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규

한석규: 연기, 흥행, 작품성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았다. 슬럼프도 겪어봤다. 슬럼프 뒤에는 이런저런 작품들에서 해보고 싶은 것도 해봤다. 한 분야의 최고였고, 중심에서 물러나도 연기를 하는 법을 안다. 그리고, 이 모든 경험 뒤에야 왕이 됐다. 그러니 잘할 수밖에.

한석규
덧마루: MBC 에 참가한 한석규도 참여했다. 그는 고교시절 합창단에 있었고, 음대에 갈 생각도 했다. 하지만 “내가 무슨 일을 하며 살면 괜찮을까, 어떤 직업이 내게 맞을까”를 생각하다 배우가 되고 싶어 했고, 매달 3천원씩 붓던 적금을 부모님 몰래 깨고 연기 학원에 다녔다. 학교에서는 재능도 인정받았고, 16mm 단편영화 를 만들며 영화의 작업방식과 시나리오의 중요성을 깨달아 작품선택의 기준으로 시나리오를 최우선에 두게 된다. 하·지만 졸업 후 연기를 할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고, 극단에 들어가자니 “자신을 모두 포기”하고 “아무 보상 없이 언제 빛을 볼지도 모르는 생활”을 참을 엄두가 안 났다. 그래서 1년동안 어머니에게 하루에 천원씩 받아 생활하기도 했고, “왜 이렇게 내가 불안한가, 왜 우울할까, 왜 소극적일까”를 고민하다 어느 날부터 그것들을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래서 KBS 성우 시절은 “소리의 중요함, 발음, 국어의 바른 사용”을 배운 것이고, 노래를 통해서는 발성을 배웠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잘 할 수 있을지 불안해 하면서도 MBC공채 탤런트에 응시해 합격했다.

장수봉: 한석규가 출연한 MBC 의 감독. 당시 최수종 친구로 잠깐 나오다 말 한석규를 여주인공 김희애의 연인으로 발탁했다. 당시 모든 스태프들에게 90도로 인사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신인인데 인물은 없지만 인상이 좋고 애가 착실하게 보인다”며 캐스팅했다고. 당시 방송사는 이목구비가 아주 뚜렷한 얼굴을 선호했었다. 한석규가 처음에 성우를 선택한 것도 외모에 자신이 없어서였다. 그는 데뷔 직후 길을 걷다 뒤를 돌아보는 연기도 뻣뻣하게 해서 “연기를 그만둬야 하나”하는 생각을 했지만, 을 찍을 때 쯤에는 박복한 인생을 살던 김희애를 넉넉하게 감싸주는 남성을 자연스럽게 연기하면서 인기를 얻었다. 한석규는 김희애에 대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꽉 실어서 담아내는 능력이 놀라울 정도”라며 신인이었던 자신과 호흡을 잘 맞춘 것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을 기점으로 계속 성공했고, 장수봉 감독은 당시 그에게 “너는 앞으로 뜬다. 잘 나간다고 지금 사귀고 있는 애인을 절대 버리지 마라”라고 말했다. 현재 한석규는 10년 사귄 당시 여자친구와 결혼해 잘 살고 있다.

최민식: 대학 1년 선배. MBC 에서 우직한 청년과 ‘인생 한 방’을 노리는 제비로 각각 출연했다. 중요한 건 한석규가 제비였다는 사실. 경박하고, 때론 비겁하거나 야비하기까지 했던 한석규의 캐릭터는 그 전까지 그의 이미지를 뒤엎는 것이었다. 하지만 스스로를 “평탄히 산 것에 비해 예민”하고 “감정의 스펙트럼이 넓다”고 말하는 그는 자신의 캐릭터에 다채롭고 풍부한 감정들을 불어넣었다. 한탕치고 싶은 제비족이면서도 사실은 자신이 벌이는 일을 감당 못할 만큼 순박하고, 독한 듯 하면서도 어설프며, 혼자 있을 때면 불안과 우울에 시달리는 그의 연기는 당시 TV 드라마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다면적이고 인간의 깊이가 제대로 살아있는 캐릭터였다. 한석규가 “60년대의 정형화된 대사의 패턴 같은 게 없다. 지금 봐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했던 대 배우 김승호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음을 보여준 첫 작품이자, 우리가 알고 있는 한석규의 시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작품. 을 기점으로 그는 ‘배우’라는 수식이 부끄럽지 않게 됐고, 영화계에서 출연 제의가 이어지기 시작한다.

김혜수: 영화 에 함께 출연한 배우. 15년 뒤 에도 함께 출연한다. 한석규는 “기존에 갖고 있던 이미지를 확실하게 부숴버릴 만큼 전혀 다른 인물로 태어”나고 싶어 홀로 아들을 키우는 바람둥이 의사를 연기했다. 드라마로 인기를 얻었던 그는 “방송국에 계신 고마운 분들”의 드라마 출연 제의들이 이어져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했었다. 하지만 고석만 당시 MBC 드라마 국장이 “원칙은 지켜야 한다”고 말했고, 한석규는 이 때부터 작품의 완성도만을 보고 출연을 결정한다. 연기를 하기 전 평범한 영상회사의 취직자리가 생겨 “그 때 그곳에 취직했으면 연기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던 사람이 어느새 자신의 원칙에 따라 확고한 결정을 하는 사람이 된 것. 철저하게 시나리오를 보고, 신진 감독들과 자주 작업하면서 감독과 배우가 시너지를 내는 한석규 특유의 작품 선택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심사숙고하되 선택한 결과는 파격적일 만큼 예상을 깨곤 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모두 성공했다.

이창동: 영화 의 감독. 이창동은 를 두고 “이 영화에 다른 장점이 아무 것도 없더라도 한석규라는 배우를 보여준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까지 말했다. 이창동의 말대로 “자기 것을 창조”한 한석규의 연기는 가족을 위해 조폭의 세계에 들어가고, 결국 살인까지 저지르는 캐릭터 막동이의 인생을 담아냈다. 그는 막동이의 어느 한 시절을 연기했지만, 관객에게는 그의 인생 전체를 공감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이 작품의 그 유명한 공중전화 씬의 대사 역시 한석규가 직접 만들어낸 것. 그는 를 “드라마로 치면 같은 의미의 작품”이라 말했고, 막동이는 그가 연 시나리오 공모전 이름이 됐다. 한석규가 에 애착을 갖는 것에는 이 작품이 그의 가족 이야기를 연상시킨다는 점도 큰데, 그는 막동이처럼 평범한 가정의 막내고, “가 바로 사는 게 다 그렇고 가족이라는 게 다 그렇다는 것”을 드러내서 좋아했다. 또한 그의 평생 취미인 낚시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배운 것이다.

송강호: 에서 처음 만나 , 등에 함께 출연했다. 에서 함께 연기하는 순간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해 에 추천했다. 송강호는 의 잊을 수 없는 조폭 연기로 급부상했고, 에서 완전히 주연급으로 올라섰다. 그 사이 한석규는 장르도, 캐릭터도 모두 다른 이 작품들을 전부 흥행시키며 배우인 동시에 영화 산업 그 자체가 됐다. 1990년대 중후반 같은 코미디부터 판타지 , 풍자 코미디 , 리얼리즘이 돋보인 , 블록버스터 까지 한석규의 이름이 안 새겨진 장르가 없었고, 모두 대중적인 성과도 거뒀다. 연기력과 과감한 도전, 작품을 볼 줄 아는 눈, 흥행성까지 모두 갖춘 괴물의 탄생. 그러나, 산업의 한가운데서 작품을 이끄는 것은 한석규에게 사람들은 그만큼의 책임을 부과했다. 그는 늘 작품을 끌고 가는 역할을 해야 했고, 개성 강한 연기는 의 송강호나 의 최민식처럼 다른 배우들이 보여줬다. 한석규라면 매번 연기, 작품, 흥행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을 것 같은 믿음이 그의 가치를 높였지만, 동시에 그의 선택을 더욱 신중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심은하: 영화 와 에 함께 출연한 배우. 와 처럼 멜로의 요소가 섞인 영화는 한석규가 같은 실험적인 작품에 출연하면서도 대중적인 호감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접점이었다. “의식하는 무의식 연기”, 또는 무의식적으로 연기하지만 어떤 목표를 갖고 연기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 그의 연기는 평범한 일상의 연기에서 특히 위력을 발휘했다. 와 이 한 사람의 일상을 차분하게 따라가면서도 남녀의 감정교류를 담을 수 있었던 건 자신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사랑의 감정까지 담아내는 한석규의 자연스러움 때문에 가능했다. 그 자연스러움에서 어느 한 가지 스펙트럼의 감정이 강조되면 그는 처럼 평범한 인생이 파국으로 이어지거나, 처럼 독특한 캐릭터의 연기를 보여줄 수 있다. 안경을 쓰면 착하고 자상한 남자, 안경을 벗으면 대체 뭘 할지 모를 남자. 한석규는 그렇게 1990년대를 지배했고, 세기말에 에 출연했다.

한선규: 한석규의 형이자 매니저. 한석규가 최고의 인기를 누릴 때도 직접 운전을 하고 촬영장에 가도록 했다. 고 3때 진로에 대해 걱정하던 동생에게 “너는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떻게 살 것인가?”라고 물었던 형이기에 가능한 일. 의 흥행 직후에는 “무작정 놀라”고 하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갖도록 했다. 한석규는 “에서 록키를 세계 챔피언 만들어주는 매니저 같은” 형이 있어 좋은 시나리오만을 보고 작품을 고른다는 자신의 원칙을 지킬 수 있었다. 대학시절 2년간 단편영화를 만들며 시나리오가 손 볼수록 좋아지는 경험을 했던 그는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가 최고로 중요”하다고 확신했고, “작품마다 그 작품이 가진 메시지나 의미, 스토리를 보고 어떤 문제제기냐,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 것인가”를 생각하며 작품을 골랐다. 배우가 자신이 하고 싶은 연기와 대중적인 가치를 지킬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을 선택한 셈. 하지만 은 시나리오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못했고, 형과 함께 제작에 나선 작품들이 엎어지면서 그는 너무 오랫동안 연기를 하지 못하게 됐다.

김대우: 영화 의 감독. 오랜 고민 끝에 출연을 결정한 은 흥행에 실패했고, 한석규는 더 이상 영화산업의 아이콘이 아니었다. , ,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지만 흥행 성적은 저조했다. 하지만 이 작품들에서 한석규는 예전처럼 무조건 주인공의 위치에 서거나, 작품 전체를 끌고 갈 필요가 없었다. 그는 1990년대보다 더 신경질적이거나, 더 망가지거나, 더 악랄해질 수 있었다. 은 그렇게 조금은 가벼워진 한석규가 2000년대 관객과 만나는 법이기도 했다. 그는 순수한 로맨티스트 대신 ‘야설’을 쓰는 선비를 연기했고, 순수하거나 야비한 대신 능청맞으면서도 예민하고, 비극마저도 익살맞게 품을 수 있었다. 의 커플이 15년 후에 만난 은 예민하고 신경질적이며, 심지어 악인이기까지한 남자가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선택은 빨라졌고, 행보는 가벼워졌으며, 작품 하나하나마다 성격은 뚜렷해졌다. 더 이상 ‘흥행보증수표’는 아니지만, 대신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더 많아졌다.

고수: 영화 에 함께 출연한 배우. 한석규와 출연하는 것 자체가 영광이라 말하기도 했다. 에서 한석규는 고수와 손예진의 이야기를 따라가도록 만드는 형사를 연기한다. 그는 경우에 따라 젊은 주연들을 뒷받침 해줄 수도 있는 위치가 됐다. 에서의 연기가 그의 걸작에 비해 좋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 등의 작품에서 그는 초췌하고,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어느 캐릭터를 연기하든 과거보다 불안하고, 예민하고 날카로운 모습으 보여주는 것은 최근 한석규가 보여주는 또 다른 특징이다. 산업의 중심에서 물러나면서, 그는 인간의 중심에 더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하게 됐다.

세종: SBS 에서 한석규가 연기하는 배역. 세종은 신하에게 농담을 건네지만 곧이어 심각하게 국사를 논하고, 나라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할 만큼 왕의 위치에 대해 절감하면서도 자신의 고민을 아끼는 궁녀에게 털어놓을 만큼 불안하고 연약한 내면을 함께 가지고 있다. 한 씬 안에서도 분노와 불안, 슬픔, 연약함을 동시에 드러내야 하는 이 인물을, 한석규는 어떤 의문도 들지 않을 만큼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그건 어쩌면 한 산업의 중심에서 늘 예민하고 불안한 내면과 책임감을 함께 가져야 했던 배우만이 가질 수 있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에서 한석규는 극 전체를 받쳐주는 왕이지만, 어진 왕의 얼굴에 감춰진 예민하고 불안한 내면은 시청자들에게 개성 있는 캐릭터로 다가서도록 한다. 영화를 “젊은 사람들에 의해 발전하는 젊은 문화”라고 정의했고, “흥행도 고려하고, (작품성도) 골고루 신경 쓴” 작품을 좋아한다던 그는 SBS 에서 젊은 배우들이 뛰놀 마당을 마련해주며 자신의 내공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작품을 움직이는 뿌리. 하지만 꽃보다 더 화려할 수도 있는 뿌리. 1990년대와 2000년대를 지나, 한석규는 새로운 시절을 맞이하고 있는 건 아닐까.

Who is next
한석규와 에 함께 출연한 차승원과 SBS 에 출연한 수애

글. 강명석 기자 t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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