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초점] 트렌드가 된 ‘을의 반란’

[텐아시아=현지민 기자]
MBC '자체발광 오피스' 공식 포스터 / 사진제공=MBC

MBC ‘자체발광 오피스’ 공식 포스터 / 사진제공=MBC

슬프게도 인간관계는 ‘갑을(甲乙)관계’가 된지 오래다. 건물주는 갑이고 세입자는 을이다. 월급을 주는 사장은 갑이고 직장인은 을이다. 연애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을이다. 그렇다 보니 ‘을의 반란’만큼 통쾌한 소재가 없다.

지난 15일 MBC ‘자체발광 오피스’(극본 정회현, 연출 정지인 박상훈)이 첫 방송됐다. 극은 시한부라는 사실을 알게 된 계약직 신입사원 은호원(고아성)이 할 말 다 하며 ‘슈퍼 을’로 거듭나는 이야기를 그린다.

지난 방송에서 취업준비생인 은호원은 면접에서 100번이나 떨어져 자괴감에 빠졌다. 특히 까칠한 면접관 서우진(하석진)에게 온갖 독설을 받았고, 한강 다리에서 발이 미끄러져 죽을 고비까지 맞닥뜨렸다. 게다가 그는 의사들이 시한부 얘기를 하는 걸 들었다. 장강호(이호원)·도기택(이동휘) 역시 이 말을 들었고, 세 사람은 자신이 시한부일 확률 ⅓을 안고 병원을 탈출했다. 우여곡절 끝에 세 사람은 계약직으로 발탁됐다. 은호원은 진상고객에게도 자신의 사연을 털어 놓으며 의외의 활약을 했지만, 이후 자신이 진짜 시한부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충격에 빠졌다.

기존의 고정 시청층을 가진 KBS2 ‘김과장’과 SBS ‘사임당, 빛의 일기’에 밀려 3.8%로 미미하게 막을 연 ‘자체발광 오피스’지만, 수치와 별개로 취준생들의 공감을 모아 앞으로의 전개를 기대케했다. 특히 시한부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은호원의 ‘막 나가는’ 회사생활이 웃음과 통쾌함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단 2회 만에 월세 현실을 꼬집거나 압박면접의 현실을 담아낸 대사들이 시청자들의 울분 섞인 공감을 사기도 했다.

KBS2 '김과장' 포스터 / 사진제공=로고스필름

KBS2 ‘김과장’ 포스터 / 사진제공=로고스필름

‘자체발광 오피스’에 앞서 을의 반란을 그리고 있는 KBS2 ‘김과장’(극본 박재범, 연출 이재훈 최윤석) 역시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삥땅 전문가’ 김성룡(남궁민)이 큰 한 탕을 위해 TQ기업에 필사적으로 입사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부정부패가 만연한 회사를 살리게 되는 오피스 코미디 드라마다.

지난 1월 첫 방송에서 7.8% 시청률을 기록하며 순조로운 출발을 알렸던 ‘김과장’은 3회 만에 10%를 돌파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이후 연일 자체최고시청률을 경신하고 있다. 최근 방송된 16회는 17.1%로, 지난 최고시청률 18.4%보다는 하락한 수치지만 마의 20%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자체발광 오피스’와 ‘김과장’은 오피스물을 표방한다. 오피스물은 차별화되지 않는 의상과 단조로운 실내 분위기들이 핸디캡으로 작용할 수 있는 장르다. 두 드라마는 그 간극을 ‘웃음’과 ‘공감’, ‘통쾌함’으로 채운다.

특히 종영까지 단 4회만을 남겨둔 ‘김과장’에는 소위 ‘고구마 전개’를 찾아볼 수가 없다. 주인공 김성룡(남궁민)은 자신을 덮치는 위기도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빠져나가며 속 시원한 전개의 중심에 섰다. 카운터파트 서율(이준호)과는 맞대결을 넘어 묘한 브로맨스까지 형성하며 웃음을 자아낸다.

‘을의 반란’은 실상 판타지다. 환자에게 시한부 선고를 내린 의사가 사실은 한 회사의 오너고, 환자를 회사에 채용하는 것은 말 그대로 극적인 요소다. 현실에서 재무이사에게 복수를 선언하는 과장도 많지 않다. 아무리 사이가 안 좋아도 타 부서원들과 잡채를 던지며 싸울 일도 흔하지 않다. 익숙한 배경에서 펼쳐지는 판타지적 전개는 더욱 통쾌하게 작용한다. 여기에 입체감 넘치는 캐릭터들의 향연은 극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마냥 가볍진 않다. 인물들의 뼈있는 대사는 시청자들의 가려운 곳을 긁으며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기러기 아빠의 한탄이나 누구보다 빠르게 달리려다 소중한 걸 놓치는 인물들의 모습 등은 공감과 위로의 포인트가 된다.  소시민으로 설명되는 을(乙)들의 반란이 더욱 반가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지민 기자 hhyun418@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