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 인디 컬렉션] 전기뱀장어, “노래에 대한 평가는 대중의 몫이죠”

본명이 아닌 예명으로 활동하는 뮤지션들은 무수하다. 예명을 쓰는 이유는 촌스런 이름을 감추려는 목적도 있지만 독특한 이름으로 팬들의 관심을 유도하려는 것이 더 큰 이유다. 지난해부터 승승장구하고 있는 독특한 이름의 루키 밴드가 있다. 바로 <전기뱀장어>. 범람하는 외래어가 아닌 우리말로도 강한 임팩트를 안겨주는 밴드의 이름부터 뭔가 찌릿함이 느껴진다. 밴드 이름에 들어있는 ‘전기’라는 단어 때문에 이들은 담백하고 감성적인 모던 록이 아닌 화려한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구사하는 밴드로 오해 받기도 한다. 팀명은 밴드 결성 초기에 악기수리를 위해 낙원상가에 들렀다가 장어구이를 파는 식당을 보고 영감을 얻은 리드보컬 황인경의 제안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독특한 팀 이름뿐 아니라 음악에 대한 기대감을 자극시키고 무한 상상력을 안겨주는 그로테스크한 음반 커버아트는 또 얼마나 근사한가! 차가운 물에 몸을 담구고 웅크린 상태로 하늘을 수놓은 빨간 케이블카들을 바라보는 쓸쓸한 청년의 뒷모습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도 희망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우리 시대 젊은이들의 자화상일 수도 있다. <전기뱀장어> 1집은 인디음악의 태동기인 1996년에 발표된 <언니네 이발관> 1집이 안겨준 신선한 감흥을 여지없이 복원시킨다. 젊음이 생동하는 발랄하고 친숙한 이들의 사운드는 일부에서 ‘청춘밴드’로 언급할 만큼 유쾌하기에 가벼운 음악으로 오해도 받는다. 하지만 시선을 잡아끄는 의미심장한 재킷 이미지가 말하듯 이들의 음악에는 우리 시대 젊은이들의 진솔한 일상과 고뇌를 담아낸 순정이 존재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전기뱀장어>는 지난해 엄청난 주목을 이끌어낸 최고의 루키밴드 중 하나다. 톡톡 튀는 가사와 수려한 멜로디는 “검정치마 이후 최고의 신인”이라는 평가를 이끌어냈다. 우선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진행한 신인 뮤지션 육성지원 프로젝트 ‘K-루키즈’ 연말결선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EBS ‘이달의 헬로루키’, KT&G ‘밴드 인큐베이팅 5기’, 네이버 ‘이 주의 발견’, 다음 뮤직 <이 달의 앨범>에도 잇따라 선정되었다. 수상을 하지는 못했지만 2013년 제10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도 최우수 모던 록 노래부문 후보에 올랐고 화제의 3인조 밴드 <버스커버스커>와 ‘올해의 신인상’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2009년 대학 음악동아리 출신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된 <전기뱀장어>는 김예슬(기타), 황인경(보컬/기타)을 중심으로 김나연(베이스)과 김민혁(드럼)으로 구성된 4인조 혼성 모던 록밴드다. 2011년 첫 EP<충전> 발표 후, 한 차례 멤버 교체의 진통을 겪었다. 이들이 지향하는 사운드는 심플하고 단순한 밴드 본연의 빈티지하고 화끈한 사운드로 명성이 높은 미국 개러지 밴드 <스트록스(The Strokes)>에 영향을 받았다. 리드 기타를 2대로 가동하는 시스템은 그 때문이다. 음악적 태도는 흥겨운 멜로디와 재치 넘치는 노랫말로 유명한 미국 펑크록 밴드 <위저(Weezer)>를 모델로 삼고 있다.

지난 주 토요일 홍대 앞 클럽 사운드홀릭시티에서는 ‘K-루키즈’에 선정된 6팀의 마지막 합동콘서트가 열렸다. 공연을 앞두고 <전기뱀장어> 멤버들과 만나 각자의 성장기 음악 이야기와 밴드 결성까지의 다사다난했던 비화를 디테일하게 들었다. 리더 김예슬은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나 춘천에서 성장했다. 그의 아버지 김규현은 젊은 시절 동양화와 서양화를 넘나든 화가출신이다. 어린 시절 그는 집에서 일상다반사로 벌어졌던 범상치 않은 아버지 후배들이 술 마시고 흥이 나면 노래까지 질펀하게 부르는 풍경에 익숙했다. “초등학교 시절 TV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을 보았는데 중학생이 되면서 인디밴드 <크라잉 넛>의 카세트 음반을 들으며 록 음악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어요. 2000년부터 고모와 삼촌에게 기본 코드를 배우고 독학으로 기타를 익혔습니다.” 서울로 상경해 대학에 입학한 그는 음악 동아리 ‘트러스’의 기타 잘 치는 신입생으로 소문났다. 신입생 환영회 때 선배의 추천으로 교내 캠퍼스 밴드 <1905>의 멤버로 전격적으로 발탁된 것은 그 때문이다.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나 음악과는 상관없는 환경에서 성장한 리드보컬 황인경은 어린 시절 음악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다. 중학생이 되면서 클래식 기타 반에서 기타를 치니 폼은 나는데 재미가 영 없었다. 어느 날, 서클 선배가 반주 악보를 들고 와 ‘기타코드를 잡고 연주하면 노래를 부를 수 있다’고 했다. 선배가 복사해준 악보를 가지고 집에 와 공중전화 카드를 잘라 피크를 만들어 신성우가 리드했던 3인조 밴드 <진이>의 ‘뭐야 이건’을 쳐보니 너무 재미있었다. 고등학생 때는 통기타 서클에서 활동했다. “통기타 서클 리더로 활동했지만 늘 밴드 동아리가 부러웠어요. 그땐 밴드를 한다는 건 특별한 재능이나 훈련 과정을 거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다른 차원일 것이라 너무 어렵게 생각했습니다.”

 

당시 학교가 끝나면 동네 오락실 안에 있는 조그만 동전 노래방 부스를 전용스튜디오로 삼아 1곡에 200원을 내고 노래 연습을 했단다. “시설이 열악해 노래마다 점수가 책정되어 있어 노래 점수는 뻔했죠. mp3를 가져가 내 노래를 녹음까지 했는데 가요, 팝에다 하드록까지 다양하게 불렀습니다.” 그는 재수시절에 인디밴드 <언니네 이발관>은 물론이고 <라디오헤드>, <너바나> 같은 외국의 팝과 밴드음악을 본격적으로 들기 시작했다. 대학에 들어가 동전 노래방에서 갈고 닦은 실력으로 교내 밴드 <1905>의 오디션에 도전했다. “26:1의 치열한 보컬파트 경쟁을 뚫고 선발되었는데 2학년까지 활동했습니다. 여러 가지 노래들 카피하며 활동하던 중 기타 치던 멤버가 탈퇴했을 때 다른 동아리에서 기타 잘 친다고 소문난 김예슬이 낙하산으로 들어와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웃음).”

 

이에 대해 김예슬은 “처음 황인경과 저는 전혀 친하지 않았고 거리가 꽤 먼 사이었어요. 그러다 2007년 황인경이 입대를 했고 저는 카피 곡을 연주하다 홍대 쪽으로 나와 막 생겨난 클럽 스팟에서 5인조 이모코어 하드코어 펑크록 접목밴드 <마리에 드릴러>멤버로 활동을 시작했죠. 그때 허리까지 머리를 치렁치렁 길렀는데 한 곡 연주하는데 점프를 다섯 번이나 했을 정도로 과격했어요(웃음)”라고 말한다. 이런 저런 멤버들의 내부 사정으로 1년 반 동안 공연만 5,6번한 후 밴드가 망해버렸다. 자작곡을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 그는 동아리 친구 김나연과 새로운 밴드를 결성하게 된다.

인디음악의 본산인 홍대 앞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서 태어난 유일한 여성 멤버인 베이스 김나연은 7세 때부터 피아노를 쳤다. “초등학교 2,3학년 때 팝송과 가곡을 좋아한 아빠가 악보를 사와 치라고 해 노래를 부르시곤 했어요. 당시 저는 비틀즈 밴드음악도 피아노 반주곡인 줄 알았어요. 고등학생 돼서야 원곡이 기타 음악이란 걸 알게 되었죠. 한동안 악기를 연주할 기회가 없다가 대학에 들어갔는데 한 선배가 술 취한 저를 음악동아리 ‘트러스’로 데려가면서 다시 하게 되었어요. 피아노를 쳤기에 처음엔 키보드를 맡았는데 기타가 재미있어 기타하고 그렇게 돌고 돌다 결국 베이스를 치게 되었네요.”

2009년 여름 음악동아리에서 만난 김예슬과 김나연은 다른 여자보컬과 함께 3인조 혼성밴드 <쿨캣>을 결성했다. 자작곡 만들어 홍대 쪽 클럽 리디안과 FF에서 1년 반 정도 활동하다 여자보컬이 외국으로 교환학생으로 떠나면서 밴드가 깨졌다. 멤버 충원이 필요했다. 그때 황인경은 군 전역을 하고 광주에 있었다. 김예슬은 보컬겸 기타를 치겠다는 그에게 “서울에 와서 오디션 보라”며 지정곡과 자유곡을 줬다. 김나연도 베이스와 더불어 리드보컬을 하겠다고 해 갑자기 황인경과 라이벌 구도가 형성되었다. 심사를 본 김예슬은 “노래는 고만고만한데 자작곡이 있냐고 물었는데 나연은 준비된 것 없었다. 그래서 황인경을 보컬로 선택했다”고 말한다. 당시는 밴드의 리더도 없었고 밴드문화에 익숙하지 않아 갈등이 생겨도 해결할 방법을 몰랐던 시절. 지금은 공연 전에 머리까지 다듬어주는 절친이지만(물론 김나연은 모든 멤버의 머리 손질을 직접해준다) 당시 기분이 상한 김나연과 김예슬은 6개월 동안 연락도 하지 않고 멀어졌다. 그래서 카이스트에 다녔던 여성 드러머 강현정과 음악동아리 친구 임지혁을 영입해 만든 밴드가 바로 <전기뱀장어>다. 임시로 구성된 라인업으로 2010년 데뷔 EP를 발표했다. 하지만 전문적인 음악활동에 관심이 없었던 두 영입멤버들이 곧 나가면서 창단 멤버인 베이스 김나연이 2번째 EP부터 다시 참여하게 되었다.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 생후 6개월 만에 서울로 올라온 드럼 김민혁의 집안은 그 흔한 노래방에도 가지 않는 음악과 백촌도 넘는 분위기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서태지 음악에 반해 아버지를 졸라 휴대용 카세트플레이어 ‘마이마이’를 샀다. 중학생 때 팝송클럽에서 비틀즈, 카펜터즈 등 팝송을 듣다 밀수로 들어온 비주얼 록 밴드 X-JAPAN, GLAY 등 일본 음악을 많이 들었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직접 연주를 해보고 싶은 마음에 악기학원에 갔다. 악기 살 돈이 없어 ‘스틱만 있으면 된다’는 말에 드럼을 배웠다. 대학에서 밴드 동아리 ‘소울즈’에 가입한 그는 메탈, 메가데스 등 빡 센 음악을 익혔다.

 

군 제대하고 2005년에 그는 광주에서 4인조 인디밴드 <레모니 마카로니(살랑)>를 결성해 2,3년 정도 활동 했다. 광주의 거의 유일한 모던 록밴드였다. 당시 광주 시내에 라이브 클럽은 곡스, 네버마인드 두 곳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넬, 델리스파이스, 언니네 이발관이 내려와 함께한 공연을 보고 음악을 제대로 해볼 생각에 무작정 상경했다. 그게 2008년. 경기도 일산 주엽동에서 드럼 레슨을 하고 악기도 팔면서 한동안 홍대 쪽을 오가며 지냈다. 그러다 2011년 평소 알고 지내던 친한 동생의 룸메이트인 김나연을 통해 <전기뱀장어>가 드러머를 구한다는 말을 듣고 오디션을 보고 5번째 드러머로 2번째 EP에 합류했다.

 

일상에서 느끼는 열등감과 소소한 기쁨 같은 감정들을 담은 솔직한 가사로 인해 전기뱀장어 멤버들을 ‘루저’라고 표현한 기사들이 제법 된다. 과연 그럴까? 이들 대부분은 명문대학을 나왔지만 학벌로 인한 후광이나 선입견보다는 ‘음악’으로 평가받고 싶은 속 깊고 스마트한 청년들이다. 전기뱀장어의 음악은 트렌디 사운드와는 거리가 있다. 한방에 현혹되는 음악은 절대로 아니다. 화려한 기타 솔로도, 뛰어난 가창력도 찾기 힘든 그들의 음악은 전자음이나 스트링 세션 등 인위적인 사운드를 배제하고 소박한 밴드 사운드로 담백한 매력을 발산하는 스타일이다. 2011년 첫 번째 EP<충전>과 2012년 3월, 두 번째 EP<최신유행>을 발표했다. EP들은 밴드의 존재와 정체성을 알렸지만 음악적 구성은 다소 산만했다. 그래서 이들이 처음 등장했을 때, 지금과 같은 성과를 예상한 대중은 드물었지만 중독성 강한 웰메이드 음악은 서서히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왼쪽부터) 데뷔EP 2011년 미러볼뮤직,  2번째 EP 최신유행 2012년 미러볼뮤직, 정규 1집 최고의 연예 2012년 사운드홀릭

2012년 10월에 드디어 정규 1집을 발표했다. 2번째 EP에 수록되어 존재감을 드높인 ‘송곳니’는 타이틀곡이다. 자체 제작한 두 장의 EP에 비해 정규 1집은 사운드의 질감과 구성이 한결 매끄러워졌다. 소속 레이블인 사운드홀릭의 대표 밴드인 <자우림>의 기타리스트 김선균이 프로듀싱을, 베이시스트 김진만이 믹싱에 참여해 설익은 이들의 음악에 연륜이라는 무게감을 덧칠했기 때문이다. 정규앨범은 세련된 일렉트로닉 사운드나 화려한 편곡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간결한 밴드 사운드로 집약했다.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우직하고 스트레이트한 사운드는 재치 넘치는 가사와 근사하게 어우러졌다. 앨범 타이틀은 ‘최고의 연애’다.

 

한국대중음악에서 남녀상열지사는 관심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요즘 유행하는 대중가요의 가사들은 내가 중심이 된 찌질한 일상을 다루는 노래들로 트렌드를 이룬다. 이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은 이들의 음악은 동년배들에겐 유쾌한 감성으로 30대에게는 질풍노도의 시절을 떠올리는 가벼운 잡담과도 같다. ‘최고의 연애’는 과연 어떤 연애일까? 애틋하고 지고지순한 사랑을 ‘최고의 연애’로 규정한 것은 인스턴트식 사랑이 넘쳐나는 가벼운 시대적 정서를 뒤엎는 일종의 전복이다. 또한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기에 살아갈 동력을 제공하는 희망의 패러독스가 될 수도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창작곡에 대한 설명이나 소개에 인색하다. 노래에 대한 평가는 대중의 몫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엄청난 성과를 얻어낸 1집이 세상에 나온 지 6개월이 지났다. 활발한 공연활동 중에도 2집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과연 2집은 어떻게 구상될까? 1집의 음악이 클럽에서 공연활동을 하면서 되는대로 나오는 대로 만든 자연스런 느낌이 강했다면 차기작은 그동안 배운 것들도 있고 요령도 생겼기에 1집보다는 좀 더 성숙한 사운드가 될 것 같다. 이들은 김예슬과 황인경이 노래 소스를 만들어 오면 합주하면서 논의하는 과정을 통해 곡을 완성시키는 스타일이다. 의견조율 과정에 갈등은 있지만 부딪치면서 새로운 것들도 나온다고 한다. 1집은 대학 졸업 즈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한 상태에서 만든 곡이 대부분이다. 2집은 1집 이후에 변화한 모든 것처럼 생각이나 감정이 다를 수밖에 없다. 궁상스런 젊은 세대의 일상을 진심을 담아내 공감대를 형성한 이들의 음악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되고 진보되어 갈 것인지 궁금하다.

전기뱀장어
1기 김예슬(기타) 1987년 6월 18일생 강원도 홍천 출생
황인경(보컬/기타) 1985년 5월 14일생 전남 광주 출생
강현정(드럼)
임지혁(베이스)

2기 김예슬 황인경
김나연(베이스) 1987년 9월 11일생 서울 출생
김민혁(드럼) 1982년 2월 25일생 전남 광주 출생

DISCOGRAPHY
충전 [EP] 2011.05
최신유행 [EP] 2012.03
최고의연예[정규1집] 2012.10
경력 및 수상
2011년 쌈지사운드 페스티발-숨은고수(달빛고수) 선정
2012년 4월 1집 네이버 오늘의 뮤직 <이 주의 발견>, 다음 뮤직 <이 달의 앨범> 선정
2012년 6월 다음 뮤직 이 달의 인디유망주 선정
2012년 한국콘텐츠진흥원 신인뮤지션 육성지원 프로젝트 ‘K-루키즈’ 연말결선 우승
2013년 제 10회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신인, 최우수 모던 록 노래부문 노미네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