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우 “시간이 걸리더라도 스크린 안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

지난해엔 <돈의 맛>으로 칸의 레드카펫을 밟았고, 드라마 KBS2 <해운대 연인들>에서 멜로를 그리기도 했다. 그리고 이어진 선택은 상영 중인 영화 <사이코메트리>다. 배우 김강우에 대한 이야기다. 장르와 역할에 뚜렷한 경계를 그리지 않는 그는 이번 작품에서다단계 판매를 ‘세컨드 잡’으로 여기는, 허술한 형사 춘동을 연기하며 사이코메트리인 김준(김범)은 물론 영화 전체에 그가 가진 온기로 생동감을 불어넣는 역할을 했다. 2002년 영화 <해안선>으로 데뷔해 어느덧 10년이 넘은 배우 생활, 이제 김강우는 “언제부터인지 잘 모르겠지만”, “배우는 스크린을 통해 존재를 증명하면 되고 변화를 보여주면 된다”고 다부지게 말하는 사람이 됐다.

 

Q. 영화 <사이코메트리>의 개봉에 임박해 SBS <힐링캠프>에 출연했던 것이 화제가 됐다. “돈과 명예, 일과 8년간의 사랑을 놓고 저울질했다”는 표현을 직접 할 만큼 솔직한 이야기들을 했는데.

김강우: 다 그런 고민하지 않나? “나는 그런 거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라고 할 사람이 어디 있겠나. 다 신경 쓰고 고민하지. 고민을 하면서도 로맨틱한 모습으로 포장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을 뿐인 인것 같다. 어찌 됐든 솔직하게 대답을 안 할 것 같으면 나갈 필요가 없는 것 아닐까. 너무 솔직했나? (웃음)

 

Q. 특히 “연기의 맛을 알게 된 지 2년 정도 되었다”고 했던 것이 인상 깊었다.

김강우: 그 전에는 고민이 많았다. 다른 일을 해볼까하는 잡생각이 많았다. 다는 아니겠지만 연기자를 꿈꾸는 분들은 데뷔 전까지 10년 정도 혹은 이상의 시간을 가지곤 하는데 나는 그런 게 없었다. 그냥 어쩌다보니 배우로 생활을 유지하게 됐는데 그게 데뷔하고 온 거다. 사춘기 같은 게 늦게 왔다. 그런데 참 다행이다. 그 과정을 겪어온 것이. 그래야 소중한 것도 알지 않겠나. 그 단계가 지나고야 올라올 수 있는 상태가 있는 건데 지금이 그렇다.

 

Q. 그런 상태에서 <사이코메트리>를 선택했고, 허술한 행동파 형사 양춘동 역을 맡았다. 그런데 사실 캐릭터 자체가 특색 있는 편은 아니었다.

김강우: 실생활에서 볼 수 있는 30대 중반의 캐릭터였으면 했다. ‘형사인 누구’가 아니라, 그냥 내 나이 또래의 평범한 남자인데 직업이 형사인 인물. 형사라고 하면 보통 떠올리는 모습들로는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너무 많이 해왔으니까. 그래서 너무 완벽하지 않은 형사, 자기 일에 그다지 노련하지 않은, 골칫거리인 형사가 그 사건에 빠져 들어가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리고자 했던 거다.

 

Q. 그러한 춘동을 만들어 나간 건 작품 안에서 필요했다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일 텐데 이제까지 자신이 해왔던 역할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부분도 있었나.

김강우: 아마도 두 가지 다였을 것 같다. 일단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내가 했던 캐릭터보다 좀 더 기름을 치고 싶었다. 그리고 작품 안에서는 사이코메트리라는 소재 자체가 비현실적인 데 인물도 너무 떠있는 인물이라면 보는 사람들이 이질감을 느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주변에서 사이코메트리 보기 힘들지 않나. 현실적인 인물인 춘동이 사이코메트리를 접할 때의 느낌을 크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Q. 준이와 취조실에서 이야기를 하는 부분이 인상 깊다. 춘동이라는 캐릭터가 영화 속에서 하게 되는 역할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준 부분이기도 하고, 감정의 선도 그때 가장 폭발적이었다.

김강우: 준이나 춘동이나 사실은 비슷한 아픔을 갖고 있지 않나. 살아가는 방식이 워낙 다른 인물인 거다. 그러나 그 순간만큼은 춘동이 그 친구가 살아가는 방식을 옳지 않다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서 밖으로 끌어내려고 했던 거였다. 어쨌든 가장 중요한 건 그 아이를 살리는 일이었고, 그러기에 그 순간은 춘동이 이성을 잃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냥 감정이 가는 대로 할 수 밖에 없었다. 계산이라든지 동선 같은 것도 계산이 없었던 것 같다. 그게 만약 계산이 되었으면 그 옆인물들의 리액션 까지 다 어색해질 수 있었을 거다. 좀 세게 가줘야한다고 생각했다. 하이라이트니까.

 

Q. 주변인들의 리액션이 춘동에게 달려있다는 점이 바로 주인공 춘동이라는 캐릭터가 작품에서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아닐까.

김강우: 어쩌면 <사이코메트리>는 계속 ‘왜 그랬을까?’를 따지면서 보기엔 사실 돈이 아까운 영화일 수 있다. 하나하나 분석하고 본다면 허점이 많은 영화다. 그냥 사건이 흘러가는 대로 두고 보면 좋다. 내가 관객들한테 말씀드리고 싶었던 점이 그런 의미에서 그냥 춘동의 호흡을 한 번 따라가 봤으면 했던 점이었다. 인물을 만날 때, 사건을 접할 때 나 역시도 처음 겪어보는 일, 당황스러운 일들이 있다. 감정들이 복잡하게 얽혀 계속 나한테 온다. 그걸 그냥 있는 그대로 느끼는 거다. 나 역시도 그랬다. 내 호흡을 따라왔으면 했다. 그러면 이 인물을 만났을 때와 저 인물을 만났을 때의 감정들을 같이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Q. 스스로의 연기 혹은 자신이 출연한 영화에 대해서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는 편인 것 같다.

김강우: 원래 성향이 그렇다. 나는 내 영화라도 재미없으면 사람들한테 재미없다고 그런다.

 

Q. 그간 여러 역할을 해왔지만 악역은 거의 하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김강우: 표현과 감정이 센 연기를 원래 안 좋아한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살면서 그렇게 센 감정 잘 안내지 않나. 그런데 우리나라 분들은 특히 그런 걸 좋아하시는 것 같다. 나쁘다는 건 아니다. 요즘 들어 내가 했던 연기들이 임팩트가 약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렇다면 사실은 그런 스타일의 연기를 썩 좋아하진 않지만 호소력이 있는, 좀 진한 연기도 해야 하는 건가 싶은 고민을 하고 있다.

Q. 그 동안은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해왔던 반면 이제는 요구되는, 기대되는 모습들 까지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가.

김강우: 그걸 잘 섞어야하는 것 같더라. 사실 정답은 없으니까. 근데 그래도 그런 것들을 좇아서 하기보다는 내가 옳다고 믿는, 원하는 쪽을 밀어붙여서 해야 하는 순간들도 있다고 생각한다. 밀어 붙여서 이것도 답이라는 걸 보여주려는 뚝심이 있어야할 것 같다.

 

Q. 인터뷰 초반, 7~8년 동안 방황하던 사춘기를 끝내고 이젠 맛을 알아가는 중이라는 말이 다시 한 번 생각난다. 이제는 가고 있는 길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들이 많이 정리된 느낌이다.

김강우: 잡생각들이 없어졌다.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 명확하고 단순해진 거다. 하고 싶어서 하는 것과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이젠 어쩔 수 없이 하는 건 전혀 없다. 이런 확신이 든 시점과 계기는 사실 모르겠다. 그냥 시간이 지나서일 수도 있고 아니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어쨌든 확신이 생기면서부터는 더 적극적이게 되었고, 책임감도 더 강해졌고 쓸데없는 생각 안하게 됐다.

 

Q. <힐링캠프>에서는 배우 일로 버는 돈에 대해 “남에게 부끄럽지 않게 내가 번 돈”이라고 말했고, 어느 인터뷰에서는 선택하는 배역에 대해 “나중에 내 아이들이 봐도 부끄럽지 않은 역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런 집중을 하게 되기 까지 본인을 지탱하게 해준 것이 어쨌든 존재의 이유를 여기서 찾고 있고, 찾았다는 의미인 것 같기도 하다.

김강우: 내가 열심히 해야 되는 이유다. 그래서 어느 역할이 제일 애착이 가냐고 묻는다면 나는 늘 다 똑같다고 말한다. 할 때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하니까 그렇다. 하는 순간에는 최선을 다해야한다고 생각을 한다. 어떤 상황이 주어져도 결국은 내가 선택한 것 아닌가.

Q. 자신의 선택 뿐 아니라, 일이나 사랑에 대해서도 책임감이 강한 편인가.

김강우: 나는 단순하게 살려고 한다. 그냥 남한테 피해를 안 주고 안 받았으면 좋겠다. 영화할 때 그런 마인드만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나로 인해 욕은 안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사랑에 있어선, 사실 남자와 여자 사이에 다른 점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남자다움이 뭐라고 생각하세요?”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배우자와 가족들이 생각할 때 안심이 되고 편안하면, 울타리 같은 기분이 든다면 그게 진정한 남자인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게 멋있는 거 아닌가.

 

Q. <힐링캠프>에서는 그런 ‘사람’인 김강우의 모습이 배우로서의 김강우보다 더 부각되어 드러났다. ‘국민 형부’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김강우: 사실 토크쇼 같은 데서나를 보여줌으로 인해서 혹여 다음 캐스팅이나 제안에 내 역할에 변화를 주게 되는 것이 싫었다. ‘국민 형부’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만약 차기작으로 내가 악역을 맡는다고 가정해보자. 아무래도 괴리가 있지 않을까. 나라는 사람을 알리기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냥 스크린 안에서 승부를 봐야겠다고 생각한다. 사실 내가 편하려고 했던 거였던 것도 같다. 겁이 좀 나서. 지금 어쨌든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나의 분위기가 조금은 부드러운 쪽으로 바뀌지 않았나. 근데 나는 이게 과연 좋은 건가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요즘 가장 큰 고민거리다.

 

Q. 그러나 <힐링캠프>를 통해 김강우를 다시 본 사람들도 많다. 평범하고 보편적인데 자신이 믿는 방향과 구석이 명확해 보였다.

김강우: 나 사실 되게 게으르다. 좀 깔끔할 뿐이지 게으르다. (웃음) 많은 재주를 갖고 있지도 않고 노력하면서 배우지도 않는다. 평범하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고 그래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건 배우로서의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정서. 그게 과연 배우만의 독특한 삶을 사는 건 반대다. 그런 건 연기하기에 오히려 힘들다. 보편적인 정서를 표현하는 게 배우의 첫 번째니까.

 

Q. 데뷔 초에, 5년 안에 인지도를 쌓겠다고 기한을 정해서 말하기도 하지 않았나. 지금의 김강우는 그런 오기보다 여유가 더 많아 보인다.

김강우: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시작을 했다. 그리고 이후에는 오기 단계였다. 5년 안에 인지도를 쌓겠다는 말도 오기에서 비롯된 거였다. 오기 단계가 길었고, 이제 재미인 것 같다. 데뷔한지 10년이 지났지만 그렇게 큰 의미를 두고 싶지는 않다. 그냥 그런 단계를 거치고 있을 뿐이다. 지금이 그런 것 같다.

 

Q. 정말 지금은 오기를 다 버린 상태일까?

김강우: 사실 항상 어떤 종류의 오기를 늘 가지고 있긴 하다. 지금은 재미가 클 뿐이다. 그렇게 변해왔고 변하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