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라│춤과 노래로 가득한 뮤지컬 영화

“변소 안 치우지?” 마치 히어로물의 한 장면 같았다. 영화 <써니>에서 전학생 나미(심은경)에게 시비를 거는 아이의 머리에 가방을 집어던지고 교실 문에 하춘화가 위풍당당하게 등장하는 순간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의로운 절대자의 등장. 그리고 누구나 직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캐릭터의, 그리고 이 배우의 존재감은 작품 전체를 지배할 것이라는 것을. 유승호와 호흡을 맞춰 화제가 됐던 데뷔작 <4교시 추리영역>과 소심과 궁상 사이를 오가며 독특한 캐릭터를 보여준 tvN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 7>이 있지만, 신인으로서 강소라 경력의 인상적 방점은 역시 <써니>다. 단순히 600만 관객을 돌파한 흥행 때문만은 아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고등학생 시절의 춘화는 약한 자에게 관대하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진짜 멋진 친구다. 책상을 뒤적거리면 동급생부터 후배까지 여자 아이들에게 온 팬레터가 잔뜩일 것 같은 보이시한 여고생. 현재와 과거가 교차 편집되는 이 작품에서, 무엇이든 가능할 것 같았던 과거의 기억이 힘을 얻는 건 팔 할 이상이 천하무적 하춘화의 캐릭터에서 나온다.

물론 캐릭터의 매력을 온전히 배우의 힘으로 돌리긴 어렵다. 그럼에도 단언컨대, 보이시한 여고생 하춘화만큼은 “혼자 외출할 땐 비비크림 바르는 것도 번거롭다” 말하는 강소라 특유의 태도를 통해 피와 살로 만들어진 존재가 될 수 있었다. 모두가 예쁘고 신비로워 보이고만 싶어 하는 영역에서 “1인 1닭이 진리”라 말하는 신인 여배우의 등장. 미래의 휴대전화를 상상하는 여고생 춘화와 고등학교 시절 연극반에서 SF 장르 작품을 썼던 강소라의 이력이 겹쳐 보이는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하여, 그 자체로 흥미로운 캐릭터의 토대가 되는 이 소탈한 느낌의 신인이 SF나 호러가 아닌, 춤과 노래로 가득한 뮤지컬 영화를 추천하는 것이 조금은 의외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고3 때 도서 대여점에서 아르바이트하며 모은 돈을 몽땅 쓰며 본” 작품들이라면 역시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 않을까.


1. <헤드윅> (Hedwig And The Angry Inch)
2000년 | 존 카메론 미첼

“<헤드윅>은 고등학교 때 영화로 처음 봤어요. 사실 그 때는 남들이 재미있다고 말하는 영화를 찾아볼 때라 <헤드윅>이 재밌다기보다는 이상한 작품으로 느껴졌어요. 그러다 대학 들어가고 다시 보니 정말 좋더라고요. 나중에는 존 카메론 미첼 감독의 <숏버스> 같은 작품도 찾아볼 정도로요. 작품에 등장하는 뮤지컬 넘버 중 ‘The Origin of Love’를 비롯해 ‘Wicked Little Town’, ‘Wig in the Box’를 좋아해요.”

미국의 록음악을 삶의 도피처로 삼은 동베를린의 청년 한셀에게 미국은 꿈같은 유토피아다. 미군 병사가 성전환 수술을 조건으로 그에게 미국에서의 결혼 생활을 약속하지만 수술 실패는 그를 사회적으로 여성도 남성도 아닌 괴물 같은 존재로 만든. 그는 그 운명을 저주하는 대신 헤드윅이라는 새로운 정체성과 함께 공연을 하고, 자신의 곡을 훔쳐 스타가 된 토미에게 자신의 존재를 다시 각인하기 위해 애쓴다.

2. <아가씨와 건달들> (Guys And Dolls)
1955년 | 조셉 L. 맨키위즈

“저는 <아가씨와 건달들>로 말론 브란도를 처음 만났어요. 보통 말론 브란도라고 하면 영화 <대부>의 보스로 처음 만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사실 <대부>가 명작이긴 해도 여자가 빠질 취향의 영화는 아니잖아요. 남자들이 좋아하지. 저에게 말론 브란도는 뉴욕 최고의 도박사인 스카이로 더 기억에 남아요. 건달이지만 선교 활동을 하는 여자주인공 사라(진 시몬스)와 사랑에 빠지는 귀여운 매력의 남자로요.”

말론 브란도와 프랭크 시나트라, 진 시몬까지 당대 최고의 스타들이 모인 작품이다. 프랭크 시나트라는 도박 빚 때문에 궁지에 몰린 도박사 나싼으로, 말론 브란도는 내기를 너무나 좋아하는 도박사 스카이로 나오는데 이들 뉴욕의 건달들이 천 달러를 걸고 벌인 내기를 통해 스카이는 자신과 거리가 먼 정결한 숙녀 사라와 사랑에 빠지고, 나싼은 자신의 오랜 연인 아델레이드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3. <사랑은 비를 타고> (Singin` In The Rain)
1952년 | 진 켈리, 스탠리 도넌

“뭐, 너무 유명한 영화죠. 뮤지컬 영화 중에서도 <아가씨와 건달들>이나 <마이 페어 레이디> 같은 고전들을 많이 본 편인데요, <사랑은 비를 타고>도 그 중 하나예요. 고등학교 때 고전 DVD를 묶어서 파는 걸 보고 재밌겠다 싶어서 사서 봤어요. 사실 디테일한 장면들은 잘 떠오르지 않지만 그 유명한 원테이크 장면, 진 켈리가 사랑의 기쁨 때문에 비를 억수로 맞으면서도 ‘Singin` In The Rain’을 부르는 모습은 계속해서 기억에 남아있어요.”

코미디언 돈 록우드(진 켈리)는 유명 여배우 리나 레이먼트(쟌 하겐)과 함께 영화를 찍으며 승승장구하지만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오며 리나의 목소리 연기 문제로 인기를 잃는다. 이후 그가 연기와 노래에 뛰어난 캐시(데비 레이놀즈)의 목소리를 빌려 립싱크로 뮤지컬 <노래하는 기사>를 만드는 과정은 사람의 목소리, 그리고 노래의 힘에 대한 헌사를 위한 것과 다름없다. 요컨대 뮤지컬에 대한 뮤지컬 영화라 할 수 있다.

4. <시카고> (Chicago)
2002년 | 롭 마샬

“제타 존스 언니나 르네 젤위거 언니 둘 중 어느 한 명에게 치우치지 않는 연출과 무대 회전과 무대 조명을 살린 효과가 굉장히 인상적인 작품이에요. <시카고>의 넘버는 정말 어느 하나 빠질 것 없이 좋아하지만, 노래 이상으로 밥 파시의 안무를 너무 따라해 보고 싶어서 이번 <써니>의 안무 선생님께 살짝 배워봤는데 몸이 워낙 안 따라주더라고요. 선생님이 포기하셨어요. 도저히 제타 존스, 젤위거 두 언니를 따라갈 수 없을 거 같아요.”

시카고를 마이클 조던이 있던 시카고 불스 정도로만 떠올리는 이들에게 <시카고>는 이 도시의 관능적 매력을 극대화해서 보여주는 작품이다. 무대 위에 오르고 싶던 꿈이 좌절되며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록시 하트(르네 젤위거)와 이미 유명 보드빌 배우이자 내연 관계인 여동생과 남편을 쏴 죽인 벨마(캐서린 제타 존스)는 같은 교도소에서 수감된다. 최고의 변호사 빌리 플린(리처드 기어)이 두 사람의 사건을 맡게 되며 그들은 죄인이 아닌 세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스타가 되어 기이한 인기 경쟁을 벌인다.

5. <헤어스프레이> (Hairspray)
2007년 | 애덤 쉥크만

“정말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특히 캐스팅. 존 트라볼타가 그렇게 나올 줄은 정말 몰랐어요. 제 기억의 존 트라볼타는 <그리스>의 그토록 멋진 남자였는데 그 분이 아줌마로 나오니, 정말 쇼킹했죠. 대학교 1학년 때인가, 고3 때인가, 영화를 보려고 손꼽아 기다리다 개봉일에 동네 극장에서 봤었는데 마지막 영화 크레디트 올라가며 ‘You Can`t Stop The Beat’가 나올 때 극장에 있던 외국인 두 명이 일어나서 춤을 추던 모습이 아직도 인상 깊게 떠올라요.”

영화의 배경인 볼티모어의 십대들에게 TV쇼 <코니 콜린스 쇼>에 출연하는 것, 그리고 여기서 최고의 댄싱퀸인 미스 헤어스프레이에 뽑히는 것은 가장 이루고 싶되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는 꿈이다. 누가 봐도 비만 체형이지만 성격만큼은 밝고 경쾌한 여주인공 트레이시(니키 블론스키)가 사람들의 편견과 악녀 벨마(미셸 파이퍼)의 방해를 물리치고 <코니 콜린스 쇼>에 진출하고 흑인 소녀 아이네즈가 인종 차별에도 불구하고 미스 헤어스프레이가 되는 과정은 십대에게만 허락된 넘치는 에너지를 보여준다.


“아직은 무엇이든 배우는 느낌으로 즐겁게 일하고 싶다”고 말하는 강소라에게도 본격적인 예능은 조금 부담스러운 것이었을까. 최근 MBC <우리 결혼했어요>에 슈퍼주니어의 이특과 함께 합류한 그는 <써니>의 그것과는 거리가 먼, 혹은 SBS <강심장>에서 보여준 시원시원한 태도와도 다른, 수줍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특이 던지는 애칭에도 거의 혼절하듯 주저앉는 모습은 어째서 제작진이 그녀를 선택했는지 짐작하게 해준다. 이 신인은 연기가 아닌 영역에선 아직 ‘방송’을 하지 않는다. 할 줄 모른다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그래서 어쩔 줄 모르는 태도가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만들어내는 리얼한 질감. 카메라 앞에서 혹은 대중 앞에서 자신을 감추지 않는 그에게, 하춘화를 연상케 하는 캐릭터도, <우리 결혼했어요>의 수줍은 모습도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다. 과연 그 태도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영화에서, 드라마에서, 예능에서 어떤 식으로 드러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벌써 이렇게나 멀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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