던 길의 떨림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첫 데이트를 하는 심정으로 엄청 잘 보이고 싶었던, 잘 하진 못했지만 정말 열심히 했던 1년이었다.”

<라디오 천국>│루시드폴부터 윤성현 PD까지, 나에게 <라천>이란?이장원(페퍼톤스) (The Winner Takes it all)
“정준일과 함께 대결을 펼쳤던 ‘The Winner Takes it all’은, (잘생긴) 내 얼굴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패배를 예상하고 열대야에 고수부지로 피서 가듯 가벼운 마음으로 임한 승부였다. 그러나 결국 나의 승리로 끝났고, 라디오라 하더라도 간절한 마음으로 부르는 노래의 호소력은 남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신)재평이 없이 혼자 출연하게 돼서 너무 무서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재평이가 없으니 노래 대결도 나가는 구나’ 싶어 즐거우면서도 난감했다. 가끔은 안테나 뮤직 식구들과 에 폭풍 문자를 보냈지만 희열 형은 그 문자들을 절대로 읽어주시지 않았다. 페퍼톤스의 노래를 많이 틀어줬던 이 끝나게 돼서 아쉽다.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라디오 천국>│루시드폴부터 윤성현 PD까지, 나에게 <라천>이란?이동진 영화평론가 (언제나 영화처럼)
“과연 우정과 즐거움만으로 매주 한 번씩 할 수 있는 일이 에 출연하는 것 말고 또 있을까. ‘언제나 영화처럼’을 꾸준히 진행한 건 출연료 때문도, 도움을 얻고자 하는 생각 때문도 아니었고 오로지 유희열 씨와 이야기하는 즐거움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의 다른 스태프 분들과 쌓게 된 우정 때문이기도 했다. 단 한 번도 지루하지 않았고, 항상 즐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영화처럼’ 속 코너였던 ‘명장면-명대사’에서 연기를 시킬 때는 정말 난감했다. 결국 내가 먼저 ‘그만하자’고 제안을 했고, 그래서 빨리 막을 내리게 됐다. 지난 번 공개방송 때, 제작진이 당시 내 연기가 녹음된 테이프를 틀어줬는데 굉장히 창피했다. 관객 300명을 앞에 두고 노래를 불러도 별로 창피하지 않았건만. 그 테이프를 살 수만 있다면 돈은 얼마든지 지불할 용의가 있다. 다 없애버릴 거다.”

<라디오 천국>│루시드폴부터 윤성현 PD까지, 나에게 <라천>이란?임경선(캣우먼) (헉소리 상담소)
“‘헉소리 상담소’는 나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온전히 세 시간 동안 생각이란 걸 하게 만드는 기초체력훈련이자 동시대 사람들과의 가장 내밀하고도 솔직한 대화였다. 또한 나의 불완전함과 한계를 통감하게 만든 전신사방거울과도 같았으며 애 딸린 아줌마의 정신건강을 위한 정기적인 밤 외출이기도 했다. 헉소리 상담소를 진행하면서 ‘마성의 여자, 타성의 여자’, ‘귀여운 여자의 행동지침’ 등 말도 안 되는 특집을 여러 번 기획했었는데 다시 들어봐도 정말 웃기다. 그리고 밀폐된 스튜디오 안에서 음악이 나갈 동안 또래 남자애(?)인 DJ유와 나눴던 19금 토크도 기억에 남는다. 은 좋은 사람들을 만나 더불어 성장하고, 많이 사랑받으면서 서로에게 진심으로 고맙다고 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 곳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곳이 천국일 수 있을까. 희열아, 난 네가 정말 정말 좋다.”

<라디오 천국>│루시드폴부터 윤성현 PD까지, 나에게 <라천>이란?윤성현 PD
“언제나 나의 연출 키워드는 소속감과 취향, 두 가지다. 내가 만든 프로그램은 뚜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소속감을 갖고 듣는 라디오가 되기를 바란다. 을 듣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라천민’이라 일컬었고, ‘라천을 듣는다’는 사실은 음악적 감수성이라는 면에서 그 사람의 취향을 명징하게 드러내는 것이었다. 내 의도를 120% 충족시켰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만드는 입장에서 매일 재미있거나 보람을 느끼는 방송은 거의 없는데, 우리는 매일 그랬다. 그 중에서도 프로그램의 기능과 의미적인 측면에서 특별했던 순간을 꼽자면, ‘제 2회 라천 뮤직 어워즈’를 방송했을 때다. 우리나라에서 음악 잘 한다는 싱어 송 라이터들이 한 자리에 모여 그 해 나온 음악들을 소개하고, 상도 주고받으며 두 시간 동안 재미있게 놀았다. 단언컨대, 내 남은 방송 인생에서든 대한민국 라디오의 역사에서든 이런 프로그램은 다신 없을 것 같다. 이 방송됐던 시간들은 ‘Golden Age’다.”

<라디오 천국>│루시드폴부터 윤성현 PD까지, 나에게 <라천>이란?김성원 작가
“‘그/그녀가 말했다’를 듣고 청취자들이 “내 이야기인 줄 알았어요”, “어려운 시절에 그녀의 이야기가 힘이 되었습니다”라고 할 때 행복하다. 내가 만든 이야기에 사람들이 공감해주는 것이 여전히 신기하고 고맙다.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내 글을 통해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무한한 영광이다. 그런 이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는 글을 쓸 때 가장 만족하고, 그 과정은 곧 나를 돕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글을 쓰는 것도 좋았지만, 스태프들과 즐겁게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우리는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하루 동안 있었던 일, 그 날의 이슈 등을 이야기하다가 생방송의 콘셉트와 소재를 찾을 때가 많았다. 서로 잘 통하는 사람들끼리 일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청취자들도 그걸 느끼고 있었고, 그래서 시너지가 더 컸다. 이제 이 끝나면 웃을 일이 10분의 1로 줄어들 것 같다. 크게 웃는 걸 좋아하는 나를 많이 웃게 해 준 유희열 씨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너, 진짜 웃겨. 저질이야~^^”

<라디오 천국>│루시드폴부터 윤성현 PD까지, 나에게 <라천>이란?윤설야 작가
“최고의 DJ와 스태프 분들 사이에서 숟가락 하나만 얹어놓고 우쭐우쭐, 까불까불 대던 사람으로서, ‘이 프로그램을 만들길 잘했다’는 주제넘은 생각은 해 본적이 없다. 하지만 가끔 부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을 때, 위로 받을 누군가를 생각하며 가슴이 짠하고 벅차올랐던 순간이 많다. 너무나 많은 날들이 기억에 남아 하나만 꼽기 어렵지만, 가장 최근의 ‘순간’ 중에서는 얼마 전 열린 첫 번째 공개방송이었다. 라디오를 통해 서로 상상만 해 오던 제작진과 청취자들이 만날 수 있었고, 의 처음과 마지막이라는 시간이 엉켜 눈으로 보면서도 그리움을 느꼈다. 그 날은 아주 오랜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나에게 은 ‘화양연화’라는 표현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애틋하고 소중한 프로그램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언젠가, 어디선가, 꼭 다시 만날 것을 믿고 있다.”

정리. 황효진 기자 seventeen@
사진. 채기원 ten@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