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하와 얼굴들, 거절하지 못할 제안을 하다

언젠가부터 장기하와 얼굴들은 ‘첨단’을 달리기 시작했다. ‘싸구려 커피’가 장안의 화제가 됐을 때는 첨단이 아닌 ‘공감’이었다. 2집 <장기하와 얼굴들>에서 “뭘 그렇게 놀래? 내가 한다면 하는 사람인거 몰라?”라고 노래한 시점부터 그들의 음악은 한국 록의 성장이며 과거였고, 미래였다. 그런 장기하와 얼굴들이 또 일을 냈다.

 

이번에도 질투 날 정도로 명민한 아이디어. 일명 ‘백지수표 프로젝트’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신곡 ‘좋다 말았네’를 인터넷 음악 플랫폼 현대카드뮤직에서 원하는 가격을 지불하고 들어볼 수 있다. 10원을 지불하든, 100만원을 바치든 소비자의 선택이다. 이 무모한 프로젝트는 장기하의 제안을 현대카드뮤직이 ‘쿨’하게 받아들이며 성사됐다. 음원가격이 현저히 낮은 작금에, 소비자가 원하는 가격으로 음악을 구입해보자는 취지다.

 

28일 여의도 현대카드 본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장기하는 “한국 음원시장이 문제가 많은 것은 기정사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뮤지션이 원하는 가격으로 음원을 판매하는 현대카드뮤직의 ‘음원프리마켓’에 공감했다”며 “우리는 한 번 더 생각을 뒤집어 음악을 사는 사람들이 가격을 매긴다면 그 가격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가 될 것이고, 그로 인해 음원시장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소비자가 원하는 가격으로 음원을 구입하는 방식은 지난 2007년 영국 록밴드 라디오헤드(Radiohead)가 정규 7집 < In Rainbows >로 시도한 적이 있다. 허나 장기하와 얼굴들의 시도는 라디오헤드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세계 최고 거물 밴드인 라디오헤드의 시도가 ‘가진 자의 여유’라면 음원 값이 헐값인 한국의 인디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시도는 그나마 진정성이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좋다 말았네’는 올 가을 발매 예정인 장기하와 얼굴들 3집에 실릴 예정이다. 장기하가 직접 연출과 시나리오를 맡은 뮤직비디오에서는 정성껏 만든 요리를 바닥으로 내팽개쳐진다. 장기하는 “지금 음원시장의 상황에서 뮤지션이 느끼는 감정이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한다. 바로 정성껏 만든 음악을 헐값에 파는 심정”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카드뮤직으로서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제안이 가히 ‘거절하지 못할 제안’이었다. 현대카드뮤직은 작년 5월부터 뮤지션이 가격을 결정하고 소비자가 구매하는 음원프리마켓을 시도했다. 이는 음원시장의 주변인인 인디뮤지션들로 하여금 새로운 음원 판매방식을 고민해보게 역할을 했다. 하지만 현대카드뮤직은 현대카드 회원들만 이용할 수 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25일부터 일반인들도 사용할 수 있는 ‘퍼블릭 오픈’이 시행됐다. 이를 알려야 할 시기에 장기하와 얼굴들의 제안이 들어온 것이다. 그야말로 ‘윈윈’이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백지수표 프로젝트’를 통해 음원시장에 대한 문제제기부터 차기작에 대한 홍보까지 동시에 진행할 수 있다. 이 얼마나 똑똑한가? 혹시 아나? 팬들이 장기하와 얼굴들의 신곡 ‘좋다 말았네’에 거금을 투척한다면 기대치 않게 돈방석에 오를 수도 있다. 장기하는 “우리가 총대를 메고 이런 시도를 해보면 흥하던 망하던 간에 분명히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라며 “우리는 자신이 있다. 언제나 자신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사진제공. 현대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