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FF, 전주의 봄은 다시 올까?

해임, 외압, 사임, 내분, 충돌. 지난 몇 달간 전주국제영화제를 유령처럼 따라다녔던 단어들이다. 지난해 6월 유운성 프로그래머의 해임 파문 이후 부집행위원장과 집행위원장의 사임, 그리고 주요 실무진 8명의 집단사표 제출까지. 전주국제영화제에 그야말로 거대한 회오리가 몰아쳤다. ‘더 깊은 위기의 늪으로 빠지느냐, 재도약의 길로 가느냐’의 기로에 서 있는 올해는 그래서 중요하다. 새로 부임한 관계자들도 성공적인 영화제 개최를 위해 애쓰는 기색이 역력하다. 성공적이지 못하면 13년간 쌓아온 성과가 한순간에 무너질 걸 알기 때문이다. 전주의 봄은 다시 올까?

개막을 한 달 앞둔 제14회 전주국제영화제(이하 JIFF)의 상영작 발표 기자 회견이 3월 26일 오후 5시 서울 충무로 신세계 문화홀에서 열렸다. 오는 4월 25일부터 5월 3일까지 46개국 190편(장편 120편, 단편 70편)의 영화를 선보일 2013년 JIFF는, 대중성과 예술성을 고루 갖춘 작품으로 관객 폭을 한층 넓히겠다는 계획이다. 이날 자리에는 고석만 집행위원장과 송하진 조직위원장, 김영진 수석프로그래머, 이상용 프로그래머가 참석했다.

올해 전주영화제는 프랑스 로랑 캉테 감독의 <폭스파이어(FOXFIRE)>로 문을 연다. 영미권 대표 여성작가인 조이스 캐롤 오츠의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소녀들의 일탈과 그 일탈을 강요하는 사회 시스템간의 갈등을 그렸다. 김영진 프로그래머는 “즉흥연출을 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던 로랑 강테 감독 이전 작품들과 달리, 스토리텔링이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폭스파이어>를 소개했다. 9일간의 여정을 마무리할 폐막작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성 감독 하이파 알 만수르가 메가폰을 잡은 <와즈다(Wadjda)>. 또래 남자 아이들처럼 ‘자전거’를 타는 것이 꿈인 10대 소녀 와즈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다른 문화권에서는 사소한 일일 수 있는 자전거를 탄다는 것이,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에게는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지를 서정적이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조직위원회에 변화가 있었던 만큼 올해 JIFF는 프로그램에도 대대적인 손질을 가했다. 지난 해 6개의 메인섹션과 19개의 하위 섹션으로 꾸려졌던 프로그램이 올해는 6개의 메인섹션과 11개의 하위섹션으로 통합 정리됐다. “너무 상차림이 많아서 뭘 봐야할지 헷갈린다는 주변의 반응을 고려한 편성”이라는 게 김영진 프로그래머의 설명이다. ‘시네마스케이프’ 내에 있던 ‘한국영화 쇼케이스’와 ‘로컬시네마 전주’의 통합도 눈에 띈다. 올해는 이 두 섹션을 통합해 ‘코리아 시네마스케이프’롤 선보이다 “지역성이나 쇼케이스의 성격을 넘어서 한국영화의 다양한 흐름을 보여줄 수 있는 프로그램의 성격을 강화하기 위한” 선택이다. 폐지된 프로그램도 있다. ‘되찾은 시간’과 ‘게스트큐레이터’는 특별프로그램으로 편성됐고 ‘야외상영’은 공식 프로그램이 아닌 비공식 상영으로 전환했다.

 

심야상영 ‘불면의 밤’은 전주영화제가 매년 공들이는 프로그램이다. 이상용 프로그래머는 “그동안 불면의 밤이 아니라 숙면의 밤이 아니냐는 소리를 들었는데, 올해는 확실한 불면의 밤이 될 수 있는 작품들을 준비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자정부터 새벽까지 열혈 영화광들의 오감을 자극시킬 영화로, 2012년 선댄스영화제에서 주목받았던 <어쨌든 존은 죽는다(John dies at the end)>, 올해 JIFF 상영작 중 가장 그로테스크한 애니메이션으로 평가받는 <버닝 붓다맨(The Burning Buddha Man)> 등이 기다리고 있다.

 

JIFF의 간판 프로그램인 ‘디지털 삼인삼색’과 ‘숏!숏!숏!’은 기획력을 강화했다. 우선 ‘디지털 삼인삼색 2013’에서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세 감독이 ‘이방인’을 주제로 자유롭게 감독의 개성을 스크린에 녹여냈다. 일본의 고바야시 마시히로 감독, 중국 장률 감독, 인도네시아의 에드윈 감독이 ‘디지털 삼인삼색’의 주인공들이다. ‘숏!숏!숏!’에서는 소설가 김영하의 작품을 바탕으로 한 옴니버스 영화를 소개, 문학과 영화의 만남을 꾀한다. 이상우 감독은 김영하 작가의 <비상구>를, 이진우 감독은 <피뢰침>을, 박진성/박진석 감독은 <마지막 손님>의 각색을 시도했다.

이날 고석만 집행위원장은 프로그래머 부당 해임 논란 및 스태프의 집단 사표 논란과 관련, “영화제 준비 과정에서 서로 오해가 있었을 수도 있고, 의견이 잘못 전달된 경우도 있었으리라 생각한다”며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JIFF가 오히려 더 심기일전 하게 됐고, 반성하는 계기도 됐다. 올해 영화제를 지켜보면 아시겠지만 더 나아졌으면 나아졌지 소홀함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영진 수석프로그래머는 지난해 6월 한 신문사에 기고한 ‘국제영화제 좀먹는 반문화적 도그마’라는 기사를 통해 해임된 유운성 프로그래머를 옹호한바 있다. 그렇기에 그의 수석프로그래머 수락 배경을 두고 많은 이들이 의아해 했던 것이 사실. “이러한 논란에 대한 이야기를 사석에서만 30번 이상 들었고, 공격도 많이 당했다”고 입을 연 김영진 수석프로그래머는 “반문화적 도그마가 있다면 평론만 하지 말고 들어가서 직접 겪어보자는 터무니없는 자만심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지역 언론과 토호세력이 JIFF에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항간의 소문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는 영화제의 자율성이 침해당하는 걸 체감을 못했다”며 “전주시와 협조적 관계에서 영화제를 준비 중이다. 결과에 대한 평가는 어떤 것이든 영화제가 끝난 후에 달게 받겠다”고 답했다.

JIFF가 실추된 이미지를 복구하는 길은 단 하나다. 잡음이 나오지 않을 만큼의 운영 능력과 실력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그 누구보다 JIFF가 잘 알고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