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현 수화통역사 “정치적인 입장이 있어도 수화통역은 공평하게”

 

지난 12월 4일부터 16일까지총 네 차례에 걸쳐 진행된 제 18대대통령선거 후보자 토론회에서 후보들과 함께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한 사람이 있다. KBS 1TV 화면 오른쪽 아래 조그맣게 자리 잡은 동그라미 안에서 온갖 표정과 입 모양, 수화를 이용해 후보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전하던 조성현 수화통역사다. 토론은 때론 주춤거리고, 때론 혼란스러웠으나 조성현 씨의 수화만큼은 길을 잃는 법 없이 한결같이 성실했다.인터뷰가 있던 날,방송에서와 같이검은색 정장을 입고 나타난 그는 말하는 내내 손을크게 움직이고 다양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무엇보다,수화통역과 사회복지에 관한 생각을 전하는 그의 목소리는 방송에서들을 수없다는 사실이 아쉬울 정도로 따뜻하고 다정했다.

Q. 대선 후보 토론 방송이 화제가 되면서 덩달아 관심을 많이 받고 계신 것 같아요.실감하시나요.

조성현: 방송 끝나고 나면 무지하게 연락이 와요. 문자나 전화로 ‘오늘은 얼굴이 어떻다’부터 시작해서 뭐…. (웃음) 한 달 전쯤엔 KBS 뉴스의 한 코너에서 나를 찍어간 적이 있는데, 그때도 전국 각지에서 연락이 오더라고요. “너 방송 나온다” 라고 하길래 “방송은 뭐, 나 만날 나오는데” 그랬죠.

 

Q. 토론 외엔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조성현: KBS 5시 뉴스의 수화 통역을맡고 있어요.

 

Q. 그러면 손동작을 잘 보이게 하기 위한 검은색 정장도 매일 입으셔야겠어요.

조성현: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늘 똑같이 검은색만 입어요. 색깔 있는 양복이 몇 벌 있긴 한데, 방송을 매일 하니까 입을 틈이 없더라고요. 안 입은 지 십 년이 넘은 것 같아요.하다못해 일요일에도 방송을 하니까요. 그래서 나름대로 넥타이로 포인트를 주려고 하는데 이것도 너무 튀면 안 되거든요. 방송 보시는 청각장애인분들의 시선이 제 손으로만 와야 하잖아요. 한번은 노란색 넥타이를 선물 받아서 방송에 하고 나갔더니 아는 청각장애인 동생이 문자로 “오빠, 넥타이 너무 튄다” 그러더라고요. 다만 메이크업은 스스로 해요. 그렇지 않으면 기름기 때문에얼굴이 반사돼서 나온대요. ‘매화남’이죠. 매일 화장하는 남자. (웃음)

“대통령 후보들의 정책은 다 꿰고 있다고 볼 수 있죠”

Q. 수화통역사를 시작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조성현: 방송은 1992년부터, 뉴스는 1994년 6월부터 시작했어요. 햇수로는 19년 차죠. KBS에 소속된 건 아니고, 계약직도 아니니까 프리랜서 개념이라고 해야 하나. 처음엔 청각장애인 복지관에 근무했는데, 직원들이 방송사 수화통역을 나눠서 맡기 시작했어요. 그때 제가 제일 막내여서 KBS를 맡게 됐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하는 거죠. 당시 같이 시작한 사람 중에선저 혼자 남아있어요. 방송 3사를 통틀어서 아마 제일 ‘왕고’일 거예요. (웃음)

 

Q. 처음 뉴스통역을 하게 되셨을 땐 어떠셨나요.

조성현: 10분 짜리 뉴스였는데 끝내고 나서 담이 왔어요. 방송할 때도 눈에 땀이 맺히는 바람에 앞이 안 보이더라고요. 카메라 앞에 서는 것도 처음이지, 게다가 생방송이지. 한동안 그랬던 것 같아요. 뉴스가 끝나면 뭘 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긴장이 됐어요. 지금은 통역을 하면서 다른 생각도 해요. 그만큼 습관이 된 거죠. 다른 통역사들은 뉴스 시작하기 전에 원고도 보는데, 저는 게을러서 잘 안 보는 편이에요. 사실 오전 뉴스를 보고 오면 오후 뉴스에도 거의 비슷한 내용이 나오기 때문에 통역하는 데 무리가 없거든요.

 

Q. 들으면서 바로 내용을 이해하고, 그걸 다시 전달해야 하니까 더 힘드실 텐데요.

조성현: 언어로 통역하는 것과똑같아요. 특히 수화는 각 단어를 정확하게 이야기하는 것보다 전체 흐름을 전달해주는 게 더 필요하죠. 그래서 뉴스에서는멘트가 언제 끝날지 모르니까 영어 문장까지 한국어 문법으로 전달하기도 해요. 일 대 일 수화통역이랑은 좀 다른 거죠. 그러다 보니 아는 청각장애인들한테 많이 혼나요. ‘나 만나면 통역 잘하면서, 방송에선 왜 그렇게 못하냐’고. (웃음)

Q. 수화로 풀기에 어려운 단어도 많지 않나요.

조성현: 그래서 공부를 하는 거예요. 모르면 통역을 할 수 없으니까요. 미국 같은 경우는의료나 법률 등 영역별로 자격을 주지만, 한국은 아직 그런 제도가 갖춰져 있지 않거든요. 개별적으로 공부 하는 수밖에 없는데, 신문도 많이 보고 방송 들어가기 전에 앵커나 PD를 붙잡고 물어볼 때도 있어요. 특히 경제나 정치같은 건 어려운 게 많으니까 더 그래요. 어쨌든 말을 전하는 사람이 먼저 이해를 해야죠.

 

Q. 대선 후보 토론 준비와 일반 뉴스를 준비하는 것에차이가 있을까요.

조성현: 크게 차이는 없어요. 故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출마하셨던 15대 대선부터 토론 통역을 맡아오고 있는데 후보들 원고는 꼭 보고 방송에 들어가요. 아무리 나한테 정치적인 입장이 있더라도 누구는 통역을 잘해주고, 누구는 대충해주고 이렇게 되면 안 되니까요. 이번 대선 후보 토론의 통역을 앞두고는 박근혜, 문재인, 이정희 후보 세 분의 정책도 한 번씩 다 봤어요. 거기다 토론 봤지, 연설도 만날 들었으니까 이분들의 정책은 다 꿰고 있다고 볼 수 있죠.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와 지금의 환경은 하늘과 땅 차이”

Q. 세 분의 말하는 방식과 속도가 다른데, 각자 어디에 중점을 두고 통역하셨나요.

조성현: 박근혜나 문재인 후보는 억양이 거의 없이 조용조용하시니까, 저도 모르게 통역도 부드럽게 하게 돼요. 그런데 이정희 후보는 말이 빠르고, 들이미는 스타일이라 수화로 표현하는 것도그렇게 되더라고요. 원래 수화가 사람이 하는 말의 억양과 감정까지 같이 전달을 해서 표정이 반이거든요. 수화통역사들은 연기를 잘해야 해요. (웃음)

 

Q. 온 힘을 다해 통역하는 건데, 토론이 두 시간이나 진행되니까 체력적으로도 힘드시겠어요.

조성현: 행사를 가면 보통 30분 기준으로 통역사 교체가 이루어져요. 그런데 방송은 그게 없어서, 올림픽 때도 4시간 동안 땀을 뻘뻘 흘리면서 통역을 했거든요. 토론 때는 음료를 옆에다 갖다 놓고 마시면서 했어요. 입 모양을 읽는 분들도 계시기 때문에 구화를 같이 하니까, 공기가 들어와서 입이 말라요. 그래서 처음엔 캔커피를 마셨는데상품명이 노출되니까 너무 광고 같더라고. (웃음) 나중엔 그냥 종이컵을 갖다 놓고 마셨어요. PD들도 “다른 방송엔 아무도 먹는 사람이 없는데, 자연스럽게 한다”면서 놀라더라고요.

 

Q. 진짜 노련하신 것 같아요. (웃음) 곤란할 때는 없으신가요.

조성현: 두 사람 이상의 말이 물릴 때는 어렵죠. 처리 방법이 없어요. 사실 좋은방법은 한 사람 당 수화통역을 따로 따로 맡는 거예요. 그런데 방송사 입장에서는 그게 기술적으로 어렵거든요. 통역사한테 카메라 감독도 따로 붙어야 하고, 조명도 따로 달아야 하고… 오천만 명이 보는 방송에서 오십만 명을 위해 그 정도 배려를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 거겠죠.

 

Q. 그나마도 일을 막 시작하셨을 때의 환경과 비교하면 좀 나아진 걸까요.

조성현: 아유, 하늘과 땅 차이죠. 처음엔 수화통역이 붙는 방송도 일주일에 두 번 정도밖에 없었고, 자막도 없었어요.지금은 전체 방송의 3퍼센트는 수화통역을 해야 한다고 법으로 정해져 있어요.

 

Q. 그만큼 수화통역 자체가 일반적이지 않은 때였는데, 이 일을 시작하시게 된 계기는 뭔가요.

조성현: 군대를 다녀왔는데 동네 친구가 수화를 배우고 있더라고요.저는 그 친구가 데려온다른 청각장애인 친구와 얘기하고 싶어서 배우게 됐어요.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에서서울 강남까지5시간씩왔다갔다하면서 배웠죠. 그러다가 자원봉사를 다녔는데 2년 정도 청각장애인들과 살다시피 했어요. 실제로 수화를 배운 건 3개월이었는데, 현장에서 선배들을 쫓아다니면서 몸으로 익힌 거죠.

 

Q. 원래 관심이 있으셨던 거예요?

조성현: 전혀요. 공대생이었어요. (웃음) 그런데제 안에는 그런 마음이 있었나 봐요. 어릴 때 어머니께서 어려운 분들을 많이 도우셔서, 그걸 보고 자랐던게 생각이 나요. 대학교 입학했을땐 자원봉사에 관한 신문 기사를 오려서 지갑에 넣어 다니기도 했고요. 그러다가 수화를 접하게 됐고, 자원봉사자인데도 복지관에 직원보다 먼저 출근해서 늦게 퇴근하니까 직원으로 들어오라고 하시더라고요. 담당 교수님하고도 상담했는데 처음엔 말리시더니 나중엔 기왕 할 거면 최고가 되라고 하셨어요. 그 한마디에 ‘그래. 남들이 안 가본 길이니까 한번 가보자’ 이렇게 된 거예요. A형, 그중에서도 최고로 소심하다는 ‘트리플 A형’인데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웃음)

 

Q. 원래 꿈이나 목표하셨던 직업은 무엇이었나요.

조성현: 그때 그때 달랐어요. 중학교 때까지는 태권도를 10년 넘게 했는데, 중 3이 되니까 키가 안 자라더라고요. (웃음) 공부 해야겠다 싶어서 접었고, 대학교 때는 또 사진반 활동을 했어요.

“수화통역을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Q. 어릴 적부터 하고 싶었던 분야도 아니고,고된 일인데 다른 일을 하고 싶은 적은 없으셨나요.
조성현: 정말 솔직히,없어요. 일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일이라는 건 누가 시켜서 하는 거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뭐가 됐든 힘들어서 못해요. 저는 그냥 제가 좋아서 즐기면서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뭐 하나 요만큼만 일을 해보려고 시작하면, 끝에 가서 꼭 이만큼 커져요. 사회복지사로 활동할 땐 팀원들이 일 좀 따오지 말라고 하기도 했어요. 그런 것들을 하는 게 너무 재밌더라고요. 지금 하고 있는 방송도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법적으로도 아니고요. 하루 8시간 이상 일해야 근로라고 하는데, 하루에 15분 밖에 안하니까. (웃음)

Q. 이 일을직업으로 삼고자 하는분들에겐 뭐라고 하시는지요.

조성현: 못하게 하죠. (웃음) 그래도 꼭 하고 싶다는 친구들한테는 본인이 원해서 하는 일이라는 걸 잊지 말라고 해요. 그다지 좋아하는 단어는 아니지만, ‘봉사’라는 걸 잊어버리는 순간에 우리는 있을 필요가 없는 사람이 돼버리는 거거든요.자신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공부했더라도, 남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해요. 그래서 일을 그만두는 친구들을 말리지 않아요. 자기를 먼저 생각하는 순간 힘들어지는 거니까요.

 

Q. 사회복지에 대해서 이론적으로 좀 더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은 없으신가요.

조성현: 이쪽 일을오래 했으니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물어보시던데, 현장이 더 좋아요.다만 사회복지사를 그만둘 때 아내한테 “20년 동안 열심히 일했으니까 2년만 놀게. 안식년 줘” 그랬는데 올해로 5년 차가 됐어요. 방송일은계속 했어도술 마시는 거 정도 버니까 뭐… (웃음)

Q. 혹시 가족분들도 수화를 할 줄 아시나요.

조성현: 사실, 수화를 배우다가 아내를 만난 거예요. 후배 대타로 강의를 나갔다가 거기서알게 됐죠. 나중에 보니 아내가 천리안 수화 동아리 부시삽이더라고요. 전 회원이었고요. 그래서 채팅으로 이야기를 하다가 오프라인에서도 만나기 시작하면서연인이 됐어요. 영화 <접속>을 봤을 땐 “어, 우리 이야기네” 그랬죠. (웃음)

 

Q. 수화가 인생을 바꾼 거네요.

조성현: 네.수화와 함께제 인생을 바꾼 세 여자가 있어요. 어머니, 처음 수화를 배우게 된이유였던 그 친구, 그리고 지금의 아내.

 

Q. 수화통역사란 직업에는 정년이 없잖아요. 언제까지 하고 싶으세요?

조성현: 할 수 있을 때까진 하겠죠. 그런데 요즘 보면 방송에서 활동하고 있는 통역사 중에 나이도 제일 많고 해서그만둬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요. 잘하는 친구들도 많고, 이 얼굴보다는 젊은 얼굴이 나와야 되겠다는 생각도 들고… (웃음) 그리고 제가 예전에 일했던 복지관 쪽에 하나 제안한 게 있어요. 나중에 나이를 더 먹으면 경비원으로 들어가고 싶다고요. 아무래도 수화를 할 줄 아는 경비원이 있으면 청각장애인이 상담하러 왔을 때 안내해주기 좋잖아요. 참 예쁜 일 아니에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