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라이더’ 이주영 감독 “이병헌은 근사한 무기, 안소희는 열정 소녀” (인터뷰)

[텐아시아=현지민 기자]
이주영 감독,싱글라이더

영화 ‘싱글라이더’ 이주영 감독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누군가에게 내 얘기를 한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지 몰랐어요. 부끄러워요. 첫 작품이다 보니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투영된 것 같아요. 일기장을 오픈한 느낌이에요.”

이주영 감독은 2012년 미쟝센 단편 영화제를 통해 영화계에 첫발을 내디딘 신인감독이다. 그가 첫 장편영화 ‘싱글라이더’로 데뷔했다. 지난달 22일 개봉한 ‘싱글라이더’에는 그가 그간 하고 싶었던 얘기들을 담았다. 극은 증권회사 지점장으로 안정된 삶을 살던 가장 재훈(이병헌)이 어느 날 부실채권 사건 이후 호주로 사라지며 하나씩 밝혀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극에는 ‘스포주의보’가 내려질 만큼 거대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 독특한 점은, 작품에 출연한 배우들이 입을 모아 ‘반전이 중요한 영화가 아니다’라고 외쳤다는 것. 관객들은 극의 비밀을 초반에 발견할 수도 있고 중반에 발견할 수도 있다. 혹은 후반에 이르러서야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충격을 느낄지 모른다. 어디서든 비밀을 발견할 수 있도록 증거를 흩뿌린 건 이 감독의 의도였다. 비밀은 하나의 요소일 뿐이고 그보다 더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

“반전을 위한 영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예민해질 수밖에 없더라고요. 관객들이 작품에 흥미를 갖게 하는 지점이니까요. 고정적인 메시지를 담고자 한 건 아니에요. 단지 사람들이 무기력하고 좌절을 일으키는 현실 속에서도 자신을 존중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영화 '싱글라이더' 이병헌 스틸컷 /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

영화 ‘싱글라이더’ 이병헌 스틸컷 /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

극은 ‘믿고 보는 배우’ 이병헌의 감정선을 중심으로 잔잔하면서도 강렬하게 흘러간다. 여백이 많아 다양한 생각과 해석을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는 영화에 대한 이 감독의 생각변화에서 비롯됐다. 광고를 연출했던 이 감독은 화려하고 근사한 것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 그가 대학원에서 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고, 이창동 감독을 만났다. 이창동 감독은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밀양’ ‘시’ 등을 통해 인간에 대한 깊은 고찰을 그려왔다.

“과거엔 세련된 걸 좋아했는데, 이창동 선생님과 얘기를 하며 인간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큰 전환점이 됐죠. 흔히 대작들이 사회의 부조리나 시스템의 오류를 지적하는데 나는 그런 사회적 문제들이 개인에게 끼치는 영향에 집중을 하고 싶었어요.”

이번 작품을 위해 약 8개월 동안 이창동 감독과 시나리오 작업을 했던 이 감독은 “선생님은 시사회 때 일이 있어서 못 왔다. 직접 돈을 내고 영화를 보겠다고 했다. 유료관객 한명 확보다”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무엇보다 ‘싱글라이더’는 이병헌이 감성연기로 돌아왔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이병헌은 극 중 기러기 아빠 재훈을 연기한다. 그는 점차 소중한 것을 깨달으며 감정을 고조시켜 관객의 몰입을 높인다. 특히 극 말미 입을 틀어막고 오열하는 모습은 관객들을 먹먹케 하기도. 이병헌은 ‘싱글라이더’에 대해 “오랫동안 기다렸던 작품”이라며 애정을 드러낸 바 있다.

“상업영화를 제작하는 곳에서 가장 처음 ‘싱글라이더’를 지지해준 사람이 이병헌 배우예요.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작품에 출연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시나리오의 가치가 1,000원이었다면 이병헌 배우가 출연한다고 말한 순간 150,000원이 된 거죠. 전 너무나 근사한 무기를 장착한 기분이었어요. 처음 지지의 뜻을 밝혔을 때부터 최근 뒤풀이 때까지 계속해서 영화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더라고요. 한결 같은 모습에 반했어요.”

영화 '싱글라이더' 스틸컷 /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

영화 ‘싱글라이더’ 스틸컷 /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

반면 이 감독은 안소희에게 미안함을 표했다. 안소희는 극 중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를 와 악착같이 돈을 버는 청춘 지나를 연기했다. 이 감독이 시나리오 단계부터 안소희를 염두하고 작품을 썼던 만큼, 안소희는 과거 자신의 상황과 닮아있는 캐릭터를 연기하며 상황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그간 안소희를 꾸준히 따라다녔던 ‘연기력 논란’이라는 수식어가 사라졌다는 평가다.

“소희는 보편적인 학생들의 삶을 살지 않았잖아요. 그런 데서 오는 고단함이 느껴졌어요. 지나라는 캐릭터를 누구보다 잘 소화할 거라고 믿었죠.”

“소희에겐 미안한 게 많아요. 소희는 배우로 완전히 자리를 잡은 친구가 아니라 주변의 평가적인 시선을 받잖아요. 처음 그를 캐스팅 했을 때, 충분히 대화를 하며 캐릭터를 만들어나가고 싶었어요. 하지만 현장에선 그럴 시간이 없었어요. 단 한 커트 안에 끝내야 하는 장면도 많았어요. 소희에게 ‘미안한데, 5분 후에 길 통제가 풀린다더라’라고 말하면 소희가 ‘할 수 없죠’라며 열악한 상황에서 열심히 연기했어요. 이병헌 배우에게 절대 뒤지지 않을 정도로 잘 해줬어요.”

그렇게 완성된 영화는 현재 30만 관객을 돌파하며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하고 있다. 승승장구는 아니지만 영화가 전하는 이야기를 생각하면 꽤 의미 있는 성적이다.

“마케팅 팀에서 싫어할 말일지 모르겠지만, 심야에 혼자서 영화를 보는 걸 추천해요. 훌륭한 영화로 기억되고자 하는 욕심은 없어요. 2017년 2월을 생각하면 함께 떠오르는 잔잔한 영화였으면 좋겠어요.”

현지민 기자 hhyun418@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