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원하는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는 건 복권에 당첨된 기분”

1996년 개봉한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존재를 세상에 널리 알린 작품이었다. 전형적인 미남은 아니었지만, 장난스러운 소년과 우수에 젖은 남자를 한 얼굴에 담고 있던 청년은 자연스레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 후로 17년이 흐른 지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거뭇거뭇한 수염이 잘 어울리는 마흔 살 중년이 되었다. 그동안 선 굵은 역할들을 맡으며 연기의 외연 또한 조금씩 넓혀갔음은 물론이다. 오는 21일 국내 개봉 예정인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장고: 분노의 추적자>(이하 <장고>)에서, 그는 데뷔 후 처음으로 악독한 역할을 맡았다. 흑인 노예들을 짐승보다 못한 존재로 생각하고, 그들을 팔아 돈을 버는데다 잔인하고 광기 어린 성격을 지니기까지 한 캘빈 캔디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서 상상하지 못했던 모습이기에 더욱 강렬한 인상을 새긴다. 지난 7일, <장고>의 개봉을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국을 첫 방문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Q. <장고>의 캘빈 캔디는 당신이 지금껏 맡았던 역할들 중 제일 강렬한 악역이 아닐까 싶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먼저, 대단한 감독인 쿠엔틴 타란티노와 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굉장히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는 언제나 영화의 한계를 밀어붙이는 감독이다. <장고>는 인종 차별이 심했던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인데, 내가 맡은 캘빈 캔디는 남부가 윤리적으로 어떻게 부패했는지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사악한 농장주들을 대변하는 캐릭터이기도 하고. 사실 노예제도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미국의 건국이념과 정반대에 있는 것 아닌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영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스파게티 웨스턴과 동화 같은 요소를 접목시켜 당시 시대상을 재해석했다. 이런 작품은 그가 아니었다면 만들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Q. 관객의 입장에서도 쾌감을 느낄 만큼 본격적인 악역이었는데,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어땠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존경하는 배우들을 함부로 대해야 하는 역할이라 어려웠다. 사무엘 L.잭슨과 제이미 폭스의 지지가 없었다면 아마 연기하기가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두 사람은 내가 끝까지 밀어붙여 연기하지 않으면 보는 사람들이 당시의 참상을 제대로 알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해줬다. 이러한 응원이 있었기 때문에 시도해보지 않았던 역할을 연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장고>에 나오는 상황들 중 사실이 아닌 점은 하나도 없다. 실제로는 더욱 참혹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Q. 개인적으로 <장고>에서 가장 마음에 들거나 인상적인 장면은 무엇인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장고(제이미 폭스)와 닥터 슐츠(크리스토프 왈츠)의 관계가 마음에 든다. 영화의 초반부에는 현상금 사냥꾼과 노예 사이에서 신뢰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잘 나타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장고, 닥터 슐츠, 스티븐(사무엘 L.잭슨), 캔디가 함께 있는 식당 장면도 상당히 좋아한다. 인물 간의 역학관계가 잘 나타나있고, 대사도 굉장히 좋았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어떤 장면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데 굉장한 재능이 있는 것 같다. 한국 관객들도 그 장면을 꼭 봐주셨으면 좋겠다. 아마 기억에 남는 부분이 될 것이다.

 

Q. 현재 <장고>가 전 세계적으로 흥행 중인데, 시나리오를 봤을 때부터 이 정도로 반응이 좋을 거라고 예상했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내 생각에 박스오피스 성적이 가장 좋은 서부영화가 아닐까 싶다. 물론 출연진들도 다 좋았지만, 결국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전 세계 관객들과 어떻게 호흡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그처럼 독특한 재능을 가진 영화감독들은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천천히 팬 층을 만들어 가는데, 존중받아 마땅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이번 영화에서 타란티노 감독은 카메오 출연을 하기도 했다. 어려운 호주 억양을 사용해야 했음에도 잘해낸 것 같다.

 

Q. 당신은 <셔터 아일랜드>, <디파티드>, <에비에이터> 등 마틴 스콜세지 감독과 많은 작업을 해왔다. 혹시 이번 작품이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과도 그러한 관계를 맺는 시작점이라고 생각해도 될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두 감독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뉴욕에서 자랐고, 아버지와 함께 영화를 많이 보고 자란 경우다. 훌륭한 감독일 뿐만 아니라 영화 자체에 대해서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비디오 가게에서 일하면서 B급 영화를 모조리 다 섭렵한 사람이다. 두 사람을 섞으면 영화사를 쓸 수 있을 정도가 아닐까. 또한 둘 다 방대한 지식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배우들과 일하는 방식 면에 있어서도 배울 점이 굉장히 많다. 영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고 있는 분들이기도 하고. 그래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과도 다시 한 번 일할 수 있으면 너무나 좋겠지만, 두고 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Q. 오는 5월 한국에서 개봉 예정인 <위대한 개츠비>에서 개츠비 역을 맡기도 했는데, 시나리오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특별히 고려하는 부분이 있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최근 출연한 세 편의 영화 <장고>, <위대한 개츠비>,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를 보면서 한 가지 공통된 주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전부 부를 찾아 나서는 인물을 다루고 있더라. 개츠비의 경우에는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서 미국의 귀족으로 탈바꿈하는 인물이고, 장고는 다른 사람을 부당하게 대우하는 건방진 루이 14세 같은 인물이다.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의 주제 역시 돈이며, 부패 이야기도 들어있다. 미국에서 성공한 인물이라는 상징적인 지위에 오르기 위해 어떤 일을 겪어야 하는지 잘 다루고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들의 공통점을 알고 나니, 내가 작품을 고르는 기준에는 잠재의식의 영향이 큰 것 같더라. 원래 나는 전 세계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찍길 원했다. 지금의 경제상황을 살펴봤을 때, 출연한 작품들이 부와 관계된 것이라는 걸 보면 그런 잠재의식이 일정 부분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원하는 캐릭터를 골라서 연기할 수 있다는 건 운이 좋은 거다. 복권에 당첨된 기분이랄까.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건 <타이타닉>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작업할 땐 세상만사를 잊고 몰입하게 된다”

Q.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지금 당장 생각나는 캐릭터는 없다. 영화 업계에서 일하다 보면, 스튜디오에서 굉장히 많은 캐릭터를 제안한다. 그런데 미리 짜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내가 보기엔 다소 반복적으로 느껴진다. 제작사 <아피안웨이 프로덕션>을 직접 만들면서부터는 독특한 주제를 찾고 싶었다. 물론 스튜디오 시스템 밖에서 제작을 하는 건 아니지만, 좀 더 새로운 주제를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 개발한 작품이 두 개 있는데 하나는 <에비에이터>였고 나머지 하나는 두 달 전에 크랭크업한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다. 후자는 내가 7년 정도 개발해온 영화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다시 한 번 연출을 맡아줘서 굉장히 기쁘다.

 

Q. 최근 환경운동에 전념하기 위해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은퇴할 계획은 전혀 없다. 얼마 전 독일에서 인터뷰를 하면서 “2년 동안 영화 세 편을 연달아 했기 때문에 당분간 쉴 계획”이라고 이야기했던 건데 와전된 듯하다. 물론 환경운동에는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다. 최근 태국 수상을 만나 코끼리 상아 수입을 금지해달라고 요청했다. 그것 때문에 아프리카 코끼리가 떼죽음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상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고, 태국 측에서 곧 공식적인 발표가 있을 것이다. 이런 활동을 하면서 인터넷이 얼마나 큰 힘을 갖고 있는지, 공동체의 힘이 얼마나 센지 알 수 있었다. 올해는 주로 환경운동 기금을 마련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고 한다. 지난 10년 간 지구는 너무나 많은 파괴를 겪었다. 멸종위기종을 보호하여 생물다양성을 지키는 등 우리가 열심히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Q. 10대 때부터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배우이자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스타로 살아오면서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철칙이 있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내가 처음으로 잡게 되었던 좋은 기회는 로버트 드 니로가 출연했던 <이 소년의 삶>)이라는 영화였다. 그때 열여섯 살이었는데, 속성으로 영화사를 공부하기 위해 1년 동안 영화를 굉장히 많이 봤다. 그러면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이후 이 업계에서 자라며 많은 걸 배웠는데 그 중 ‘고통은 한순간이지만 영화는 영원히 남는다’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 걸작을 만들 수 있다는 거다. 내가 보기에, 영화는 현대 예술의 걸작인 것 같다. 작업할 때면 세상만사를 잊고 영화와 캐릭터에 몰입하게 된다. 앞으로도 최고의 사람들, 최고의 감독들과 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