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일권 “<목욕의 신>을 볼 때마다 3분 정도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하일권 “<목욕의 신>을 볼 때마다 3분 정도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목욕의 신, 테미러스를 아는가. 인간들에게 신만의 고유 권한이었던 목욕의 비법을 전해주었다가 아버지 제우스의 노여움을 산 비운의 신. 모른다고 본인의 교양 수준에 대해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신화도, 야사도 아닌 웹툰 에 등장하는 가상의 신이니까. 목욕에 대한 가상의 신화가 나오고, 때밀이로 사나이의 자존심을 건 목욕투를 하는 이 만화는, 요컨대 허무맹랑하다. 하지만 수많은 네티즌들이 이 작품에 지지를 보내는 건 그저 허무맹랑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름이 성격을 대변하는 주인공 허세가 자신이 속한 거대 목욕탕 금자탕 안에서 성장하는 이야기는, 스크롤을 내리는 내내 근심 없이 웃을 수 있지만 동시에 금자탕 안의 청춘들을 응원하게 한다. 허무맹랑함이 땅 위에 발 디딘 사람들의 욕망과 고민과 연결될 때, 가상은 실없는 거짓말이 아닌 힘 있는 이야기가 된다. 이 흥미로운 작품의 창조주인 하일권 작가와의 인터뷰는 그래서 가상의 세계 에서 시작해 자연스레 땅 위의 고민으로 이어졌다.

최근에 연재 중인 은 전작들과 비교해 훨씬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하일권 : 사실 좀 놀랐다. 이렇게까지 반응이 좋을 거라 생각을 못했는데 많은 분들이 봐줘서. 조회 수도 그렇고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르는 걸 보는 것도 그렇고 신기하다. 댓글도 많고. 감이 떨어졌는지 나는 이게 되게 마니악한 만화가 될 거라 생각했다.

전작들의 첫 회는 도입부 성격이 강했는데 이번에는 첫 회부터 대놓고 ‘이거 되게 재밌는 만화야’라고 말하는 느낌이었다.
하일권 : 이런 건 처음이지. 형식이 아주 크게 바뀐 건 아니지만 나로선 굉장히 많은 변화가 있었다. 모험이기도 했고. 가장 크게 바뀐 점이 있다면 주인공이 학생이 아니라는 게 정말 큰 변화였고. 여러 가지 시도를 많이 해보고 싶었다.

“은 웃기기만을 위해 시작”
하일권 “<목욕의 신>을 볼 때마다 3분 정도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 기획 과정이 궁금하다. 목욕관리사라는 직업을 소재로 한 것도 그렇고.
하일권 : 원래 끝나고 기획한 건 다른 만화였다. 짧은 호흡의 개그 만화를 하려고 여유 있게 작업하고 재충전도 하고 싶었는데, 처음 해보는 장르라 어렵더라. 네이버 담당자 분 반응도 딱히 좋지 않고. (웃음) 그렇게 시간이 제법 지났는데 아무래도 더 준비해야 할 것 같고 연재를 너무 오래 쉴 수도 없어 당장은 이 주제로 못할 것 같다고 엎었다. 그럼 이제 뭐하지? 다음 달부터 연재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고민을 하다가 아침 일찍 목욕탕에 갔다. 넓은 탕에 나 혼자 멍하게 누워서 이것저것 생각을 하는데 너무 좋은 거다. 그 느낌이. 개인 전용탕 같기도 하고. 그런 ‘뻘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여기 주인이고 전용 때밀이가 있어서 때를 밀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목욕탕 만화가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누가 주인공이면 좋을까. 이발하는 분도 있고 계란 파는 분도 있고 구두 닦는 분도 있지만 아무래도 때밀이가 목욕탕을 대표하는 직업 아닐까. 그렇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오는데 어떤 상황을 갖다 붙여도 때밀이가 주체면 너무 재밌는 거다. 가령 를 되게 재밌게 봤는데 거기서 목욕투도 연상이 되고. 계속 생각을 했고 스토리가 그 탕에서 거의 다 나왔다.

바로 연재가 가능한 수준으로?
하일권 : 준비는 한 2, 3주 만에 했다. 큰 준비 없이 정말 웃기기만을 위해 시작하게 됐다. 이번에는 개그 만화, 해보고 싶은 걸 해보자는 생각으로.

그런데도 연출이 너무나 매끄럽다. 원래 종 스크롤 연출을 잘하기도 했지만.
하일권 : 이번 은 정말 웃기고 가볍게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특별하게 힘을 준 연출은 거의 없다. 누가 보더라도 막힘없이 읽을 수 있는 게 우선이다.

하지만 항상 셀카를 찍던 허세가 처음으로 목욕탕 풍경을 찍는 장면처럼 인상적인 지점들이 있다.
하일권 : 그건 처음부터 생각해둔 장면이었다. 원래 싸이홈피 글을 비롯해 허세 관련한 개그 소재들을 좋아해서 써먹고 싶었는데, 사회적으로 많이 인정받지 못하는 직업을 가졌지만 허세 가득한 인물이 나오면 재밌을 거 같아 이번에 허세 캐릭터를 만들었다. 그런 캐릭터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게 셀카인데 그런 행동에 조금씩 변화를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허세 캐릭터를 비롯해 아예 웃기고 황당한 설정으로 가니까 직업군에 대해 너무 전문적으로 접근하지 않아도 될 것 같던데.
하일권 : 그래도 취재를 했어야 했는데 너무 급하게 준비하느라 그러지 못했다. 때밀이 전문 교육학원에 견학이라도 갔어야 했는데. 다만 때를 밀긴 많이 밀어봤다. 예전 어렸을 때 몇 번 밀고는 안 밀어봤는데. (웃음) 어쨌든 허무맹랑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만 너무 멀리 가버리면 공감하는 부분이 떨어질 것 같아서 균형을 맞춰야 할 것 같다.

주인공 허세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동네 목욕탕의 정서 같은 것?
하일권 : 누구나 목욕탕은 가보지 않았나. 어렸을 때는 부모님 따라 자주 갔다가 나이 먹으면 안 가고. 약간 향수가 있지 않나. 약간 푸근한 느낌? 그런 거에 대해 표현하면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금자탕은 판타지적인 공간인 동시에 일종의 이상향”
하일권 “<목욕의 신>을 볼 때마다 3분 정도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일까. 주인공이 허세이긴 하지만 때론 금자탕이라는 공간 자체가 더 주인공 같다는 느낌이다.
하일권 : 금자탕이라는 곳 자체가 굉장히 말도 안 되는 곳이지 않나. 굉장히 판타지적인 공간인데 일종의 이상향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세는 욕심도 많고 이상도 높지만 차가운 사회에서 잘 안됐다. 그랬던 허세가 아버지 때문에 특히 천대하던 때밀이라는 직업과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열심히 배워나가는 공간이 금자탕이다.

의 삼봉과 장미도 그렇고, 의 아이와 ‘ㄹ’도 그렇고 사회가 도외시하는 가치를 혼자 지키는 존재들이었다면 금자탕은 그런 걸 공유하는 공동체 같다.
하일권 : 예전에는 정말 주인공 혼자 해왔다. 이번 작품 안에도 분명 대립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금자탕 안에서만큼은 좀 다른 거 같다. 목욕탕 바깥에서의 허세 이야기도 나오지만 거의 대부분의 공간이 목욕탕이라 밝은 느낌이 난다.

이번 작품은 웃음을 가장 크게 고려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전작들과 함께 그런 가치들을 놓치지 않는다. 사람들이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잃고 사는 보편적 가치들에 대해.
하일권 : 내 만화에서 그런 이야기를 계속 하고 싶다. 다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지키지 못하는 것들. 듣고서 좋다고 하지만 또 잊고 바쁘게 살고. 그런 걸 환기시키고 독자를 위로할 수 있는 만화를 그리고 싶다. 나 역시 그런 작품들을 보며 용기를 많이 얻었었고.

처음 창작을 할 때도 그런 마음이었나.
하일권 : 아니다. 그 땐 남들에게 그런 걸 전해줘야겠다는 것보단 내 개인적 만족이 컸다. 를 그릴 때는 독자가 나 한 명이니까 그 때 했던 이야기는 다 나에게 하고 싶던 말이었다. 내가 만화를 보고 맞아, 괜찮아, 이렇게 위로 받고 싶어서.

어떤 고민을 하고 있었나.
하일권 : 남들과 다른 삶을 살고 있는데 낙오되는 건 아닌가. 지금이야 웹툰 작가라는 직업이 많이 알려졌지만 내가 웹툰을 시작할 때만 해도 그렇게 인식이 좋지 않았다. 심지어 만화계에서도 ‘웹툰이 무슨 만화야’라는 식의 반응이었고. 취직해서 다른 친구들처럼 안정적으로 살아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를 그릴 때까지도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다.

앞서 말했지만 전작들에서 그 고민의 주체들이 학생이다. 본인의 학창 시절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하일권 : 그런 시기에 대해 집착이랄까 그런 게 있는 건, 그 시절이 굉장히 좋으면서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림 전공도 아무 생각 없이 있다가 고등학교 2학년 2학기 때 급하게 결정했다. 낙서하는 걸 좋아하긴 했는데 그림 잘 그린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미술 전공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부터 배웠지. 심지어 집에서 반대도 많았고.

애니메이션 학과에 간 건 본인 의지였나.
하일권 : 그 때도 붙어서 간 거였다. 만화를 하고 싶은 건 아니었고 뭔가를 창작하고 싶었다. 어떤 형태가 될지는 모르지만. 말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은 아닌데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그게 소설이건 시나리오건 음악이건 뭐든 상관없었던 거 같다.

그래서 주인공들에게도 가능성을 열어두려는 거 같다.
하일권 : 인생에 있어서 정말 반짝이는 소중한 시간이다. 그래서 만화로 그리게 된다. 노인을 그려도 재밌고, 중년의 삶도 재밌겠지.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은 점점 안 변하는데, 그 시기엔 가장 큰 변화를 겪을 수 있기 때문에 이야기로 만들기에 가장 좋다.

“내년에 결혼을 하면 아무 것도 안 하고 쉬고 싶다”
하일권 “<목욕의 신>을 볼 때마다 3분 정도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게 스스로를 위로하는 이야기가 된 건데, 언제쯤 내 만화를 독자들이 보고 있다는 자각을 했나.
하일권 : 가 끝날 때 즈음? 연재하면서 댓글도 받아보고,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보고,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내게 하는 위로가 특별한 게 아닌, 누구에게나 할 수 있는 말이니까 남에게도 그 위로가 똑같이 전달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럼에도 쉽게 세상이 변하는 해피엔딩을 보여주지 않는다. 은 심지어 새드엔딩이었고. 무책임한 희망을 경계한다는 느낌?
하일권 : 절대 그렇다. 자기가 백퍼센트 진심으로 느끼고 확신하지 않는 이상 만화에 그걸 쓰면 안 된다. 무책임하게 다 잘 될 거야? 그렇지 않다는 걸 빤히 아는데 그렇게 무책임하게 하면 당연히 독자들도 공감 못할 거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훨씬 밝은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고, 스스로도 까지 그런 고민을 했다고 했다. 이번 작품을 연재하면서는 고민이 어느 정도 해결된 건가.
하일권 : 좀 괜찮나? (웃음)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을 하며 그런 고민을 하고 있진 않다. 때까진 내 고민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은 아예 그걸 바꿨다.

직업에 대한 안정감도 중요할 것 같은데. 이 직업에 대한 경제적 비전이 보이나.
하일권 : 그런 게 생기지. 물론 아직도 신인 작가들은 똑같이 힘들지만, 나는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만화가를 못하겠다, 하는 건 없다.

하일권이라는 만화가 개인의 경력이 쌓여서일까, 웹툰 시장이 활성화되어서일까.
하일권 : 둘 다다. 전에는 정말 만화를 좋아하는 마니아들이나 봤다면, 요즘은 정말 많은 분들이 웹툰을 보는 거 같다. 전체적인 조회 수도 점점 더 늘고 있다고 하고.

그러면서 유명 작가들은 셀러브리티가 되어가는 분위기가 있다.
하일권 : 느끼는데… 사실 그런 부분은 좋아하지 않는다. 분명히 작품을 많이 보고 사랑해주시니 작가에게도 관심을 가져주시는 거지만 작가가 연예인은 아니지 않나. 부담스럽더라. 나는 뒤로 빠지고 작품에만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다.

하지만 본인의 만화가 위로가 되는 것처럼, 젊은 창작자들에게는 하일권이라는 만화가가 다양한 작업을 통해 유명해지는 과정이 위로가 될 수도 있다.
하일권 : 나처럼 그리면 안 된다. 나를 최대한 노출 안 하려고 해서 잘 모르겠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만 생각하면 안 된다. 나는 비정상적으로 일을 하고 있다. 어떤 테스트가 있는데 150점 이상이면 심각한 일중독이라더라. 그런데 내가 해보니 300점이 넘게 나온 거다. 정말 삶이 피폐해지고 있다. (웃음) 젊은 나이에 빨리 성과를 이뤘다고 할 수도 있는데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무리해서 하면. 나는 그 균형을 못 맞춰서 힘든 거다. 지금 도 무슨 밑천으로 그리는지 모르겠다.

그럼 연재를 끝낸 뒤 얼마나 쉬고 싶나.
하일권 : 일단 내년 4월에 결혼을 한다. 을 1, 2월 중에 끝내고 결혼을 하고 내년에는 아무 것도 안 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결혼하고 바로 실직자가 되면… (웃음) 정말 많이 쉴 거다. 그럴 필요가 있고. 점점 더 느끼는 게, 이 직업은 하면서도 재밌어야 버틸 수 있는 직업이란 거다. 1화는 정말 재밌게 그렸다. 원래는 되던 안 되던, 누가 보든 말든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그리겠다고 시작했는데 사람들 반응이 이렇게 좋을 줄은 몰랐다. 이게 오히려 부담이 되긴 한다.

심지어 만화는 갈수록 유명해지는데.
하일권 : 그러면 그럴수록 초심으로 돌아가려 한다. 한 회, 한 회, 볼 때마다 독자들이 3분 정도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딱, 그러려고 그린 만화다.

글. 위근우 기자 eight@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