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이현│달달한 속삭임으로 나를 채워준 음악들


“스틸레토 힐, 실크레이스 원피스, 캐시미어 코트, 파이톤 클러치 백.” 세경의 입을 통해 등장한 스물일곱 청담동 며느리 서윤주의 룩은 상징적이었다. “윤주는 겉으로 보이는 걸 굉장히 중요시하는 사람이에요. 속에 감춰야 하는 것이 많으니까요. 겉이 화려해야만 했어요.” 찬찬히 살펴보면 서윤주는 비단 화려함에만 치우치지 않은 모습이다. 알맞고 완벽하게 계산된 서윤주의 스타일은 그녀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갖추었던 갑옷과도 같았다. 그리고 SBS <청담동 앨리스>의 서윤주가 자신에게 필요한 옷을 찾아 입었던 인물이었다면, 서윤주 그 자체로 보였던 배우 소이현에게 윤주라는 역할은 지금의 자신이 입을 수 있는, 그래서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옷이었다. “저도 결혼 적령기에 있는 여자잖아요. 사랑해서 결혼하고 싶죠. 그런데 ‘사랑도 있고 돈도 있으면 좋겠다’라고 당연히 생각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솔직한 마음인 거고요. 그 마음들을 응축해서 만든 게 윤주예요. 윤주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어요.”

극 중에서 ‘노력이 나를 만든다(l&apos;effort est ma force)’는 말을 새긴 삶을 또렷이 보여준 것은 주인공 한세경이었지만, 실은 그 곁의 악역 조연 서윤주의 인생관 역시 비슷했다. “아무리 뭐 같아도 내 자린 내 노력, 내 능력으로 얻었다는 거야”라던 서윤주의 말은 그녀의 화려한 모습 뒤로 비춰진 상처와 단단함, 판타지와 현실적인 관점에 맞물려 의외의 지점을 전했다. “따뜻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굳이 착한 척하지 않는 사람이 바로 윤주예요. 그냥 나 이런 사람이야, 근데 뭐, 잘못됐어? 해버리니까요.” 착한 여자 주인공 옆에서 빤하지 않은 악의 축을 보여주기란 쉽지 않지만, 서윤주는 소이현을 만나, 그렇게 조금 다른 악역이 됐다. 깨끗하게 세공된 크리스털처럼, 그냥 두면 절대 깨지지 않을 것 같은 서윤주의 모습 속에 그녀가 사는 동안 참고 눌렀던 세월과 현실의 명암이 드리울 수 있었던 것도 윤주의 속을 이해했던 소이현이 챙긴 몫이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청담동 앨리스>의 윤주는 배우 소이현에게 지금 이 순간 그녀가 무엇을 연기할 수 있는지를 보여줄 수 있었던, 딱 알맞은 선택지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서윤주가 되어 있던 동안 “사람들과 계속해서 이별만 해야 했”던 소이현이, 감정을 쏟아내고 울며 헤어지느라 지친 그녀를 달달한 속삭임으로 채워주던 음악을 추천했다.

1. 영준의 <1집 Easy>

소이현이 첫 번째로 꼽은 추천 곡은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멤버 영준이 낸 솔로 앨범, <1집 Easy>의 ‘꽃보다 그대가 (Original Ver.)’다. “원래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음악들을 좋아해요. 듣기 편하잖아요. 저는 귀가 편한 음악을 좋아하는 편인 것 같아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때에 틀어놓아도 전혀 거슬리지 않는 곡이요. ‘꽃보다 그대가 (Original Ver.)’는 악기로 치자면 베이스 같은 느낌의 영준 씨 목소리가 잔잔하게 귀에 울리는 노래예요. 한 남자가 여자에게 고백하는 내용인데요. 꽃보다 그대가 좋고 술보다 그대가 좋다는 식의 가사예요. 근데 저는 이게 너무 좋더라고요. ‘아니, 대체 꽃보다 좋고 술보다 좋으면 얼마나 좋은 거야?’ 싶어서요. (웃음) 듣고 있으면 그냥 괜히 혼자 설레요. 대리만족을 하는 것 같아요.”

2. 박효신의 < GIFT E.C.H.O >

그녀가 두 번째로 추천한 곡 역시, “대화할 때 틀어놓아도 거슬리지 않는” 저음의 목소리가 특색인 박효신의 노래, ‘이상하다’다. “제가 운전하는 걸 되게 좋아하거든요. ‘이상하다’라는 곡을 운전 중에 라디오에서 들었는데, 신기하게도 처음 들은 이 노래를 제가 1절만 듣고선 2절을 그냥 같이 흥얼거리고 있더군요. 이 곡도 역시 조곤조곤 속삭이는 고백의 노래인데요. ‘정말 이상하다 너만 보면 행복한데 혼자될까 봐 자꾸 겁이 늘어간다’는 내용이에요. 듣고 있으면 심장이 간질간질해져요. 전 이렇게 수채화 같은 가사들을 참 좋아해요. ‘네가 좋아. 나는 너를 사랑해’ 이런 것보다는 ‘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아. 아무래도 그런가 봐’라고 하면서 한 번 되새기며 생각하게 만드는 가사요.”

3. Jeff Bernat의 <1집 The Gentleman Approach>

“Jeff Bernat의 앨범을 알게 되고 나서 전체를 반복 재생하며 한 달 내내 들었어요. 정말 아침부터 저녁까지요. 앨범 전체를 다 외우고 있어요. <청담동 앨리스> 촬영하는 동안 굉장히 많이 들었는데 대본 볼 때도 듣고, 잘 때도 듣고, 이동할 때도 이 앨범을 들으면서 리프레시하곤 했어요. Jeff Bernat은 1집 가수예요. 앨범이 하나밖에 나오지 않았는데 음색이 되게 보드랍고 매력적이에요. 그의 앨범은 모든 곡이 다 좋아서 한 곡을 꼽기가 어려워요. 다 들어보셨으면 좋겠어요. 전 정말 ‘이 나이에 어떻게 이런 곡을 만들지?’ 싶더라고요. 잔뼈 굵은 재즈 뮤지션의 사운드 같이 느껴졌어요.” Jeff Bernat은 스물셋의 싱어송라이터다. 그가 홀로 작곡, 프로듀싱, 보컬까지 모두 해내어 만든 데뷔 앨범 <1집 The Gentleman Approach>는 발매 직후 몇 시간 만에 아이튠즈 R&B 차트에서 TOP 5를 기록했고, 현재 미국, 캐나다, 일본, 한국 등지에서 고루 인기를 얻고 있다. 오는 3월 22일에는 아시아 최초로 서울에서 공연을 가질 예정이다.

4. 스탠딩 에그(Standing Egg)의 <2집 LIKE>

소이현이 네 번째로 추천한 음악은 밴드 스탠딩 에그의 <2집 LIKE>에 수록된 ‘Aloha’다. “제 주변에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이 되게 많거든요. 이 곡을 아마 어느 스튜디오에서 우연히 들었던 것 같아요. 듣고 있으니까 기분이 되게 좋더라고요. 그래서 지인에게 이 노래는 뭐냐고 물어서 알게 된 곡이에요. 록 음악도 워낙 좋아했고, 인디 신에 있는 밴드에도 관심이 많은데 그들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 때 제가 발견하고 여기저기 알려주는 게 재미있어요. 예전에 10cm를 알게 되어 처음으로 주변에 막 퍼뜨린 것도 저였거든요. 그리고 사실 혼자만 알 때에 몰래 숨겨두고 듣는 재미를 즐기기도 해요. (웃음)”

5. 성시경의 <2집 Melodie D Amour>

“성시경 씨의 노래 중엔 많은 사람들에게서 사랑받을 수 있는 명곡이 많은 것 같아요. 아무래도 남자가 속닥속닥 주절주절 이야기하는 듯한 노래가 많아서인 것 같아요. 제가 지금까지 이야기했던 노래들이 대부분 그렇긴 하지만, 성시경 씨의 노래 역시 노랫말이 꽤 시적인데요. 그중에서도 ‘넌 감동이었어’를 참 좋아해요.” 윤종신이 작곡과 작사에 모두 참여한 이 곡은 성시경이 데뷔 2년 차에 발표한 <2집 Melodie D Amour>의 수록곡이다. “‘널 사랑하기에 세상은 나에게 커다란 감동이었어’라는 가사를 들으면 저도 모르게 ‘시익’ 웃게 돼요. ‘크윽, 그래. 사랑하는 것이 감동이라니, 대체 얼마나 좋은 거니’라고 하게 되죠. 사람의 마음을 어쩔 수 없이 달달하게 만드는 음악인 것 같아요.”

 

스물이 되던 해에 데뷔한 소이현은 데뷔 직후 KBS1 <노란 손수건>, SBS <선녀와 사기꾼>에 주조연으로 캐스팅되며 무명 없이 두 작품을 내리 달렸다. 그늘 없는 웃음, 시원하게 자리한 얼굴선이 가진 소이현의 분위기는 그녀를 동시대의 여성을 대변하는 길을 걷도록 이끌었지만, 배우의 세계는 매끄럽게 이어지던 시간 속에 “생각보다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생각”과 함께 대인기피증을 겪을 정도 두려움을 주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 비로소 서른, 10년 차 배우가 된 소이현은 이제까지와 앞으로의 자신에 대해 묻자 이런 답을 내어 놓는다. “구체적인 것은 모르겠어요. 하지만 언제나 바로 앞을 보지는 않아요. 늘 조금 멀리 보고 있어요.” 이렇게나 정갈하게 스스로의 일과 삶에 대해 말하는 그녀는 반드시 어떤 시간이 지나고 나야 완성되는 모습, 이를테면 성숙하고 고독한 심상이나 세월의 흔적이 묻은 모습들에 필요한 시간마저 이해하는 배우가 됐다. 자신 역시 한 명의 배우이기에 이렇게 깊이와 결을 새길 수 있는 역할에도 욕심이 난다하면서도 소이현은 이렇게 덧붙였다. “그런 것들은 시간이 지나고 순서가 되면 올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욕심을 부린다고 오는 게 아니고요. 시간이 지나야, 해요. 아직 어리고 덜 익었는데 익은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건, 어쨌든 거짓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