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미,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그녀 (인터뷰)

[텐아시아=김하진 기자]
'넌센스2'의 배우 겸 연출가 박해미 /

‘넌센스2’의 배우 겸 연출가 박해미 /

1984년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로 데뷔한 박해미는 성악 전공자인 만큼 남다른 울림으로 단숨에 주목받았다. 이후 다양한 뮤지컬 작품을 통해 입지를 굳혔고, 드라마라는 다소 생소한 영역까지 발을 넓혀 인기도 얻었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극단을 꾸렸고, 연출에도 이름을 올렸다. 무대 아래로 내려온 그는 거기서만 느낄 수 있는 짜릿함을 맛봤다. 그 희열을 잊을 수 없었고, 무엇보다 청소년을 위한 공연에서 더 큰 보람을 알았다.

박해미가 또 한번 ‘넌센스2’의 연출자로 나섰다. 뿐만 아니라 배우로도 무대에 오른다. 고된 여정의 연속이었지만 신나게 웃으며 극장을 빠져나가는 관객들의 표정을 보면, 모든 걸 잊게 된다. 그것이 바로 배우가 아닌 연출가 박해미의 보람이자 목표다.

10. 연출에 배우까지, 정말 힘든 길을 택했다.(웃음)
박해미 : 사실 처음엔 연출만 생각하고 있었지, 배우로 무대에 오를 생각은 없었는데 설득 당했다.(웃음) 게다가 원 캐스트라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나와 같은 역의 더블 캐스트를 찾는 것이 어려웠다. 나보다 다른 배역의 연기자를 찾는 것이 더 바빴다. 열심히 공연을 준비했지만, 결과적으로 객석에서 무대를 볼 수가 없어서 아쉬울 따름이다.

10. 정말 그렇겠다. 그정도면, 무대 위에서도 배우와 연출의 분리가 힘들지 않나.
박해미 : 무대 위에서도 다른 배우들 동선을 보게 된다.(웃음) 조명이 세다거나 음향의 문제가 있어도 무대 위에 있으니 바로 수정할 수가 없지 않나. 내 눈에 보이는 것만 파악하는 식이지.

10. ‘넌센스’와 유독 인연이 깊다.
박해미 : 많은 뮤지컬 작품들이 있지만, 정말 ‘넌센스’에는 매력을 못 느꼈다.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던 작품 중 하나라고 할까.(웃음) 전혀 끌리지 않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내게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준 작품이다. 그게 참 이상하지, 뭔가의 계기를 마련해주는 거다. 정말 희한하다. 매력을 느끼지 못한 작품이었지만, 지금은 배우를 하면서 연출까지 한다니 말이다.

10. 연출로서의 무게는 막중했을 것 같다.
박해미 : 내적인 갈등은 없었다. 연출이 하고 싶고, 하고자 하는 얘기에 대해서는 누구도 반론을 하지 않고 존중해줬다. 내가 어떤 그림을 만들겠다고 나서면 구성원들도 따라와 줬다. 이번엔 그 무엇보다 재미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렇게 완성했다.

10. 배우의 입장을 잘 알고 있는 연출이다. 때론 배우에게 쓴소리를 해야 할 때도 있지 않나.
박해미 : 연출로만 바라봤으면 무대에서 만나지 않으니 독설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호흡을 맞춰야 하지 않나. 그 배우가 내 말들이 각인돼 있으면 무대 위에서 어떻게든 그 마음이 표정으로 나오기 마련이다. 내가 할 일은 그저 배우들이 스스로 모르고 있었던 자신의 재능과 역량을 뽑아내는 거다.

10. 독설을 내뿜는 호랑이 연출가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박해미 : 많이들 그렇게 말하는데(웃음) 사실 은근히 여리다. 어렸을 때 공연을 하면서 연출가의 인격 모독에 가까운 독설을 많이 들었다. 거기에 대한 반항심이 굉장했다.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짐 싸 들고 나간 게 공연계에 소문이 퍼지기도 했고.(웃음) 그 기분과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배우들에게 그러고 싶지 않다. 피해 의식을 주고 싶지 않아서 오히려 더 다독이고, ‘잘 하고 있다’고 말해준다.

10. 일찌감치 연출로서의 꿈이 있었나 보다.
박해미 : 옛날부터 갖고 있었다. 1995년 극단을 만들 때는 배우들 뒤에서 코러스를 하는, 재능 있는 친구들을 모아보자는 취지로 처음 시작했다. 하지만 돈이 되지 않았고 취지는 좋았으나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열심히 해놓고 욕을 먹는 상황이 되니까, 이렇게는 안되겠다 싶더라. 연출보다는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자고 마음먹고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여러 일들이 복잡해지니 힘들기도 하고, 결국 포기했다. 질려버린 것 같다. 무대에 대한 염증이 순간적으로 생겼을 때 ‘넌센스’가 들어왔다. 이후 ‘맘마미아’를 하게 되고 유명해졌다. 그리고 이번엔 ‘넌센스’의 연출로 무대에 오르게 된 거다. 그래서 내게 ‘넌센스’는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준 특별한 작품이다.

10. 연출을 하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박해미 : 옛날부터 드러나지 않는 리더가 좋았다. 앞장서서 나서지 않아도 알아서 내 뜻을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생기는, 그런 것 말이다. 조용하면서도 통솔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어서 예술적, 음악적으론 리드를 했다. 배우로 이름을 알리게 돼 연출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시기와 질투도 많은데 워낙 옛날부터 연출에 대한 꿈이 컸다.

10.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었네. 연출의 자리가 외롭지는 않나.
박해미 : 외로움을 즐긴다.(웃음) 사실 그렇게 외로움을 타지 않는 성격이기도 하고. 순간적인 압박은 있지만 그때뿐이지, 이후엔 확 떨치고 잊어버린다. 고민할 때는 집에서 혼자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데, 인생 뭐 별거 있나. 지나고 나면 잊게 된다.(웃음)

10. 연출로 가장 짜릿할 때는 언제인가.
박해미 : 극단 활동을 하면서 청소년 교육에 관심을 많이 가졌다. 학생들을 상대로 하는 작품도 많이 올렸는데,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까 참 행복하더라. 그때 가장 기뻤다. 객석에서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내가 만든 뮤지컬을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좋아하는구나’란 자부심도 생겼다.

10. 그렇다면 연출과 배우의 다른 점은 뭘까.
박해미 : 연출로서 작품은 내가 잉태한 내 새끼다. 그 환희는 애 엄마가 느끼는 감정과 같다. 반면 배우 박혜미는 나 하나의 완성을 제대로, 또 책임감 있게 해내는 것 뿐이다. 그것 외에는 없다. 연출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 몫인 거고.

10. 연출이란 타이틀을 안고 배우로 무대에 오르는 ‘넌센스2’의 경우엔 다른 부분이 많겠다.
박해미 : 배우로만 참여하는 작품에선 내 것만 하면 된다. 아무 생각 없이 말이다. 그런데 이번엔 다르다. 호흡하는 배우의 동선이 잘못됐으면 손을 잡아끌기도 하고 호흡이 늘어진다 싶으면 먼저 대사를 치기도 한다. 조명, 음향을 살피면서 계속 긴장할 수밖에 없다. 이 어마어마한 훈련을 했다.(웃음)

10. 이번 경험이 다음 작품에서 배우든, 연출이든 도움이 많이 되겠다.
박해미 : 도움이 될 거다. 경험을 통한 노하우는 있겠지. 다만 무대에 올렸을 때는 온전히 스태프를 믿는다. 우리 모두 믿고 가는 거다.

10. 늘 그렇지만 이번엔 특히 자기 관리도 철저하게 해야 했겠다.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상황인데.
박해미 : 초반에는 힘들었다. 목 상태가 잠을 못 자니까 바로 드러나더라. 정리하는 일주일 동안 컨디션 회복에 집중했고, 내가 쓰러지면 열심히 만든 것이 다 헛수고이지 않나. 큰일 나겠다 싶어서 정신을 차리고 목 관리를 했다.

10. 스트레스를 푸는 노하우가 있나.
박해미 : 잠을 잔다. 딱히 특별한 건 없다. 자는 것이 가장 좋은 스트레스 풀기이다. 이번에는 작품을 만들면서 남편에게 조언을 구했고, 아들도 뮤지컬을 전공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박해미 /

박해미 /

10. 연출로 가장 벅차고 뿌듯한 순간은 역시 관객들이겠다.
박해미 : 관객들이 좋아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두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 줄 모르겠다고 말해주시고, 재미있게 보고 나가셨으면 그걸로 됐다. 처음 만들 때부터 그 외에 다른 욕심은 없었다. 재미있었나요? 그랬다면, 이뤄진 거다.

10. 이렇게 열심히 만든 작품을 객석에서 볼 수 없다니.(웃음)
박해미 : 그러게 말이다. 얼마나 아쉬운지. 온전하게 연출가로만 있었으면 좋겠다.

10. ‘넌센스2’의 메리 레지나 역을 맡은 배우로서는 어땠나.
박해미 : 배우로서는 다른 배우들이 신나게 놀 수 있게 좋은 배경이 되자라는 마음이었다. 잘 아우르자는 마음이 컸지, 더 돋보여야지라는 배우로서의 욕심은 없었다.

10. 이 작품이 특별할 뿐, 현재도 배우로서의 욕심은 있는 거겠지.
박해미 : 물론이다. 배우로서 박해미는 과거 굉장히 게을렀다. 무대를 신성시하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젊었을 땐 사명의식도 없었고 마치 취미 활동처럼 했다. 즐기면서 여유롭게 말이다. 모두가 ‘쟨 뭐지?’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지. 그런데 나이가 들고 마흔 가까이 되면서 천직이란 생각이 들었다. 늦게 철이 들어서.(웃음)

10. 변하게 된 계기나 배경이 있었을까.
박해미 : 얼마 안 됐다. 뭐든 적당했던 인생이었는데, 나이가 들고 보는 눈이 넓어지면서 생각이 달라진 거다. 객석에서 나를 지지했던 관객들이 준비 안된 내 모습에 얼마나 실망을 하셨겠나. 죄송하고, 그런 미안함이 마음속에 항상 있다.

10. 올해의 계획, 또 목표가 있다면?
박해미 : 드라마 제안도 많이 받고 있다. 이미지 때문인지 갈등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 대부분 센 역할만 들어온다.(웃음) 올해는 뭔가 하나를 고를 것 같고, 또 공연으로 중국 시장을 제패하는 것이 목표이다. 아직 걸음마 단계이지만 뮤지컬 장르를 만드는데 있어서 대모가 되고 싶다. 좋은 기회, 계기가 딱 맞아떨어지면 한 번은 일을 저질러 볼 거다.(웃음)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