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예지, 가슴이 뛴다(인터뷰①)

[텐아시아=윤준필 기자]
이예지,인터뷰

배우 이예지가 서울 중구 청파로 한경텐아시아 루이비스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선한 눈빛과 달리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조리있는 말솜씨가 인상적이었다.  한국무용을 10년 넘게 배우고 미국 뉴욕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신인 배우 이예지는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을 하고 싶어 연기에 도전했다. 많은 사람들이 겉으로 보여지는 ‘스펙’에 관심을 가지며 “왜 힘든 고생을 사서 하냐”고 할 때도 그는 “스펙을 살린다고 하더라도 처음부터 꽃길을 걷는 것이 아니다”라며 “무엇을 해도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똑같이 힘들다면 가슴을 뛰게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라고 단단한 각오를 밝혔다. 이제 이예지는 대중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배우가 되려한다. 그 꿈을 위해 그는 오늘도 보조출연과 단역을 마다하지 않고 묵묵히 앞을 향해 나가고 있다. 벌써부터 이예지의 가슴은 뜨겁게 뛰고 있다.

10. 어린 시절 무용을 배우고, 뉴욕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할 정도면 부모님의 기대가 매우 컸을 것 같다. 반대로 처음 배우가 되겠다고 부모님께 말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이예지: 당연히 반대도 심했고, 고민도 많았다. 외국계 회사에서 입사 제안도 있었는데 행복하지가 않았다. 계속 배우들의 인터뷰를 찾아보고, 연기만 생각하게 되더라. 부모님 몰래 휴학하고 연기학원도 다녔다. 마지막으로 갔던 연기 학원 선생님이 2주 동안 날 지켜보시더니 공부 포기하고 연기해도 괜찮겠다고 응원해주셨다. 그래서 미국 돌아가기 하루 전에 안 가겠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는데 집이 발칵 뒤집혔다.(웃음) 아버지 피해서 연습실에서 자고 그랬다.

10. 연기자가 되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있을까?
이예지: 한국무용을 13년 가까이 하다가 17세 되던 해 여름 유학을 갔다. 홀로 외국에 있어서 그런 걸까. 다른 사람들을 위로해주는 사람이 되어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연기를 함으로써 비슷한 캐릭터를 가진 사람이 위로받을 수 있고,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를 통해 치유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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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지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10. 그런 생각을 하는데 영향을 미친 결정적 작품이 궁금하다.
이예지: 한국무용을 하다가 미국으로 유학 간 이유가 한국무용은 상대적으로 현대무용보다 길이 좁기 때문이었다. 발레전공자는 외국 스카우트 되는 등 문이 넓은 편인데 한국무용은 그렇지 않다. 나도 넓은 세계에 한국을 알리고 싶다는 생각에 유학을 결심했다. 그런데 타지·에서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정말 힘들었다. 가서 6개월 정도 지났을 때쯤, 드라마 ‘황진이’ 그걸 보며 엉엉 울었다. 그때부터 한국무용이 아닌 배우의 꿈을 품기 시작했다.

10. 배우가 되겠다는 말을 부모님께 언제, 어떻게 말했나?
이예지: 처음에는 떠보듯이 얘기했다. 그랬더니 “아빠 친구 누구네 딸도 가수 한다고 했다더라”며 부정적 뉘앙스로 말씀하셨다.(웃음) 어려서 헛바람이 들었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한 2~3년 지나서 내가 진지하게 얘기하니까 우선 학교부터 졸업하고 오면 그때 가서 생각해보자고 하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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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지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10. 미국에 돌아가 공부를 하면서도 한편으론 마음이 꽤 심란했겠다.
이예지: 연기학원을 같이 다니던 언니가 TV에 나오는 거다. 괜히 속상했다.(웃음) 경제학을 전공했는데 내가 하고 싶은 공부가 아니니까 흥미가 생기지 않더라. 그때의 감정들이 배우를 하면서 다 도움이 될 거라 믿는다.

10. 졸업 이후에 본격적으로 연기를 배우기 시작한 건가?
이예지: 한국에 돌아왔는데, 오디션에 어떻게 지원하는지 몰라 시간을 많이 허비했다. 정말 막막했다. 그러다 어떤 아나운서 학원에서 연기자 오디션도 같이 본다는 말을 들었다. 그쪽으로 대학생 시절 미국 한인방송국에서 인턴 경험도 있으니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나운서를 준비했다.

10. 언제쯤 배우의 꿈을 인정받게 됐나?
이예지: 아나운서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정말 수없이 연습해 실력을 키웠다. 내가 좀 근성이 있다.(웃음) 주변에서 이젠 되겠다고 했는데도 계속 떨어졌다. 150번 정도 떨어진 것 같다. 그러니까 ‘난 처음부터 아나운서를 하려고 했던 게 아닌데’부터 ‘어차피 힘들 거면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힘든 게 낫지 않을까’까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더라. 내가 정말 괴로워하니까 지난 6월에 아버지께서 “네가 원하는 걸 해보라”며 내 꿈을 인정해주셨다.

⇒ 인터뷰②에서 계속

윤준필 기자 yoon@tenasia.co.kr