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리뷰] CJ의 속 시원한 한판

[텐아시아=김하진 기자]
뮤지컬 '판' 공연 장면 / CJ문화재단

뮤지컬 ‘판’ 공연 장면 / CJ문화재단

단순 고전극이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 시종 웃음을 머금게 만들면서도 가슴 한구석 안타까움도 서린다. “동치미 같은” 속 시원함은 덤이다.

24일 개막하는 뮤지컬 ‘판'(연출 변정주)은 19세기 말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양반가 자제 달수가 염정소설과 정치풍자에 능한 이야기꾼이 되는 과정을 풀어낸다. 달수의 성장을 돕는 인물은 호태로, 그에게 낭독의 기술을 전수받는 달수의 이중생활을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엮었다.

시작부터 끝까지 흐름에 군더더기가 없다. 때문에 쉽게 빠져들고 집중도 역시 높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극인만큼 북과 장구 소리가 적절히 배여 흥겹다. 여기에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섞여 절로 어깨를 들썩이게 만드는데, 김길려 음악감독의 손을 거쳐 세련미까지 입었다. 200석 규모의 소극장에서 펼쳐지는 만큼, 제작진은 현명한 무대 활용으로 작품의 완성도를 한껏 높였다.

극본과 연출, 무대와 음악, 의상까지 완벽한 합을 이룬다. 남은 건 배우들의 연기인데, 이 역시 탁월하다.

뮤지컬 '판' 공연 장면 / CJ문화재단

뮤지컬 ‘판’ 공연 장면 / CJ문화재단

달수 역에 김지철·유제윤, 호태 역에 김대곤·김지훈, 춘섬 역에 최유하, 이덕 역에 박란주, 사또 역에 윤진영, 분이 역에 임소라 등이 나선다. 각자 맡은 캐릭터에 맞춤옷을 입은 듯한 배우들은 연기와 노래, 안무, 또 마임에 극 중간 삽입된 인형극까지 매끄럽게 소화한다.

무엇보다 ‘판’이 주목받은 점은 CJ문화재단의 첫 제작 지원 창작품이기 때문이다. CJ문화재단은 지난 2010년부터 약 7년간 실력 있는 신인 공연 창작자를 발굴, 육성하고 이들의 작품을 리딩 공연의 형태로 선보이며 창작극의 토양을 다졌다. 그 결과 신인 정은영 작가와 박윤솔 작곡가를 발굴했고 지난 2015년 11월, 크리에이티브마인즈에 선정된 뒤 전문가 멘토링 등 작품개발 과정을 거쳐 지난해 6월 리딩공연으로 발표됐다. 당시 90분 분량이었던 작품은 약 10개월의 추가 개발기간 동안 완성도를 높여 100분 정식 뮤지컬로 탄생했다.

뮤지컬 ‘아리랑’으로 ‘제5회 예그린어워드’ 연출상을 받은 변정주 연출과 뮤지컬 ‘뿌리 깊은 나무’ ‘명성황후’ 등에 참여한 김길려 음악감독이 손을 잡았다.

‘판’의 완벽함은 흐른 시간만큼의 땀과 노력이 빚어낸 결과물인 셈이다.

고루하지 않게 무대와 음악·소품·의상 등 우리의 전통을 살렸고, 가장 중요한 풍자 역시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직설화법으로 막혔던 속을 시원하게 뚫는다. 가령 불법으로 절을 짓는 종교인이 “선의의 도움을 받읍시다”라고 말한다든지, 그에게 조언하는 누군가가 “언니, 내가 써준대로만 읽어.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된다” 등의 대사는 현실의 상황과 꼭 맞아떨어진다. 풍자와 해학만 있는 건 아니다. 이덕에게 연중을 품는 달수의 모습을 통해 연분홍 빛깔도 덧칠했다.

뮤지컬 '판' 포스터 / CJ문화재단

뮤지컬 ‘판’ 포스터 / CJ문화재단

‘판’과 마주하고 있는 지금이, “우리에게도 매설방(이야기방)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는 19세기 조선과 크게 다르지 않아 씁쓸한 미소를 짓게 하지만, 관객들은 훨훨 날으는 새를 보며 실낱같은 희망을 손에 쥔다.

동치미 한 사발을 들이켠 것 같은 속 시원한 한 판. CJ문화재단의 첫 제작지원 창작뮤지컬 ‘판’. 돈을 쓰려거든 이렇게 써야 하는게 아닐까.

오는 4월 15일까지 CJ아지트 대학로에서 공연된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