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선 | 오래 들어도 좋은 음악들

 

얼핏 수묵화 같은 인상이다. 하얗고 작은 얼굴 위에 단아하게 뻗은 까만 눈썹, 그리고 고요해 보이는 눈동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화려한 이목구비는 아니지만, 박하선의 얼굴에는 이상하게 시선을 끄는 힘이 있다. 그가 가녀린 체구를 가졌음에도 마냥 연약해 보이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KBS <광고천재 이태백> 속 금산애드 인턴 백지윤은 박하선의 그런 이미지를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한 인물이다. 피곤에 지친 얼굴을 하고 있다가도 정해진 시간 안에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직접 줄을 타고 빌딩을 내려가거나, 태백에게 “걱정 마요. 내 앞길 내가 헤쳐나갑니다”라고 이야기하는 지윤의 모습에서는 강단이 묻어난다. 생글생글 웃으면서 “승부근성이 있어요. 제가 만족할 만한 끝을 봐야 해요”라고 말하는 실제의 박하선 역시 지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성격이다. “할 수 있는 것까진 다 해보는 편이에요. 연기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기도 하는데, 대신에 많이 괴롭기도 하죠. 스스로 만족을 잘 못하니까요. 그래서 찾은 방법이 있어요. 그냥 한 작품을 끝냈을 때 내가 뭘 만족하면 된다는 기준을 정하는 거죠.” 지난해 주연을 맡았던 영화 <음치클리닉>이 비록 흥행에 성공한 작품은 아니었지만, 박하선은 “즐겁게 일하자”라는 목표를 이룬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었다. “늘 일을 너무 일처럼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현장에 가보니까 굉장히 재미있더라고요. 연기도 즉흥적으로 해서 뭔가 잘 나왔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되게 즐겁고, 좋았어요.”

 

MBC <동이>에서 지고지순한 인현왕후를 연기하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박하선이라는 이름을 더 알릴 수 있었던 것은 시트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이었다. 고양이 울음소리를 흉내 내고, ‘롤리폴리’ 춤을 추는가 하면 빙판에서 벌러덩 넘어지던 어리바리 ‘하선 쌤’은 “없는가 싶었던” 남성 팬들을 끌어모은 캐릭터이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박하선은 쉴 틈 없는 촬영에 지쳐 있었고, 잠시 짬을 내서 본 영화 <댄싱퀸>의 대사 하나에 다시 힘을 얻었다. “영화를 보면 ‘밑바닥부터 올라온 사람에게는 감동이 있다’는 대사가 있거든요. 그 말이 공감도 많이 되고, 힘도 되더라고요. 제가 밑바닥부터 시작했다고 말하긴 좀 어려울지 몰라도 분명 힘든 시절이 있었거든요. 그때 ‘언젠가는 나도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촬영할 땐 힘들어서 죽을 것 같지만, 작품 밖에서는 많은 분들이 저를 보고 웃으면서 즐거워 하시잖아요. 가끔 ‘하선 씨 때문에 살아요’하시는 분들이 있는 걸 보고 ‘아, 이 보람으로 연기하면서 사는 거구나’ 싶었어요.” 다음은 박하선이 추천한 노래 다섯 곡이다. 들여다볼수록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그의 얼굴처럼, 오래 들어도 좋은 음악들이다.

 

1.Jessica의<Jessica>

“영화 [약속]에 나왔던 노래예요. 제가 한창 누군가를 좋아했을 때 굉장히 공감을 많이 했던 곡이기도 하고요. 들으면서 되게 마음이 아팠어요.” 박하선이 추천한 첫 번째 곡은 제시카의 ‘Goodbye’다. 80년대 그룹 에어 서플라이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이 노래는 잔잔한 피아노 반주로 시작해 후렴으로 갈수록 점점 고조되는 감정을 담고 있다. 제시카는 스웨덴 출신의 여가수로, 다른 뮤지션들의 백업 보컬로 음악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백스트리트 보이즈와 파이브 등을 발굴했던 프로듀서 데니즈 팝에 의해 발탁되어 1999년 앨범 <Jessica>를 발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Goodbye’는 박신양, 전도연 주연의 [약속] OST에 삽입되며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당시 제시카는 홍보 차 내한해 TV에 출연하기도 했다.

 

2.유재하의 <1집 사랑하기 때문에>

박하선이 추천한 두 번째 곡은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다. “제목만 보면 굉장히 우울할 것 같은 느낌이잖아요. 그런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그게 유재하 아저씨의 묘한 매력인 것 같아요. 김광석 아저씨나, 이문세 아저씨의 노래는 반복해서 듣다 보면 좀 우울해지는 느낌이 있거든요. ‘나를 바라볼 때 눈물짓나요 / 마주친 두 눈이 눈물겹나요 / 그럼 아무 말도 필요 없이 서로를 믿어요’ 같은 가사를 보면서 ‘아, 내용은 마냥 우울한 편지가 아니구나?’라고 생각했어요. 한동안 참 많이 들었던 곡이에요.” 이 노래는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연쇄살인범과 관련된 중요한 힌트로 등장한 바 있다. 그리고 나얼과 JK김동욱, 버벌진트는 ‘우울한 편지’를 자신들의 느낌으로 재해석해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3.델리스파이스의 <5집 Espresso>

“이 노래는 영화 <클래식>에 나왔던 곡이에요. 그런 종류의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라서 보게 됐었는데, 참 기분 좋게 들을 수 있는 멜로디더라고요.” 좋아하는 노래가 너무 많다며 잠시 망설이던 박하선이 고른 세 번째 곡은 델리스파이스의 ‘고백’이다. 이 노래는 델리스파이스가 야구만화이자 순정만화라고 할 수 있는 아다치 미츠루의 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안해 네 넓은 가슴에 묻혀 / 다른 누구를 생각했었어 / 미안해 너의 손을 잡고 걸을 때에도 / 떠올렸었어 그 사람을’ 등의 후렴구가 특히 인상적이다. 지난해 방송된 tvN <응답하라 1997>에서는 극 중 윤제(서인국)가 시원(정은지)에게 고백하는 장면에 이 노래를 삽입하며 첫사랑의 아픔을 더욱 고조시켰다.

 

 

4.김광석의 <4집 김광석 네번째>

“약간 클래식한 음악들을 좋아해요”라고 밝힌 박하선의 네 번째 추천 곡은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다. “이 곡은 꼭 한 번만 기타로 치면서 불러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지금 기타를 배우고 있거든요. 사실 레슨 받으러 두 번밖에 가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좀 어렵더라고요. (웃음) 작품이 끝나면 다시 시작해봐야죠.” 이 노래 역시 ‘고백’처럼 영화 [클래식]의 OST에 수록돼있는 것이다. 통기타와 하모니카, 그리고 김광석의 기교 없이 담백한 목소리만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덤덤하고 단출하기에 더욱 가슴을 울린다. ‘그대 보내고 멀리 / 가을새와 작별하듯 / 그대 떠나보내고 / 돌아와 술잔 앞에 앉으면 / 눈물 나누나’ 등의 가사 또한 화려한 수식 없이 이별 후의 심정을 절절하게 그려낸다.

 

 

5.이선희의 <14집 사랑아…>

박하선이 마지막으로 추천한 곡은 이선희의 ‘인연’이다. “‘이생에 못한 사랑 이생에 못한 인연 / 먼 길 돌아 다시 만나는 날 나를 놓지 말아요’라는 가사가 마음에 남았어요. 일상적으로 벌어지지 않는, 굉장히 극적인 상황인 거잖아요. 어떻게 보면 사랑하는 연인들의 로망 같은 것이기도 하고요. 사실 저는 기계음이 많이 섞이지 않은 노래들이 좋아요. 옛날 곡들은 기계음이 있더라도 다소 어설프게 섞여 있으니까 계속 들어도 물리지 않아요. 예전 가수분들의 목소리 역시 참 청아하고 좋은 것 같고요.” ‘인연’하면 떠오르는 영화는 역시 [왕의 남자]다. 정식 OST로 연을 맺진 않았지만, 영화 편집 본으로 만든 뮤직비디오와 노래의 조합은 비극적이면서도 애달픈 정서를 전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폭넓은 배우가 되고 싶다

보드라운 목소리로 사근사근 이야기하지만, 사실 박하선은 욕심이 많은 배우다. “개인적으로는 <연애소설> 같은 영화를 찍어보고 싶어요. 멜로영화도 시켜만 주시면 잘할 수 있어요!”라고 하다가도, “액션도 좋아요. <천녀유혼>이나,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앤 해서웨이가 맡았던 캣우먼 같은 것도 좋고요. 몸 쓰는 연기에 관심이 많거든요. 운동도 좋아하고요. 많은 분들이 저를 그렇게 안 보시니까 더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는 거죠”라며 폭넓은 관심사를 드러낸다. 한 단계씩 차근차근 밟아나가는 그에겐 이 목표들을 이루는 것이 그리 먼 이야기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액션 영화의 주연이 아니라 작은 배역도 좋아요. 저는 어떤 목표가 너무 높은 것이라고 하면, 그 밑에 자잘한 목표들을 다시 세워서 하나하나 클리어해 나가는 걸 즐기는 편이거든요.” 오밀조밀한 얼굴에 서서히 번져나가는 미소마저도 참으로 듬직하게 느껴지는 대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