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희 | 한 시절을 함께한 영화들

잠깐 만나보기만 해도 얼마나 큰 에너지를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다. <SBS 인기가요>와 <놀라운 대회 스타킹>, MBC <우리 결혼했어요>에 고정 출연하는데다 사이사이 자잘한 스케줄들이 넘쳐나지만, 광희는 지치거나 힘든 내색을 하는 법이 없다. 다이어트를 위해서 요즘은 미숫가루만 먹고 있다면서도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하이톤이다. 힘들지 않느냐고 물어보자 “아유, 저만 바쁜 게 아니라 다들 바쁘게 활동하고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저도 군소리 없이 하는 거죠”라며 활기차게 깔깔 웃는다.

 

카메라 앞에서나 바깥에서나 한결같은 에너지를 유지하는 게 지칠 만도 하건만, 광희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사실 저도 너무 피곤하고 지칠 때가 많아요. 만날 즐거울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다행히 너무 감사한 건, 제가 보시는 분들께 기쁨을 드릴 수 있는 캐릭터란 거예요. 헤어메이크업을 딱 하고 카메라가 있는 순간부터는 저도 모르게 즐거워지더라고요. 버릇이 그렇게 들어서 그런지 인터뷰하거나 일하는 자리에 왔을 땐 딱 바뀌는 거예요. 직업정신이 나오나 봐요. 뭐든지 즐겁게 하면 좋잖아요?”

 

그래서 3월 14일 개봉하는 애니메이션 <글래디에이터: 로마 영웅 탄생의 비밀 3D> 더빙을 맡게 된 일 또한 그에겐 단순한 스케줄이 아니라, 새로운 즐거움이었다. “처음에 제안을 받았을 땐 ‘내가 아무리 대세긴 하지만 (웃음) 무사 역할에 어울릴까?’라고 생각했어요. 남자다운 모습이 없잖아요, 저한테는. 그런데 작품을 보니까 이해가 되더라고요. 초반엔 엄청난 게으름뱅이에, 용맹하지도 못한 남자거든요. 한 편의 영화가 제 목소리로 나온다는 거니까 신기하고 재미있었어요.” 바쁜 연말에 틈을 쪼개어 연습을 하고, 복잡한 격투 장면을 이해한 후 입을 맞추느라 며칠이 걸렸다는 경험을 줄줄이 털어놓으면서도, 결국 결론은 “더빙이란 게 진짜 매력적인 작업 같아요!”로 돌아간다. 그리고는 이내 귀여운 자랑을 덧붙인다. “영화 더빙 후에 CF 더빙을 했거든요. 스태프분들이 예정 시간을 한 시간 반, 두 시간 정도로 잡아놓으셨어요. 그런데 제가 싱크를 딱 맞춰서 십분 만에 끝내니까 박수를 막 치시더라고요. 아우, 제가 제 입에 맞춰서 더빙하는 게 뭐가 어렵겠어요. (웃음)” 이토록 같이 있기만 해도 유쾌해지는 남자, 광희가 ‘한 시절을 함께한 영화들’을 추천했다.

1. 신데렐라
1962년 | 윌프레드 잭슨, 해밀턴 러스크, 클라이드 제로니미

“엄마가 제일 처음 저한테 보여주셨던 영화예요. 네 살쯤인가 다섯 살 쯤인가, 자막 없이 봤어요. 영어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하셔서요. (웃음) 그땐 이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꼭 만화처럼 생긴 사람들이 있는 줄 알았어요. 왜냐하면 TV에 나오니까요. 그런 색감의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쥐가 말을 할 줄 안다고 생각했던 거죠. 7살 때 동물원에 가서야 그 환상이 깨졌어요. 쥐를 봤는데 말을 못하더라고요. (웃음) 약간의 혼란이 있었던 시기였죠.”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재창조되는 텍스트 중 하나를 꼽아야 한다면, 단연코 <신데렐라>를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프랑스의 동화작가 샤를 페로가 쓴 <거위 아주머니 이야기> 중 <상드리용>을 번역한 것이다. ‘상드리용’은 ‘재를 뒤집어쓰다’라는 뜻으로, 항상 부엌 아궁이 앞에 앉아 일하는 주인공의 처지를 반영해 지은 이름이다. 디즈니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은 아름답고 디테일한 그림체로 많은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2. 로미오와 줄리엣
1996년 | 바즈 루어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클레어 데인즈가 나오는 버전을 중학교 2학년 때쯤 봤던 것 같아요. 굉장히 감미로웠고, 감동적이기도 했어요. 특히 그 장면! 로미오와 줄리엣이 수족관 너머로 서로의 눈길을 의식하고, 사랑이 시작되려는 그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보고 그때부터 성형의 충동을 느꼈던 것 같아요. (웃음) 저도 머리에 물을 묻히고 거울을 봤는데 디카프리오랑 너~무 다른 거예요. 아무튼 이 영화는 오래오래 보고 싶어서 다운로드를 받아놨어요. 물론 합법적으로요. 저는 굿 다운로더입니다! (웃음)”

 

1968년 개봉한 <로미오와 줄리엣>이 줄리엣 역을 맡은 올리비아 핫세의 이미지로 남아있다면, 1996년 개봉작은 로미오 역을 맡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말간 얼굴을 기억시켰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23세였던 디카프리오는 원수 집안의 딸과 사랑에 빠지고,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며, 결국 죽음에 이르는 로미오의 감정을 완벽하게 표현해냈다.

3. 킬 빌 – 1부
2003년 | 쿠엔틴 타란티노

 

“한창 힘들게 연습하던 연습생 시절에 봤던 영화예요. 물론 잔인할 수는 있지만, 제가 어릴 때부터 액션물을 좋아해서 그런지 너무너무 속이 시원했던 작품이었어요. 사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을 굉장히 좋아해서 다른 작품들도 다 봤거든요. 우마 서먼이 출연한 <펄프 픽션> 같은 것들이요. 그 감독님의 영화들은 다 좋지만, 특히 색감이 너무 예쁘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애니메이션 같다는 느낌도 들었어요.”

 

‘더 브라이드'(우마 서먼)는 자신의 결혼식 날, 데들리 바이퍼스 암살단으로부터 공격을 받는다. 그들은 그녀의 신랑을 살해하는 동시에 뱃속에 있던 아기를 훔쳐가고, 4년 후 코마 상태에서 깨어난 ‘더 브라이드’는 복수하기 위해 움직인다. 피가 난자하는 액션 신, 극 중간에 삽입된 애니메이션, 오렌 이시(루시 리우)의 머리가 잘려나가는 장면 등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독창적인 연출이 가득한 작품이다.

4. 청설
2003년 | 청펀펀

 

“도시락 배달하는 남자와 청각장애인 여자가 풋풋한 사랑을 하는 이야기예요. 요즘 사람들은 막연하게 부자 남자와 가난한 여자가 만나는 신데렐라 스토리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이 영화는 그렇지 않더라고요. 소소한 사랑 이야기가 아름다워 보여서 너무 부러웠어요, 제가 그런 걸 못하고 있어서 그런 건지. (웃음) 그리고 일로 갔을 땐 별 감흥이 없었던 대만 풍경도 굉장히 멋있게 느껴지더라고요. 영화를 보면서 다른 사람들한테 ‘저긴 어디야?’라고 물어봤더니 ‘너 지난번에 가본 곳이잖아’라고 해서 놀랐어요.”

 

<말할 수 없는 비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와 더불어 국내에서 사랑받은 대만의 로맨스 영화 중 한 편이다. 부모님을 도와 도시락 배달을 하는 티엔커(펑위옌)는 수영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양양(진의함)에게 한눈에 반하고, 두 사람은 천천히 사랑을 키워나간다. 영화의 대부분이 수화로 진행되지만, 대사 없이도 충분히 전해지는 감정은 ‘Hear Me’라는 작품의 영어 제목과 꼭 어울린다.

5. 러브
2012년 | 유승택

 

“<청설>에 출연했던 펑위옌과 진의함 때문에 이 영화를 찾아보게 됐어요. <러브>는 대만판 <러브 액츄얼리> 같은 영화예요. 주인공이 총 8명이고 이들의 사랑을 주제로 한 작품인데, 내용이 되게 서정적이더라고요. <러브>를 보고 대만의 매력에 엄청나게 빠졌었어요. 그리고 사실… 예전엔 이런 영화들을 자주 봤었는데 요즘은 잘 안 봐요. 사랑 이야기를 보면 부럽고, 자연스럽게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그러다 보면 결국 주체를 할 수 없게 되거든요. (웃음)”

 

톱스타와 순수한 사랑을 할 줄 아는 남자, 결벽증이 있는 남자와 싱글 맘, 친구 애인의 아이를 임신해버린 여자 등 다양한 캐릭터들을 ‘사랑’이라는 주제로 한데 묶은 옴니버스 영화다. <황제의 딸>로 국내에서 이름을 알린 조미, 대만 배우 서기가 출연하며 <청설>의 펑위옌과 진의함은 이루어지기 어려운 삼각관계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사람들 앞에서 솔직해질 수 있다는 것. 자신의 본 모습에 스스로 애정을 갖지 않으면 힘든 일이다. 광희는 자신을 제대로 사랑할 줄 아는, 보기 드문 사람이기도 하다. “제가 매력이 없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사실 제 입으로 말하긴 좀 애매한 거지만, 많은 분들이 즐거워하시잖아요. (웃음) 그렇기 때문에 이 성격을 애써 가리고 싶진 않아요. 물론 안 좋아하시는 분들이 계실 순 있어도 개인의 취향이라는 게 다 다른 거니까요.” 그리고, ‘야망동자’로 활약했던 MBC <황금어장 무릎팍도사>에서는 비록 하차하게 됐으나 광희의 바람은 좀 더 좋은 MC가 되는 것이다. “MC를 본격적으로 좀 더 해보고 싶어요. 제일 재미있더라고요. 제가 새로운 말을 하고 있다는 것도 즐겁고, 배우고 있다는 것도 즐겁고요. 특히 <무릎팍 도사>에서 (강)호동이 형이 게스트들의 속마음을 끌어내시는 걸 보고 많은 생각을 했어요.” 언제가 됐든, 다가올 날에는 광희의 이름을 건 토크쇼를 만나게 될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