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파드│실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뮤지션들의 앨범

365일 웃음이 나오는 삶을 사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매 순간 미간에 주름이 잡히는 사람도 없다. 다만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이 시점에 드는 생각은 올해는 부디 좀 더 재미난 일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나 재미란 사금과 같아서 쉽게 손에 쥘 수 없고 감나무에서 감 떨어지길 바라듯 마냥 기다릴 수도 없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웹툰 <선천적 얼간이들>의 가스파드 작가처럼 “같은 삶이라도 자기 자신의 태도와 마음가짐에 따라 얼마든지 특별하게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태도가 아닐까. ‘뭘 해도 안 되는 얼간이 신인류’라 자칭하는 낙천적 우유부단 거북이 가스파드와 말초적 친구들 삐에르, 산티아고, 로이드, 디노, 벨의 좌충우돌 라이프가 매주 목요일 사람들의 갈비뼈 사이로 이상한 웃음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네이버 웹툰 ‘베스트 도전’ 코너에서 < Natural Born Idiots >라는 제목으로 연재되다 호평을 받아 정식 연재를 시작한 지 어언 6개월. 가스파드 작가는 “‘혹시 진짜 뽑히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을 갖고 있”긴 했지만 “진지하게 멀리 바라보며 목표를 세우고 시작한 작품이 아니라 취미처럼 편안하게 시작했기 때문에 관심이 커지자, 감사한 마음과 함께 이게 보통 일이 아니구나 하는 부담감도 뒤늦게 느끼게” 되었다고 말한다.

 

<선천적 얼간이들>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가스파드 작가를 시작으로 모두 실존인물이다. 작가 자신을 거북이로 형상화한 이유는 “무뚝뚝해 보이지만 실제로 굉장히 깨알같이 재미있는 구석이 많은 동물이고, 파충류같이 언뜻 보기에 징그러운 동물도 알고 보면 매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내게는 의미 있는 동물”이기 때문이라고. 마찬가지로 동물로 형상화된 주변 인물들 역시 “외모부터 성격까지 그대로 반영하려고 노력”했고 “본인의 의사를 최대한 반영, 직접 선택한 동물들”이라고 한다. “삐에르는 실제로도 시크하고 퉁명스러운 성격이며, 산티아고도 정말로 신체능력이 뛰어납니다. 로이드는 정말로 저지르고 보는 스타일이고, 디노는 세심하고 영리하며, 펠은 오지랖이 넓고 먹성이 좋습니다. 만화적인 표현을 위한 변환도 있지만, 거의 보이는 그대로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졸지에 유명인사가 된 이들은 이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우리는 서로의 일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편입니다. 당사자들은 시큰둥한 편이며, 가장 인기 캐릭터인 삐에르와 산티아고는 별점조차 주지 않습니다.” 삐에르와 산티아고와는 함께 밴드도 하고 있다. “각자 취향이 정말 달라서 거의 모든 장르를 시도해보는 편입니다. 작업 중인 자작곡들이 있긴 하지만, 저희는 정말 자기만족과 취미로 뭉쳐 있는지라 실력은 형편없습니다. 저희보다 훨씬 실력 있는 밴드들도 많은데, 만화로 인해 이슈가 되니 부끄럽습니다”라고 밝힌 가스파드 작가가 추천한 음악은 실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뮤지션들의 앨범이다. 그러고 보면 일상에서 재미를 찾는 밝은 눈도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법이다.

1. Katatonia의 < Last Fair Deal Gone Down >
“이 앨범이 나올 당시, 레이블에서 ‘레이블 역사상 최고의 앨범’이라는 광고 문구를 썼었는데, 맞는 말 같습니다. 장르를 정의할 수 없는 독보적 스타일에, 음습한 어둠과 고급스러움이라는 양 극단의 정서를 한데 묶는 융화력을 잘 보여준 명반이라 생각합니다. 이 앨범을 듣고 있으면 머릿속에 음습한 황토색이 마구 퍼지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귀로 듣는 음악임에도 이렇게 컬러를 눈앞에 재현해내는 듯한, 오감을 가리지 않는 강력한 표현력이 부럽습니다.” 바닥에 스모그가 깔리듯 서서히 시작되는 기타 리프 위에 드럼 비트가 얹히면 지난 연말 ‘솔로 대첩’을 찾은 독거인들의 마음처럼 허무한 심상이 귓가에 펼쳐진다. 고딕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카타토니아의 2001년 발매 앨범에 수록.

2. Elbow의 < The Seldom Seen Kid >
“이 앨범은 음악성의 실험은 물론, 소리 그 자체의 실험에도 심혈을 기울인 듯한 느낌이 듭니다. 각종 다양한 소리와 음향에 자유로운 이들의 세상은, 넓디넓은 공간감을 아주 훌륭히 느낄 수 있습니다. 이들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저 자신도 마냥 스토리니 그림이니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를 깨달을 듯한 영감을 얻게 됩니다.” ‘Grounds For Divorce’는 이 곡이 수록된 앨범명인 ‘(Monday is for the drinking to) the seldom seen kid’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낡고 초라한 영국 펍에서 술 한 잔 들이켜고 싶게 만드는 곡이다. 맨체스터 출신의 Elbow는 < The Seldom Seen Kid >로 ‘2008 머큐리 프라이즈(Mercury Prize)’ 대상을 수상했고 ‘2009 브릿 어워즈(Brit Awards)’ 최우수 앨범, 최우수 그룹, 최우수 라이브 액트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3. Tool의 < Undertow >
“이들은 음악과 록이라는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더욱 거슬러 올라가, ‘표현’의 한계를 한없이 실험하고 있습니다. 독보적인 뮤직비디오로도 유명한 이들은, 자신들의 일그러진 세상 속에서 경계선 없는 정서를 정교하면서도 광폭하게 쏟아냅니다. 손바닥만 한 작은 음반 하나 속에 무한한 지옥을 담아내고 그것을 끊임없이 확장시켜나가는 이들의 실험정신은 지독히 마니악한 세계를 담아내고도 앨범 발매 때마다 빌보드 1위라는 기이한 결과를 이룩해냅니다. 극한의 예술성으로 대중의 관심을 강제로 이끄는 흡입력은 항상 본받고 싶습니다.” ‘얼터너티브’라는 이름이 신의 계시처럼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1990년대, 과장하자면 출근길 지하철 출입문에서 쏟아지는 인파처럼 쏟아진 얼터너티브 밴드의 홍수 속에서 한 때는 ‘메탈리카의 뒤를 이을’ 것이라고 평가받기도 했던 Tool. 데뷔 앨범에 수록된 ‘Sober’는 20년 전이라는 것이 놀라운 이미지를 구현한 뮤직비디오도 인상적이다.

4. Andrew W.K.의 < I Get Wet >
“요즘 흔히 ‘파티’라고 하면 와인과 클래식이 있는 고풍스러운 파티나 칵테일과 일렉트로닉 음악이 있는 클럽 파티를 생각하게 되는데, 이 앨범은 무한의 맥주와 고성방가로 가득한, 그야말로 맛이 가버리는 파티의 정수를 담고 있습니다. 단순히 과격하기만 한 게 아니라 앨범 전체에서 진하게 풍기는 긍정과 행복의 기운이 큰 상쾌함을 줍니다. 이 앨범을 걸어놓는 곳은 어디든 파티로 만들 수 있으며, 실제로도 너무나 끼가 넘치고 재미있는 삶을 추구하는 그의 자세에 절로 경외심이 듭니다.” 데스메탈의 탈을 쓴 파티 보이가 앨범 내내 파티 타령, 여자 타령이다. 아주 씩씩하게 촌스러운 사운드가 반복되는 ‘Party Hard’는 어쩐지 낙천적이어서 사랑스러운 <선천적 얼간이들> 인물들의 주제가로도 손색이 없다.

5. 오르부아 미쉘(Au Revoir Michelle)의 <님의 찬미>
“많은 퓨전 음악들이 있어왔지만, 개인적으로 올해 가장 참신한 음악을 보여준 밴드라 생각합니다. 한국음악의 걸쭉한 정서와 현대적인 헤비메탈의 결합이 아주 시원시원합니다. 대한민국은 비교적 메탈 음악의 불모지이지만, 이런 분들이 나올 때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굉장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집니다.” 김추자가 1970년에 발표한 ‘님은 먼 곳에’는 조관우, 거미 등의 가수에 의해 리메이크 되었다. 오르부아 미쉘은 KBS <톱 밴드 2>에서 트로트 사운드가 가미된 하드 록으로 이 곡을 새롭게 해석했다.

 

‘김장철 시어머니 같은 놈’, ‘very isanghang person’, ‘난 임마 공포적출수술 받았어’ 같은 다양한 언어유희도 <선천적 얼간이들>의 쏠쏠한 재미다. 이런 대사들은 특별히 준비를 통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갑자기 뜬금없이 문득문득 떠오르는 편입니다. 개그 욕심을 가진 친구들이 많아, 자연스럽게 평소 대화에서도 경쟁을 많이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과연 그 작가에 그 친구들이다. “술자리 같은 곳에서 흔히 아, 그런데 내가 어제 말이야! 로 시작되는 친구들의 이야깃거리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는 <선천적 얼간이들>의 재미는 “한정된 일상과 시간 속에서 재미있는 일이 원하는 만큼 일어나지도 않고 한계가 있지만 그런 일들을 만들어주는 사고뭉치 친구들”에게서 비롯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실 별일 아닌데도 호들갑을 떨고 특별하게 여기는 성향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의 삶은 그렇게 특별하지 않습니다. 특별했던 날보다 평이했던 날들이 훨씬 많습니다. 하지만 사건은 기다리는 게 아니라 함께 찾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가스파드 작가의 자세가 평범한 일상에 비범한 스펙터클과 에너지를 부여하는 게 아닐까.

 

“본인의 생각을 100% 표현해 내려는 <베르세르크>의 고지식함과 억지로 꾸며내지 않은 유려한 표현이 가득한 <아기공룡 둘리> 만화책 버전의 자유분방함을 오랫동안 곱씹어 즐겼”다는 가스파드 작가는 <선천적 얼간이들>이 독자들에게 어떤 작품이길 바랄까? “이 작품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무의미한 작품입니다. 보시고 무언가를 얻어 가시기보다는, 잠깐만이라도 무거운 마음과 고민을 비워내고 가시는, 그래서 웃고 나면 정말로 남는 게 없는 그런 무의미한 작품이 되고자 노력합니다. 그러니 언제든 부담 없이 찾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고로, 무욕(無慾) 속에 진리가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