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 인디 컬렉션] 허클베리핀, 거대한 욕망과 감성의 용왕님

1997년에 결성된 <허클베리핀>은 한국 인디음악을 대표하는 모던 록밴드다. 트리오로 시작해 혼성듀엣 시스템으로 체질 개선을 한 이들은 데뷔시절 분노가 폭발하는 것 같은 파괴적이고 강력한 사운드만으로도 차별적이었다. 음악적 핵심은 ‘용왕님’으로 불리는 리더 이기용. 그는 한국대중음악의 창작자 계보를 잇는 중요 송라이터로 평가받는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그의 음악에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제공하는 원동력이 있다. 여성 록스타 이소영의 드라마틱한 가창력이다. 언뜻 남성의 보컬로 착각하게 하는 그녀의 중성적인 음색과 노래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풀어내는 감정조절능력은 한마디로 압권이다.

어릴 때부터 혼자 우주로 가는 상상을 많이 한 이기용의 무의식 속에는 그 감정이 지금도 잠겨있다. 우울한 가정 집안 분위기에서 성장한 그는 말이 없고 내성적인 아이였다. 특이하게도그는 4세 때 일을 기억한다. 친하게 지냈던 옆집 누나가 내일이면 이사를 떠나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슬펐기 때문.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조숙했기에 또래의 아이들과 소통하기 힘들었다. 그는 ‘어린 시절 창밖만 바라보던 기억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에게 친구가 되어 준 것은 라디오 음악방송이다. 학교가 끝나면 김기덕의 2시의 데이트 방송을 듣기위해 전속력으로 집으로 달려갔을 정도. 그리고 DJ 박원웅과 개그맨 서세원이 진행하던 3개 방송을 매일같이 녹음해 반복해서 들었다.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던 빌보드음악을 섭렵했던 그는 빌보드 순위를 줄줄 외우고 다닌 아이였다.

그는 9세 초등학교 때부터 우울증으로 인한 불면증이 불러오는 호흡곤란을 겪었다. 낮에는 멀쩡한데 저녁이 되면 숨을 쉬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되었다. 심야로 갈수록 상태는 심해져 죽을 것 같았다. 고1 여름 무렵. 통제 불능에 빠져 고통 받았다. 그때 막내 삼촌이 사준 싸구려 삼익 통기타를 치면 신기하게도 혼돈상태가 진정되곤 했다. 홍대부고로 진학 한 그는 1학년 때 자퇴를 했다. 정상적인 학교생활이 힘들었고 또래들과 어울리지 못해 학교에 가기 싫었던 것. 1년 동안 가출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연애도 하면서 그럭저럭 지냈다. 그러다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준비해 1993년에 홍익대학교 영문과에 입학했다. 정상적으로 대학에 입학했다면 그는 91학번이지만 교통사고로 인한 재활치료로 2년 늦었다.

그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50만원씩 주던 장학제도가 없어졌다. 수석으로 입학했지만 입학금을 내야했다. 문교부에 항의도 했지만 소용없어 대출을 받아 입학금을 냈다. 상황이 힘들어지면서 술과 음악에 더욱 빠져들었다. 대학에 정이 떨어지자 학교를 그만둬 버렸다. 24세 때 비비 킹의 노래제목을 딴 카피밴드 ‘조 쿨’을 결성해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흥미로운 것은 1996년 밴드를 나오면서 창작 샘이 터져 ‘보도블럭’과 1집에 실린 ‘워크’를 만들었다. 카피로는 풀리지 않는 거대한 욕망과 감성을 담은 자신의 이야기를 음악을 통해 표현하게 되자 자신의 밴드를 만들고 싶었다. 그게 바로 모던 록 밴드 ‘허클베리 핀’이다.

1997년 봄 후배 최동민의 소개로 당시 서울대학교 산업디자인과 졸업반이었던 여성보컬 남상아를 처음 만났다. 머리가 길고 군복을 입어 터프한 인상이었는데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친구’다 싶었다. 당시 남상아도 작곡을 하면서 음반을 내기위해 매니저와 접촉하고 있던 상태. 음악 동반자를 만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두 사람은 곧 의기투합했다. 드러머 김상우가 들어오면서 3인조 밴드가 결성되었다. 첫 공연은 홍대 앞 클럽 스팽글에서 했다. 스팽클은 90년대 인디음악신에서는 중요한 클럽이다. 드럭이 펑크음악의 본산이라면 스팽글은 모던 록 중심의 클럽이었다. 언니네 이발관, 마이 앤트 마리, 코코어, 델리스파이스 등 전설적인 모던록 밴드들이 그 곳을 거쳐 갔다. 당시 거기서 허클베리핀이 선보인 어두운 포스는 압권이었다.

창작자에게 음악적 성취를 위한 변화와 진보에 대한 끊임없이 고민은 기본적 자세이고 음악에 대한 열정과 진정성은 절대로 잃어버려서는 안 될 기본 덕목이자 태도다. 허클베리핀의 정규앨범들은 1집 이후 앨범 타이틀은 한글, 수록곡은 11곡, 재킷은 노란색만 사용하는 몇 가지 통일된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5집은 한글 타이틀, 수록곡은 원칙이 지켜졌지만 앨범재킷은 하얀 구름과 물속에 잠긴 몽상적이고 실험적인 블루 톤 이미지로 변화를 시도했다. 이기용은 “우선 노란색으로 색을 한정하니 작업을 하는 디자이너들이 애로를 느낀다. 노란색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환상적이고 매력적이고 독창적이면서도 다층적인 이미지를 한 번 시도해 보고 싶었다.”고 한다.

어느 뮤지션에게나 발표한 모든 앨범에 음악적 색채를 달리하면서 동시에 뛰어난 음악성을 담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허클베리핀의 모든 앨범은 빠트릴 것이 없다. 1998년 발표된 1집 <18일의 수요일>은 말이 필요 없는 한국 록의 명반이다. 1집에는 그 때까지 음악을 들어왔던 이기용의 에너지와 욕망 그리고 삶의 분노가 모두 응집되었다. 하지만 음울하면서도 어둡고 은유적인 노랫말과 폭발적인 사운드는 주류의 정서에서 빗겨나 있었다. 이기용의 회고다. “한마디로 말하면 왕따였다. 친하게 지내는 밴드도 별로 없었고, 조용히 합주를 하고 공연 갔다가 끝나면 우리끼리 술 마시고, 이런 패턴의 반복이었다.” 1집 이후 멤버 두 명의 개인사정으로 팀이 깨졌다. 새로운 멤버를 구하기 위해 무조건 연세대 앞에 가서 첼로 들고 나오는 학생을 영입하려고 접촉했다. 이후 지금까지 리드보컬로 활동하고 있는 보컬 이소영과 드럼 김윤태가 가세해 2기 시스템을 가동했다.

강원도 태백 탄광촌에서 태어난 리드보컬 이소영은 춘천여고 시절 학교 방송 반 활동을 하면서 외국팝송을 접했고 특히 너바나와 본 조비의 음악을 좋아했다. 당시 그녀의 꿈은 배철수의 음악캠프 라디오 PD. 그 프로그램의 PD가 불문과 출신이라 전공을 불문과로 정해 홍익대학교에 입학했을 정도. 신입생 때 학교 축제무대에 한 번 섰지만 가수가 되려는 마음은 없었다. 1999년 대학 졸업반이던 5월쯤. 밴드 허클베리핀에서 여성보컬 오디션을 본다는 이야기를 듣고 광팬이었던 그녀는 일반직장인으로 살아가긴 싫어 ‘이때 아니면 못해 보겠다’는 생각에 20여명의 경쟁자를 제치고 정식멤버가 되었다. 하지만 허클베리핀은 3집 발표 때까지 초대 보컬인 남상아에 대한 팬들의 아쉬움을 들어야 했다. 탁월한 보컬리스트인 남상아는 현재 록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의 리드보컬로 활동하고 있다.

쌈지에서 제작한 2집 <나를 닮은 사내>도 1집 못지않은 수준급 음반이다. 2집은 바이올린, 비올라 등 현악기를 도입해 획득한 서정성만큼이나 음악적 아우라가 넓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 앨범의 백미 ‘사막’은 델리 스파이스의 ‘챠우 챠우’ 등과 함께 인디신을 대표하는 싱글이 됐다. 또한 김기덕 감독의 영화 <섬>의 OST로 수록되어 대중적 인지도를 확보했다. 3년의 공백 끝에 발표한 2집은 뛰어난 음악성과 상업성의 현실적 괴리를 증명하는 서글픈 단면을 보여주었다. 뛰어난 음악성은 인정받았지만 제작자가 나타나지 않았던 것. 그래서 2집 발표 후 음반을 들고 직접 어느 기획사를 찾아갔다. 상업성이 없으니 “멤버들을 교체하면 생각해 보겠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때 이기용은 직접 레이블을 창설할 결심을 하고 2003년 ‘샤 레이블’을 출범시켰다.

우여곡절 끝에 2004년에 발표한 허클베리 핀 3집 ‘올랭피오의 별’은 전업 뮤지션으로 평생을 살아갈 확신을 가지질 못했던 이기용에게 음악과 완벽한 연인관계를 맺은 선언이었다. 또한 그때까지의 음악을 정리하는 트릴로지의 완결 편 같았다. 1집은 간결한 사운드로 직설적인 분노, 폭발, 달려가는 화난 모습이 주된 이미지였다면 2집은 격한 감정 후 남는 쓸쓸하고 고독한 정서의 이미지였다. 3집은 분노를 정화시키는 삶의 진지한 고민이 반영된 한결 성숙된 이미지다. 최고의 트랙은 6번 ‘불안한 영혼’이다. 이 곡은 이기용의 삶이 반영된 노래다. 이 곡은 보컬이 나올 때까지 3분 이상 연주만 계속되는 대곡이다.

3집은 음악 완성도를 위해 엄청나게 오랜 시간을 투자했다. 녹음시간만 무려 480시간을 넘겼다. 그 결과, 2004년 말 주요 중앙일간지(조선, 문화, 한겨레 등)로부터 ‘올해 최고의 앨범’으로 평가받았다. 또한 제2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앨범’등 3개 부문 후보로 지목되었고 리더 이기용에게 ‘특별상’을 안겨주었다. 자주 제작한 이 앨범이 탄탄한 음악중심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외부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운 인디시스템으로 제작했기 때문이다. 2007년 싱글앨범과 4집 <환상…나의 환멸>을 발표했다. 타이틀곡 ‘낯선 두 형제’는 280번이란 말도 안 되는 녹음을 시도한 곡이다. 이기용은 솔로 프로젝트로 스왈로우 2집으로 제 4회 한국대중음악사 올해의 음반에 선정되었다. 2011년 4년 만에 5집 <까만 타이거>를 발표했다. 멤버 구성이 3인조에서 혼성듀엣으로 변화했다. 지난 2001년 2집부터 10년 동안 함께 밴드활동을 해온 드럼 김윤태가 일신상의 이유로 빠졌기 때문. 이 앨범은 탁월한 멜로디와 슬프고 어두운 가사 그리고 음악을 대하는 진정성은 여전한데 수록곡 상당수가 댄스 본능을 자극하는 리듬감이 넘쳐난다.

(죄측부터) 싱글EP 2007년 Sha Label, 4집 환상 나의 환멸 2007년 샤레이블l, 5집 까만 타이거 2011년 샤 레이블

현재 허클베리핀은 두 마리 토끼를 사냥 중이다. 우선 자신들이 운영하는 홍대 앞 ‘바 샤’에서 지난 20012년 7월 18일 수요일부터 지금까지 매주 어쿠스틱 미니 콘서트 ‘18일의 수요일’을 진행하고 있다. 공연이름은 1집 타이틀에서 가져왔다. 원래 1,2달에 두 번 정도로 돌아오는 ‘18일 수요일 날’에 공연하려 했지만 묘하게도 3,4개월에 1번 밖에는 맞아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매주 수요일 공연으로 변경해 다양한 주제로 총 62주 연속 공연으로 일이 커졌다. 흥미로운 사실은 매달 첫째 주 수요일 공연에서 신곡을 발표하는 미션을 수행하기로 한 관객들과 약속했다. 이제까지 ‘호외’ 버전까지 합쳐 13곡의 신곡이 탄생했다. 노래들은 아직 제목을 정하지 못해 ‘월간 이기용’의 축약어로 월용1번, 2번으로 가제를 붙였다. 프로젝트 공연이 마무리되는 9월까지 5,6곡 정도를 더 발표할 예정이고 그 신곡들을 추려서 정규 6집을 제작한다는 계획이다. 비트 강한 노래들도 있지만 어쿠스틱 공연에서 발표한 노래들인지라 6집은 포크 록 앨범이 될 가능성이 크다.

리드보컬 이소영은 “이번 노래들은 포크 질감의 노래들인지라 이제껏 구사했던 록 창법과는 발성 자체가 완전 다르다. 그래서 내공이 필요해 연습을 엄청나게 많이 하고 있다.”고 전한다. 리더 이기용도 “어쿠스틱 미니 콘서트인지라 사람들이 바로 코앞에서 공연을 보기에 소리 하나가 틀려도 커버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데뷔 이래 가장 연습을 많이 하고 있다.”고 말한다. 음악을 대하는 이들의 진지한 태도와 뜨거운 열정은 언제나 감동이다. 특별한 프로젝트 공연을 통해 탄생되는 이들의 차기 정규앨범이 기대되는 것은 연습 때 들은 미발표 곡 ‘남해(가제)’의 몽환적인 멜로디의 여운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기가 막힌 노래였다.

허클베리핀 프로필

멤버

1기 이기용(기타, 보컬) 남상아(보컬) 김상우(드럼)
2기 이기용(기타, 보컬) 이소영(보컬, 기타) 김윤태(드럼)
3기 이기용(기타, 보컬) 이소영(기타, 보컬)

경력
1999년 1집 ‘18일의 금요일’ 음악잡지 서브 ‘20세기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 86위 선정
2003년 인디레이블 샤 창립
2004년 3집 ‘올랭피오의 별’ 중앙일간지(조선, 문화, 한겨레 등) 올해의 앨범 선정
제 2회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앨범’, ‘올해의 가수’ ‘올해 최고의 모던 록’
3개 부문 후보 노미네이션. 이기용 특별상 수상
2007년 경향신문, 가슴네트워크 선정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 1집 64위, 3집 85위 선정 2008년 4집 <환상.. 나의 환멸> 제 5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모던 록 앨범 공동수상
2011년 5집 <까만 타이거>다음(Daum) 이메진어워드 노미니대상 올해의 앨범 선정
2012년 한중수교 20주년 기념 ‘2012한국문화관광축제’ 한국사절단 대표밴드 선정 중국 최대클럽 ‘상하이 마오(MAO)’ 공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