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혜교│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어

촉촉이 비가 내리는 날. 우산을 들고 걸어가는 여자에게 갑자기 다가온 남자는 찹쌀떡처럼 쫀득한 그녀의 볼을 꼬집는다. 그리고 마침내 커다래진 눈, 분홍빛으로 놀란 볼 위로 만난 후 평균 2주가 걸린다는 봄비 같은 입맞춤이 내린다. 솔직히 말하자. 이런 사랑스러운 여자를 앞에 두고 2주를 참아낼 남자는 없을 것이다. 여하튼 평균의 시간을 위협하는 사랑의 파괴자, 순정의 송혜교는 단 15초의 등장만으로도 2011년 화장품 광고가 효과를 꼼꼼히 설명하던 과학의 시대에서, 다시 오감을 자극하는 정서의 시대로 진입했음을 알린다.

정서의 세계에 속한 배우, 송혜교

소름 끼치게 정확한 연기도, 숨 막히게 밀도 있는 연기도 아니었다. 사실 송혜교가 우리 곁으로 온 이후 지금까지 그녀는 줄곧 과학의 세계보다 정서의 세계에 속한 배우였다. 흥분하면 유난히 더 말이 빨라지던 의 ‘궁뎅이’ 혜교부터, 다시 태어나면 나무가 되겠다던 속 소녀, 한 남자의 평생을 하게 만들었던 바다 끝의 여자, ‘곰 세 마리’로 아시아 프린스를 무장해제 시키던 의 천방지축 아가씨, 의 미워할 수 없는 주준영까지, 송혜교에 대한 기억은 딱 떨어지는 ‘명장면 명대사’가 아니라 그 순간 그녀가 얼마나 예뻤는지, 얼마나 슬펐는지, 얼마나 안쓰러웠는지,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같은 정서적 기억으로 떠오를 뿐이다. 의 첫사랑 소녀처럼 가슴 뛰고 아련한 존재. 그래서 지금까지 배우 송혜교에 대한 리포트는 무한의 형용사로 채워질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송승헌 옆의 송혜교, 이병헌 옆의 송혜교, 비 옆의 송혜교, 현빈 옆의 송혜교. 송혜교라는 형용사는 줄곧 어떤 주어를 만나든지 전체 문장을 아름답게 만들어버리는 마법을 부렸다. 사랑하지만 가질 수 없는 오빠와 취하고는 싶지만 사랑하지 않았던 남자 사이에서 “돈 얼마나 줄 수 있는데요, 나 돈 필요해요”라며 눈물 흘리던 의 송혜교는 겨우 열아홉이었다. 한류의 다음 주자였던 을 만난 것도 그로부터 겨우 3년 후였다. 나이보다는 노숙한 감정의 옷을 입고 스스로 “대단한 배우들 옆에서 작품에 대한 책임감도 연기에 대한 욕심도 없던” 시절, 그러나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 시간들은 송혜교에게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체험하게 만들었다. 이후 의 씩씩함과 의 건강함을 만나며 제 나이를 획득한 송혜교는 라는 실험대를 거쳐 2008년 을 마친 이후 비로소 형용사의 세상 밖으로 뛰쳐나왔다.

높게 쌓아온 사랑스러움을 허물고 다시 시작하다
송혜교│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어
이정향 감독의 은 송혜교 특유의 사랑스러움을 도통 허락하지 않는 영화다. 어린 시절 조각난 가정도 모자라 사랑하는 약혼자까지 뺑소니 오토바이 사고로 앗아간 인정 없는 세상. 악다구니를 쏟아내도 모자랄 판에 이 여자는 십자가를 지고 언덕을 오르던 예수처럼, 다른 이들의 용서를 위해 무거운 카메라 장비를 매고 긴 계단을 하염없이 올라간다. 그리고 결국 지난 날 자신의 용서가 불러온 비극에 대한 깨달음과 자책 속에 무너져 내린다. 영화 후반부에 이르기 까지 별다른 표정이 없는 캐릭터의 미세한 감정 변화를 담아내기 위해 “작은 근육을 움직이는 연기”를 배워나갔던 시간, 은 송혜교가 구체적인 언어로 써내려 간 첫 번째 배우 일지였다.

어느덧 소녀에서 여인이 된 이 배우는 “너의 죄를 사하노라”고 선언했던 바로 그 계절에 다시 찾아왔다. 그리고 꿈 같이 달콤한 동화를 찢고 진짜 ‘용서’가 무엇인지 잔인한 질문을 시작한다. 오늘, 송혜교를 보라. 한때 그녀 앞에 놓였던 수많은 주어들에 대한 장례식을 마치고, 새롭게 쓰일 문장들을 향해 홀로 걸어가는 배우. 지금 송혜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어다.

글. 백은하 기자 one@
편집. 이지혜 sev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