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 인디 컬렉션] 황망한 사내 정차식

정차식은 최근 가장 주목할 만한 인디 뮤지션이다. 무려 15년 동안 록밴드 레이니선의 리드보컬로 활동했던 그는 2011년 가내 수공업 방식으로 제작한 솔로 1집 <황망한 사내>를 발표하며 일절 홍보도 없이 ‘2011년의 문제작’이라는 극찬을 이끌어냈다. 1집은 제9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록 2개 부문 후보에 올랐고 각종 매체에서도 최고의 앨범으로 선정되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이끌어냈다. 불과 5개월 만에 연속적으로 2집<격동하는 현재사>를 발표해 놀라움을 안겨준 그는 올해에는 제 10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록 최우수 앨범과 노래부문을 싹쓸이하며 2관왕에 등극했다. 전년도 수상자 장기하와 얼굴들에게 5년째 이어지는 티아라를 받아 쓴 정차식은 “여러분의 눈과 귀는 나에게 종속된다”는 카리스마 넘치는 수상소감으로 화제를 모았다.

정차식은 작사, 작곡, 노래, 편곡, 녹음, 믹스, 연주, 컴퓨터 프로그래밍 등 거의 모든 음악작업을 홀로 진행한다. 경이로운 점은 생활 소음까지 들리는 열악한 제작환경과 내밀한 자신의 이야기를 즉흥적으로 표출한 결과물이건만 진한 감동을 안겨주는 음악적 완성도를 구현하고 있음이다. 불가사의한 이 모든 것들은 자신의 음악에 진심을 담은 진정성과 열정 이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밴드시절에도 잘나가긴 했지만 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창작곡들로 꾸며진 솔로 음반의 의미는 각별하다. 기대 없이 세상에 던졌던 앨범이 예상치 못한 호평과 성과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정차식을 보면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보고 눈물이 펑펑 쏟아졌던 기억이 난다. 평생을 삼류가수로 떠돌며 술꾼들의 흥을 돋우는 소모적인 음악인생을 살아온 남자 주인공이 비록 지방의 밤무대였지만 처음으로 자신의 창작곡을 부르는 장면과 여고시절 타고난 노래실력으로 남학생들의 마음을 달뜨게 했지만 꿈을 잃고 평범한 야채장수로 살아가던 여자 주인공이 다시 무대에서 노래하며 감격하는 엔딩 장면은 관객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안겼다. 이처럼 뮤지션에게 자신의 음악으로 대중과의 소통은 돈과 명예보다 값진 의미를 지닌다. 정차식의 노래는 무릇 사내의 노래는 이런 것이라고 웅변한다. 퇴폐와 절망, 황량하고 우울한 분위기로 가득한 그의 음악은 살아오면서 저지른 자신의 잘못을 용서받고 싶은 남자의 진심을 담아냈다. 앨범들을 주도하는 분위기는 분명 어둡고 진지한데 해학적 정서가 절묘하게 공존한다. ‘희망을 놓지 않겠다’는 의미다. 그런데 신명이 날 만하면 욕망의 공허함을 외치는 쿨한 메시지가 튀 튀어나오며 여지없이 흥을 깬다.

그는 그냥 몸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을 담기위해 원 테이크 녹음방식을 선호한다. 실제로 그의 노래 중엔 취기가 느껴지는 노래도 있다. 이제껏 한국대중음악에서 이토록 기괴하고 독창적인 음악을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술, 담배로 목소리를 숙성시켰다’는 정차식은 아프리카 원주민의 필을 안겨주는 기괴한 흑인 뮤지션 스크리밍 제이 호킨스의 광기와 객기의 영향을 뼈 속까지 전수받은 뮤지션이다. 무한 서정성의 대표주자 시인과촌장도 그에게 가수의 꿈을 안겨준 국내 뮤지션이다.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뮤지션들의 상반된 정체성처럼 복잡 미묘한 정차식의 음악을 설명시킬 키워드는 ‘광기와 서정’이라는 극과 극을 내닫는 상반된 정서의 절묘한 공존에 있다.

1집 타이틀 <황망한 사내>는 홀로 고된 밤샘 영화음악 작업을 하다 배가 고파 맥주를 사가지고 터벅터벅 걸어오다 “돈과 명예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내 음악을 하는 것도 아닌 현실이 서글퍼지면서 황망하다는 생각이 들어 정했다”고 한다. 그저 먹고 살기 위해 주문음악에 매몰된 37살의 자신이 문뜩 초라하게 느껴졌던 것. 그가 앨범 속에서 그토록 용서를 빌고 있는 여인들과의 사랑이야기, 남자의 욕망과 야망의 정서 속에 녹아있는 DNA의 원형질은 어떤 환경에서 생성된 것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부산에서 태어난 정차식은 ‘차식’이란 이름에서 느껴지듯 쌍둥이다. 쌍둥이 형 이름은 ‘쌍식’이다. 이름 때문에 팔자가 셀 것을 걱정해 그의 집에선 형을 ‘성준’, 그를 ‘성찬’으로 부른다. 그는 유년시절을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남자다. 아버지의 결사반대로 무산되었지만 네덜란드로 ‘입양’ 갈 뻔 했던 가난이 안겨준 아픈 기억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가출한 쌍둥이 형을 찾아다니며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처음 본 그 역시 공부보다는 수업시간에 시를 쓰고 의상디자인을 그리고 오토바이를 타고 놀러 다녔던 문제아로 변해갔다. 불량학생(?)이었던 그는 고2때 친구들에게 생일선물을 강요했다. 그때 받아낸 시인과촌장의 ‘숲’ 음반에 수록된 ‘가시나무’를 들으며 눈물이 터져버렸다. ‘음악이 사람을 울릴 수도 있다’것을 처음 경험했다. 이후 아버지를 졸라 건반을 마련한 그는 입에서 나오는 멜로디를 오선지에 그려 넣는 형식으로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고 4인조 밴드 <팝콘>을 결성해 부산 광한리 SAY소극장에서 공연을 열며 가수의 꿈을 살짝 키웠나갔다.

 

고교 졸업 후 막 사업을 시작한 아버지의 작은 공장에서 25살까지 일하던 1993년 너바나의 음악을 접한 후 음악적 욕망을 주체하지 못해 다시 밴드결성을 결심했다. 1997년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록큰롤 코리아 페스티발’에 부산대표로 출전했다. ‘귀신이 곡하는 창법’이라는 ‘귀곡 메탈’이란 평가를 얻으며 이슈가 되자 음반제작자가 나타났다. 1998년 그가 리드보컬로 참여한 밴드 <레이니선>의 첫 앨범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고 1만장이 넘게 팔려나갔다. 2000년 서태지의 컴백 콘서트에 초대받으면서 인지도는 급상승했다. 그때 서태지 레이블 괴수대백과사전과 전속 이야기가 오가자 매니저와 오해가 생겨 상처를 입었다. 음악을 그만둘 생각에 2002년 러시아, 중앙아시아를 거쳐 몽골까지 5달 정도의 장기 배낭여행을 훌쩍 떠났다. 여행길에서 들은 비트와 우울함이 깊어 배여 있는 피아졸라의 탱고 음악은 깊은 감명을 안겼다. 그가 탱고에 열광하고 있는 이유다.

 

2009년 4집 이후 영화와 드라마 음악을 작곡하며 생계형 뮤지션으로 살았던 그는 2010년 인디레이블 Capsule Roman을 설립해 첫 솔로 음반 <텐고>를 냈다. 그리고 2011년 아무 기대감이 없이 정규1집 <황망한 사내>를 발표했다. 1집 <황망한 사내>는 30대가 된 젊은 남자의 방황과 낭만 그리고 덧없는 욕망에 대한 음악 보고서다. 자신이 주체가 되질 못하고 끌려만 다녔던 삶에 황망한 생각이 든 그는 문뜩 자신의 30대 시절을 정의하고 기록하고 싶었고 무엇보다 지나온 세월동안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용서받고 싶었다.

(좌측부터) 솔로데뷔앨범 Capsule Roman 2010, 1집 황망한 사내 Capsule Roman 2011,  2집 격동하는 현재사 Capsule Roman 2012

 

정차식은 욕망과 회한의 정서를 탱고, 왈츠, 집시, 트립합, 트로트 그리고 한국적 이미지가 진동하는 다양한 리듬 위에 얹어냈다. 처절한 독백인 첫 트랙 ‘용서’와 가난 때문에 일본으로 떠나간 아내와 두 아들을 평생 그리워하며 생을 마감한 화가 이중섭을 염두에 두고 만든 ‘마중’은 사랑하는 모든 대상에 대한 그리움의 정서를 기막히게 표출한 명곡들이다. 마치 가스펠처럼 함께 박수치며 화합하는 풍경이 그려지는 ‘오해요’와 ‘음탕한 계집’은 탱고와 여인의 하이힐 소리로 연상되는 탭댄스 리듬이 인상적이다. 정차식 음악의 매력은 변화무쌍한 보컬을 구사하는 목소리에 있다. 거의 모든 곡에서 그는 진성과 가성, 두성을 넘나들며 때론 독백처럼 때론 남녀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1인 2역의 보컬을 구현하고 있다. 이는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또 다른 인격과의 대립, 화합을 통해 결국 용서를 구하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낸 보컬 어법의 새로운 실험에 다름 아니다. 진성과 가성을 넘나들며 해학적 느낌까지 구현한 1집의 모든 노래들은 뺄 곡이 없다.

 

담배 피는 숨소리, 자동차, 바람, 새, 고양이 소리 등 여러 효과음들이 촘촘하게 배치된 그의 노래에는 회화적 요소가 넘실거린다. 또한 슬픈 마초의 향내가 진동한다. “내가 생각하는 마초는 무모하지만 진취적이고 도전하는, 친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그런 것이다. 누군가 그립고 사랑하고 싶은데 난 이미 늙어가고 있다는 좌절감, 무엇을 해도 안 될 것 같은 부정적인 생각. ‘용서’라는 건 잘못을 저지른 그때 받지 못하면 죽을 때 까지 가져가야할 숙제 같다”는 정차식의 말처럼 ‘용서’는 그에게 영원히 풀지 못할 음악적 화두가 될 것 같다. 정차식은 1집 발표 후 언론 홍보는 물론이고 방송국에 심의조차도 일절 하지 않았다. “반응을 기대했다면 기자와 피디들에게 음반을 돌렸을 텐데 안 먹힐 것이라 생각했다. 아무 기대 없이 던진 음악에 이 정도로 파장이 일어나니 두려워진다. 워낙 가진 게 없는 사람인데 관심을 가져주는 지금의 상황이 솔직히 조금은 불편하다.”

 

사실 연작으로 발표된 <격동하는 현재사>는 단기간의 연속 발표인지라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다. 1집 <황망한 사내>가 욕망을 거세하려 했다면 2집 <격동하는 현재사>는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의 포로가 된 30대 후반의 남자를 표현했다. 바로 자신의 이야기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남자들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다. “즐겁게 놀고 싶고, 예쁜 여자도 만나고 싶은 사내의 욕망이 격동하는 거죠. 나처럼 30대 후반의 남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낭만을 담고 싶었습니다. 1집에서는 쓸쓸함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싶었고 2집에선 걸쭉한 성인가요의 느낌을 내고 전하고 싶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뽕기’가 충만한 앨범이에요. ‘옷깃을 세우고’ ‘삼거리 오뎅탕집’은 대놓고 뽕기를 발산했죠.(웃음)”

정차식의 음악은 낯설고 새롭다. 이질적인 장르가 다양한 형태로 뒤섞이고 대폿집 젓가락 장단과 서구의 리듬까지 사이좋게 공존한다. 자조적인 회한으로 채웠던 1집과 달리 2집은 수컷 냄새 가득한 날것의 욕망으로 꿈틀거린다. 질펀하고 화끈하게 한 판 놀아 보기를 염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고뇌하는 모습, 비관적인 정서를 표하는 가사도 적잖이 별스럽고, 쉽사리 가늠이 안 된다. 정차식의 음악이 차별되는 이유다.

 

2집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실험적인 트랙들은 그가 현재 한국대중음악에서 가장 주목할 독보적 음악적 행보를 걷고 있음을 웅변한다.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록 노래로 선정된 첫 트랙 ‘풍각쟁이’부터 수컷의 욕망은 날것으로 꿈틀댄다. ‘아가씨 참 아름답소. 이리 와 함께 즐겨보아요. 소주도 먹고 맥주도 먹고 위스키도 먹고 한참을 늘어져봐요’라는 가사는 그야말로 직설적이고 질펀하다. ‘옷깃을 세우고’는 한술 더 뜬다. ‘쓸쓸한 이 계절에는 이상하게 당신이 땡겨 그냥 나랑 삽시다.’ 그는 멜로디를 데모로 만들어놓으면 그냥 어떻게 쓴 건지 궁금할 정도로 가사가 술술 나온다고 한다.

 

이 사내의 노래는 낭만과 감정이 과잉 적으로 표출되고 뽕끼 넘치는 사운드가 거침없이 남발하는 퇴행적 스타일임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이다. 미국 텍사스 열리고 있는 세계적인 음악 페스티발에 참가해 극찬을 받고 돌아온 정차식은 먹고 살기 위해 주문이 들어온 영화음악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바쁜 와중에도 또다시 변신을 시도할 3집을 준비 중이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게 좋아요. 최소한의 악기로 클래식한 느낌을 내고 싶습니다. 차기 앨범은 첼로나 콘트라베이스와 독백을 주고받는 형식이 될 것 같아요.”

필자소개

한국일보 편집위원을 역임한 최규성은 국회, 청와대 출입기자를 거쳐 등소평 사망시 북경에서, 베트남의 엠바고 리프트 때는 아시아 20여 개 국을 돌며 경제상황을 리포트하는 아시아리포트를 담당했고 홍콩 반환 때는 홍콩 현지에서, 북한 평양에서 열렸던 역사적인 김대중대통령과 김정일위원장의 제 1차 남북정상회담 때, 한국 언론을 대표해 풀기자로 현지에서 취재를 했고 미국의 아프카니스탄 침공 때는 종군기자로 86년부터 2007년까지 20여 년 동안 신문기자로 활동하며 국내외적으로 굵직한 사건들을 취재했다.

신문사를 나온 2008년부터 국내 최초로 발간된 한국 인디뮤지션사진집의 사진작가로 변신한 그는 대학과 문화센터, 기업체에서 대중문화 강의는 물론 여러 지상파 TV와 라디오에서 대중음악을 소개하는 방송인이자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서울드라마어워즈 장편부문 심사위원,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대중문화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각종 신문잡지와 사보에 칼럼을 연재하는 대중문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2011년 무크지 대중음악SOUND에서 발표한 <한국대중음악 파워100>에도 선정되었다. 한국대중음악 자료수집가이기도 한 그는 2009년 <한국인디뮤지션 사진전(공간 루 갤러리)>, 2010년 <대중가요 서울을 노래하다(청계천문화관)>, 한국전쟁 60주년 특별전시 <굳세어라 금순아(국립민속박물관)>, <1970-80년대 한국 영화음악 자료전(청계천문화관)>, 2012년 <한국대중음악 걸 그룹 역사전시전(부평아트센터)> <한국의 크리스마스(롯데백화점)>같은 대중음악 자료전시회를 통해 훼손된 한국대중음악의 뿌리를 찾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